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성의 피로
언제부턴가 음악을 들을 때, 게시된 글을 볼 때 숫자를 먼저 보는 나를 발견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시작으로 ‘좋아요’와 ‘댓글’은 우리의 일상을 지배했다.
우리는 이제 ‘내가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보게 된 것 같다.
유튜브에는 조회수를 볼 수 있는 기능이 있다. 영상의 재생 횟수는 그 자체로 하나의 신뢰도가 되었다.
사람들은 조회수가 높은 영상이 더 재미있고, 더 가치 있을 것이라 믿으니까.
마냥 틀리기만 한 믿음만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좋아했기에 높은 숫자를 기록했을 테니까.
하지만 숫자가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유튜브는 단순한 영상 플랫폼을 넘어 유튜브 뮤직이라는 음악 플랫폼으로 그 영역을 넓혔다. 그리고 유튜브가 가진 추천 알고리즘을 통해 사용자의 음악 취향을 추천해 주었다. 처음에는 이 알고리즘이 마법처럼 느껴졌다. 내가 좋아할 만한 음악을 찾아주고, 비슷한 취향의 곡들을 끝없이 이어 들려줬다.
알고리즘은 친절했지만, 그 친절함 속에는 ‘획일화’라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어느 순간 수백만 번 재생된 노래들만 추천하기 시작했다. 재생 수가 높다는 것은 그 노래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다는 뜻이고,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음악'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음악은 어느새 나의 취향을 대신하고, 인기라는 기준으로 추천된 곡들이 나의 플레이리스트를 대체해 버렸다.
숫자로 모든 걸 판단하는 나에게 질렸다.
그 숫자들이 주는 피로감에 지쳐버렸다.
애플 뮤직을 선택했다. 여기에 ‘조회수’는 없다. 단순히 다른 음악 플랫폼으로의 이동이 아닌, 숫자로부터의 도피와 취향을 되찾기 위한 작은 시도로 ─사실 애플 생태계를 떠날 수 없는 신세, 무손실 오디오 등 다양한 이유도 포함되어 있다
애플 뮤직은 도서관 같은 느낌이었다.
도서관에는 책이 있고, 책을 읽기 위한 사람만 있듯이
이곳에는 그저 음악이 있고, 음악을 듣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도서관의 책들만큼 다양한 음악들이 단지 분류되어 있을 뿐이다.
가끔 취향에 맞지 않는 노래를 듣게 될 때도 있다. 애플 뮤직의 어설픈 알고리즘은 내 귀에 낯설고 어색한 음악을 추천해 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실패는 값지다고 생각한다. 이 어색함과 낯섦은 음악 취향을 더 선명하게 만들어 주었으니까.
누군가 정해준 '인기 있는 음악'이 아닌 나만의 경험과 감각으로 선택한 음악들.
그리고 그 음악들로 이루어진 플레이리스트들을 만든다.
개인의 확고한 취향을 가진 사람은 아름답다.
좋아하지도 않는 노래를 끝까지 들어봤을 테니까. 마음에 들지도 않는 책을 빌려 봤을 테니까.
익숙함보다는 새로움을 선택했을 테니까. 수많은 실패를 겪었을 테니까. 스스로에게 솔직했을 테니까.
타협하지 않았을 테니까. 복잡한 세상 속에서도 자신의 방향을 알고 있을 테니까.
남들이 외면한 것들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했을 테니까.
그리고 그 취향은 그 사람과 닮아있을 테니까.
모든 것이 정해진 대로 살아가도록 강요받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때로 길을 잃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