나는 그날 바로 문을 열지 못했다

어떤 사랑은 서둘러 문을 여는 것이 아니라, 끝내 문을 닫지 않는 것

by 에스더리


​깊은 밤,

아이 방 창문 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불빛을 통해 살짝 엿보게 되었다.

덩치 큰 아이는 방 안에서 혼자 등을 돌리고

앉아 있었다.

한쪽 소매를 걷어붙인 채 제 팔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아이.

그곳엔 시뻘건 직선과 사선의 흔적들이 가득했다.

약도 바르지 못한 채 굳어버린 그 자국들을 아이는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더 보지 못하고 반사적으로 눈을 감아버렸다.

적막한 어둠 속에서 내 심장 소리만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요동쳤다.

살아오며 겪은 많은 일 중 가장 충격적인 순간이었지만,

나는 차마 방문을 열고 들어갈 수 없었다.
​지금 문을 열면 아이가 너무 놀랄 것 같아서.

내 당혹감이 아이에게 또 다른 상처를 덧입히게 될까 봐.
​내 행동이 아이에게 '2차 가해'가 될까

두려워 문 앞에서 멈춰 섰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천 년 같은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흘렀다.


한시라도 빨리 팔에 약을 발라주고 싶은 생각뿐이라 아이가 잠들 때를 기다렸다가 살며시 방에 들어갔다.

상처 입은 팔에 돌돌 말려져 있는 담요를 치우고 옷자락을 걷으려던 순간,

아이의 뒤척임에 손을 거두고 말았다.

안아주지도 못하고 내 새끼 너무 가여워서 눈물만 줄줄 흘릴 수밖에 없는 가운데

방구석에 숨겨진, 한쪽 팔에만 피가 배어 굳어져 있는 옷을 발견했다.

그 순간 처음으로 하나님을 원망하는 탄식이 새어 나왔다.
'나 하나만으로는 안 되시나요...

아이는 건들지 마셔야지요..."
​아는 척할 수 없었다.

약을 발라주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아이의 마음까지 다치게 할까 봐 또 하루를 넘겼다. 하지만 이대로 두면 몸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마음의 상처가 딱딱하게 굳어버릴 것만 같았다. 결국, 나는 문을 열었다.


"사랑하는 아들아, 엄마가 봐버렸어"


​아이의 팔로 가려는 시선을 애써 참으며 얼굴만 빤히 보면서 말을 이었다.
"이제 같이 약 바르자. 엄마가 발라줄게. 괜찮아, 그럴 수 있어."
아이는 고개를 돌린 채 아무 말이 없었다.
"엄마 서울대병원 간호사였잖아.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며 말했지만, 사실 난 떨고 있었다.


"이미 다 봤어."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진심인 말을 꺼냈다.

"아들, 난 늘 네 편이야.

네가 무엇을 해도 널 무조건 이해할 사람이고,

내 심장도 꺼내 줄 수 있는 게 너야"


​그제야 아이는 얼굴을 돌린 채 빗방울 같은 굵은 눈물을 방울방울 떨어뜨렸다.

반대쪽 팔로 눈물을 훔치다 이내 흐느끼며 쉰 목소리를 내며 통곡하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의 등을 두드리며 뒤에서 껴안았다. 아무 말 없이,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아이가 팔을 걷어주었고, 나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약을 발라주었다.


그때가 고등학교 3학년 초였고,

첫 시작의 때는 알지 못한다...


​그날 밤, 아이가 잠든 뒤 책상 위에 놓인 연습장을 열었다. 한 권이 아니었다.

꾹꾹 눌러쓰다 만 흔적이 가득한 공책들이 이곳저곳에 가려져 있었다.

비로소 내 눈에 들어왔다는 것이 견딜 수 없는 미안함으로 다가왔다.

그 안에는 학교 이야기나 성적보다 자기 자신에게 보내는 절규가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한 문장에서 나는 멈췄다.


​'난 후회하지 않는다. 내 팔에, 내 몸에 그은 상처들. 그것들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후에 일어날 일들도 감당할 것이다.'


​나는 공책을 덮었다가 다시 열었다.

도저히 이해하려 들어선 안 될 것 같았다.

억지로 설명하려 드는 순간, 아이의 언어와 감정, 그리고 그동안 아이를 지탱해 온 모든 것이 훼손될 것만 같았다.

나는 엄마지만, 그 문장의 주인이 될 수는 없었다.

​그날 처음으로 아이를 '이해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았다.

이해하지 못해도 곁에 있을 수는 있다.

그 정도의 자리라면 내가 기꺼이 감당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이의 공책에는 도움을 요청하는 문장은 없었다. 대신 버티고 있다는 흔적만이 여러 표현으로 남겨져 있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학교를 쉬는 시간을 오래 가졌고,

바다에 갔다.

모래 위에 "아들아 사랑해"라고 썼고,

철썩철썩 부딪히며 큰 소리를 내는 파도를 향해 나도 용기 내어 큰 소리로 외쳤다.


"사랑해, 사랑해 아들아"

외치는 내 목소리 끝에 떨리는 흐느낌이 묻어났다.

녹음된 영상을 보니 내 가슴 밑바닥에서 울려 나오는 간절하고 애절한 마음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아이도 그 진심을 받은 것 같았다.
​친구들의 도움으로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뮤지컬을 보고,

태백에 있는 고즈넉한 예수원에도 며칠 다녀왔다.



​'졸업만 하자'는 목표로 다시 등교를 시작했고

아이는 공부를 끝까지 마무리하고 싶다고 했다. 9월부터 혼자 수능을 준비했고 11월에 시험을 쳤다. 만족스러운 성적은 아니었지만 이미 대학은 합격해 놓았다.

세상의 눈으로 좋은 학교는 아닐지라도 아이는 가겠다고 했다.
​"용의 꼬리보다 뱀의 머리가 될게."
​그 말에 같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난 네가 무엇을 선택하든 다 좋아."
그때 비로소 아이의 표정이 달라졌다.

조금 숨을 쉬는 얼굴, 생기가 도는 얼굴이 되었다.


​지금 아이는 친구들과 일본 여행 중이다.
나는 여전히 그 밤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한다. 다만 이제는 안다.

어떤 사랑은 서둘러 문을 여는 것이 아니라,

끝내 문을 닫지 않고 기다려주는 것이라는 걸.





​이 글은 아이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이의 고통 앞에서 차마 대신 말해주지 못하고, 그저 묵묵히 곁을 지키기로 한 부족한 엄마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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