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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by Cardi Ryu

생일 역설: 1년을 365일로 가정했을 때, 생일이 같은 한 쌍이 반드시 나오려면 366명이 모여야 한다는 예상과 다르게, 23명만 모여도 확률이 50%를, 57명이 모이면 그 확률은 99% 이상이 되는 직관에 반하는 이야기.

인간이 얼마나 직관에 의존하며, 그 직관이 얼마나 자주 빗나가는지.


이러한 수학적 사실이 '모순'으로 인식되는 원인은 확증편향에 있다. 즉, 확률을 평가할 때에는 (편향을 고려하지 않는) 수학적 사실만으로 접근해야 하는데, 알게 모르게 '자기중심'으로 평가하는 성향 때문에 '모순'이 발생한 것처럼 보이는 것뿐이다. 즉, 사람들의 통념으로는 n명이 모였을 때 생일 문제를 따지는 횟수(경우의 수)는 n−1n−1, 다시 말해 O(n)O(n)이라 착각하기 쉬운 것이다.
- 나무위키

암호학이나 확률론에서 빠지지 않는 이야기이다. 해시 충돌, 생일 공격은 나에게 아직도 잊히지 않는 개념. 또 한 가지 재밌는 것은 이 논리로 사회적 거리 두기의 '5인 이상 집합 금지'를 설명할 수 있다는 점.


아무쪼록 이런 수학적인 흥밋거리를 이야기할 것은 아니었다.






"Happy Birthday"


생일날에는 축하를 받기 마련이다. 어떤 존재가 이 세상에 태어난 날이니. 그날을 기념하며 케이크 위에 초를 꽂고, 선물로 축하의 마음을 대신한다. 그날만큼은 모든 행위가 태어남에 대한 기쁨을 표현한다. 생일은 분명 기념할 만한 가치가 있는 날이다. 우리가 '살아있음' 자체를 증명하고, 그것을 함께 나누는 날이니까. 나 또한 일상적인 생일 축하의 장면에 기꺼이 동참해 왔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 보자면, 이 기쁨에는 역설적으로 비애가 깃들어 있지 않은가?


삶은 유한하다. 한 살 더 먹는다는 단순한 사실은 이 유한함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어쩌면 이날을 온전히 축하하는 것은 이 유한함을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그 끝을 애도하지 않으려는 인간의 본능이 생일을 기념하는 것은 아닐까?



‘2월 6일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가? 그저 오늘이 내 생일이구나, 그리고 오늘로 나는 한 살 더 먹었구나 하는 생각. 한 살 더, 그러니까 살날이 한 해 덜. 그리하여 그 생일날 나는 바캉스를 가졌다. 바캉스란 일체의 행동이나 사고나 의사 교환이나 오락을 하지 않는 것을 뜻했다. (그러니까 그것은 휴가가 아니었다.)
나는 진공을 만들려고 했고 시간을 중단시키려고 했다.
......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하자면 그저 잠이라고 말했어야 옳았을 것이다. 그런데 몽상 쪽이 보다 큰 매력이 있었다.
- 장그르니에 '섬' 中


생각 끝에 그날을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해 비워 보았다. 축하도, 선물도, 화려한 파티도 없는 생일. 오직 조용히 나를 잊는 하루를 보냈다. 그날을 오히려 ‘축하하지 않는’ 날로 삼는 것은, 그 이면의 무거움을 직시하는 용기가 될 수 있었다. 깨어 있음과 잠듦의 경계에서 일종의 자유를 가졌다. 어떠한 역할들도 내려놓았다. 나를 잊었고, 해방했다. 단순한 방황으로 보이는 것을 통해 흐릿하게나마 바라보았다. 그 흐릿함 속에서 어떤 것은 선명하게 보이기도 한다. 마지막을 향한 시간의 흐름 안에서.




가득했던 것을 비우면 우리는 언제가 되었든 다시 태어날 수 있고, 새롭게 존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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