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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현 Mar 04. 2019

우아한형제들에서 일하는 방법

이게 다 이승희 때문이다.

지난주, '배달의민족 글쓰기 가이드' 제작 후기를 공유했습니다. 그 글을 읽어보신 분들만 이해가 될 내용임을 밝힙니다. (글쓰기 가이드는 어떻게 써야 할까)



왜냐하면, 이 말을 해야 해서요.

지난 글에서, 왜 제가 ‘배달의민족 글쓰기 가이드’ 담당자가 되었는지에 대해 이렇게 적었었습니다.

하나를 관통하는 가이드를 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여겨진 것 같습니다.


'누가' 그렇게 여겼는지를 적지 않았었습니다. 오늘 이 글을 적으려고요. 하나의 글에서는, 하나의 주제를 말하는 게 좋다고 배웠거든요. 오늘은 그 '누가'에 대한 글을 쓰려고 합니다. 네 소제목으로 눈치채셨죠? 맞습니다. 주어는 '이승희'입니다. 우아한형제들 브랜딩실 마케터 이승희요.


취중진담이었더라.

처음 그녀와 '우아한형제들의 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던 건, 잠실의 한 횟집에서였습니다. 타 부서에서 문구 검토 요청이 유난히 많이 온 날이었습니다.


“사실 검토가 아니라 처음부터 다시 써야 할 때가 많아요. 못쓴 글이어서가 아니라, 전해야 할 포인트 자체를 다시 잡아야 하기 때문이죠. 처음부터, 모두가 같은 방향의 글을 쓸 순 없는 걸까요? "


저는 사장님향으로, 그녀는 고객향으로 비슷한 경험이 많았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많은 구성원들이 통일된 톤 앤 매너로 글을 쓸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마시라는 술은 안 마시고..!!


그리고 며칠 뒤, 그녀는 뚝딱 자리를 만들더군요. 우아한형제들에서 내보내는 모든 글에서 필요한 요소들을 추려서요. 사장님향. 고객향. 이 두 가지에서 끝나지 않고, 사회적 이슈에 대한 태도, 대외비를 다루는 태도에 대한 것까지 합쳐서요. 맙소사. 술자리에서 했던 말이 진심이었던 거죠.


시.. 실화냐..


결국 저를 비롯해, 브랜딩실의 이성국, 강세영. 홍보팀의 성호경. 방향을 잡아줄 장인성 이사님까지. 모두 모여 배달의민족다운 글쓰기, 우아한형제들다운 글쓰기에 대해 한 마디씩 하게 하고, 가이드를 만들게 했습니다.


이게 가능한 건 브랜딩실의 일하는 방식도 한 몫했습니다. 장인성 이사님의 ‘마케터의 일’에도 나와있는 내용인데요.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아이디어가 나오면, 하고 싶은 사람이 대장을 맡아 일을 주도적으로 착착 진행시키죠. 말하자면, 글쓰기 가이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이승희가 대장이 되어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프로젝트를 이끌어 착착 진행시킨 셈입니다.


일과 좀 데면데면해질 때, 추천.


이 이후의 이야기는 이전 글에 더 자세히 담겨 있어요. 이승희는 한 조각 한 조각을 이어, 전체의 풍경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내겐 너무 낯선 풍경.

지난 글에서 저는, 연말평가에서 받았던 칭찬 한 구절을 공유했었습니다. 하지만 고백건대, 칭찬만 있던 것은 아닙니다. 당연한가요? ㅎㅎ


김지현 님은 그동안 혼자서 일을 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고, 자신만의 업무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분이기도 합니다. 그 분야에서 만큼은 스페셜 역할을 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혼자 해 나가는 업무만큼은 누구보다 좋은 퍼포먼스와 성과를 내는 분입니다. 하지만 이 부분이 반대로 여러 사람들과 협업을 하면서 목표를 달성하고 성과를 내야 하는 것에는 김지현 님 만의 장점이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저는 커리어를 시작한 후 오랜 기간, 혼자 구상하고 실행하는 1인 마케터였습니다. 누군가와 목표 달성을 위한 과정을 함께하는 방법을 몰랐어요. 심지어 '아니 나 혼자 뚝딱뚝딱하면 될걸, 왜 나눠서 하지?' 이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급기야 내가 혼자 하던 일을 팀장님이 동료와 나눠서 하게 만들면, 비효율적이라고까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모습이 낯설었습니다.

가이드를 만드는 일의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에 부합될 수 있는 담당자들을 모으고, 전체의 그림에 맞춰 일을 배분하고, 담당하게 하고, 스스로는 매니저의 역할을 자처하며 기한에 맞추도록 채찍질하고... 아니 독려하고.


이렇게 보니.. 숭.. 미안해......


배달의민족 글쓰기 가이드의 결과물에 '이승희'라는 이름이 새겨진 것도 아닙니다. 프로젝트가 끝난 후, 일을 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은 결과물에 이름이 새겨지는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고객님께 글쓰기'는 이성국, '사장님께 글쓰기'는 김지현, '섬세하게 글쓰기'는 강세영. 이렇게요. 결과물에 새겨지는 이름이 뭐 그리 중요하냐 물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 이미 그러고 있잖아요. 어떤 결과물이 좋을 때, '이거 누가 아이디어 냈어? 누가 진행했어? 누가 만들었어?' 이렇게 묻잖아요.


하지만 그 과정에는, 내용의 방향을 잡아준 장인성 이사님부터 강연 포스터를 만들어준 경림 디자이너님, 강연의 전 과정을 리드해준 세나님을 포함한 전사교육팀까지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협업한 구성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결과물이 가이드였다는 것도 참 재밌습니다. 가이드 자체가 모든 구성원이 한 팀으로 목표를 바라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니까요.


헌신, 희생.. 이런 거창한 말을 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혼자 일해왔던 저는 목표 달성만 볼 줄 알았지, 협업을 알지 못했어요. 협업의 시너지. '같이의 가치'처럼 이젠 너무 많이 쓰여서 마음에 와 닿지 않는 말. 그 말이 이제야 마음에 와 닿기 시작했습니다.



스타보다 팀웍

'스타보다 팀웍'. 우아한형제들의 핵심가치 중 하나입니다.

우아한형제들의 4대 핵심가치!


입사했을 때, 이 이야기를 듣고 많이 의아했습니다. 왜냐면 우아한형제들에는 유명한 분들이 너무 많거든요.


TV를 틀었더니.. 뒷자리의 상사가 나온다...???

대표님, 임원분들 뿐만 아니라, 직원분들도요. 방송에 나온 분들도 많고, 책을 쓴 분들도 많고, 강연을 하고 계신 분들도 많고. 심지어 전설적인 개발자님들도 많더라고요. 그래서 멋진 말이지만, 지켜지는 말은 아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회사 사훈에, 학교 교훈에 그런 말 많잖아요. '가족 같은 회사' 같은 거요...


잘 지켜진 예 #불개미상회


그런데 이제야 어렴풋이 알 것 같습니다. 여기서 '스타'는 유명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혼자 외로이 떠있는 별이 되지 말라는 것이었어요. 그렇게 느끼고 나니, '송파구에서 일을 더 잘하는 11가지 방법'도 마음에 와 닿기 시작했습니다.



잡담을 많이 나누는 것이 경쟁력이다.

우아한형제들 오피스에서는 배경음악이 계속 흘러나옵니다. 누구나 쉽게 잡담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함이죠. 이게 정말 효과가 있더라고요. 기계 문제로 잠깐 배경음악이 틀어지지 않는 순간. 대화가 딱 끊겨요. 왠지 말을 꺼내기가 조심스러운 환경이 되어버리더군요.


저는 B2B커뮤니케이션팀 소속입니다. 7명의 팀원이 있는데요. 팀원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시각을 발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콘텐츠 하나를 만들 때도요. 한 명이 장난처럼 꺼낸 말에 호응을 하고, 공감을 하고, 살이 붙는 과정이 지나면, 이 아이디어를 '누가' 냈는지는 중요한 게 아니죠. 하지만 분명 결과물은 처음보다 훨씬 멋져집니다.


가족 같은 회사?  아뇨. 가족보다 많이 봅니다.


잡담을 할 수 없는 분위기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회의실을 따로 잡아, 돌아가면서 한 개씩 아이디어를 내게 하거나, 시간을 내서 토론하게 한다면. 어떨까요? 특히 아이디어를 많이 내야 하는 직군은 공감하실 거예요. 아이디어라는 놈은, 막상 멍석을 깔아주면 도망가버린다는 걸요.


돌이켜보면, '자 아이디어를 내보자.....(정적)'보다 '이거 진짜 웃기져?ㅋㅋㅋㅋ 어?! 근데.. 이거 이렇게 적용해볼 수 있겠다!'의 과정에서 훨씬 많은 결과물을 얻었습니다. 그렇게 멋진 결과가 나오는 경험을 몇 번 하고 나면, "누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누가보다 어떻게에 집중하게 되죠.



일의 목적, 기간, 결과, 공유자를 고민하며 일한다.

협업의 결과가 비효율이 될지, 시너지가 될 지의 차이가 여기에 있습니다. 일의 목적, 기간, 결과, 공유자를 고민하며 일하는 것. 아직 저도 이게 어렵습니다. 내가 하는 일을 어떤 부서까지 공유해야 하며, 과정에서는 누구와 협업을 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 내가 어디까지 담당을 해야 하는 건지. 물어 물어 협업을 하는 것이 오히려 비효율적인 건 아닐까란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글쓰기 제작 가이드를 만드는 과정에서의 숭을 보니.. 제가 협업 과정의 '설계'를 못해서라는 걸 알았습니다. 숭은 가이드를 만들어야 하는 목적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천여 명 구성원의 글쓰기 톤 앤 매너를 통일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럼 그 목적을 잘 달성할 수 있는 담당자들은 누구일까? 고민 후, 각 방면으로 가이드를 제작 할 수 있는 담당자들을 모았지요. 그리고 중간중간 1차 검토, 2차 검토.. 등으로 나눠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기간과 방법을 설정했어요. 결국, 결과는 애초의 계획보다 더 멋졌죠.


저는 일이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어요.


협업 과정의 설계.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이 부분에 대해 답을 담고 있어야 좋은 글일 텐데요. 아직 저도 어렵습니다. 이제 막 협업의 가치에 대해, 어렴풋이 알게 되었으니까요. 다만 저와 한 친구의 사례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요즘 '사내 용어 가이드'를 만들고 있다는, 타회사 친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대표님의 큰 그림.ㄷㄷㄷ

용어 가이드를 만들면서, 용어보다도 회사에 대해, 회사와 고객과의 관계에 대해 더 생각해보게 되었대요. 가이드는 모든 구성원들이 하나의 목표를 바라보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정의를 내리는 것부터 구체적인 실행 방안까지를 담지요. 그렇다 보니 내용을 구성하면서, 협업 과정을 '설계'해보게 되더라고요. 이 일을 맡게 되는 누군가가 이 방법을 쓰면 더 효율적이겠다, 이렇게 하면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겠다, 그런 경우의 수를 무척 많이 생각하게 되니까요.


그러니까 협업의 설계 과정을 겪어보고 싶다 하시는 분은, 한 번쯤 정리해보셔도 좋습니다. 지금 하고 계신 업무의 가이드를 만들어보세요. 확실히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본질에 좀 더 접근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이렇게 의도하지 않은 일을 드리고... #직장인짤봇



함께해서 더 도드라지는 '나'

'협업'의 가치에 대해 쭉 이야기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사실 여전히.. 천재가 부럽습니다. 똑같은 시간을 쓰고도, 훨씬 뛰어난 결과를 뽑아내는 사람들. 부럽습니다. 자신만의 테크닉이 있는 사람들. 부러워요. 하지만 그렇지 않은 보통의 우리가 있어요. 저룰 포함해서요. 그래서 인간에게 협업을 만들어준 건가 봐요. 이렇게 말하면 협업을 하는 주체가 '팀'이고 '나'라는 사람은 눈에 별로 뜨이지 않게 되는 것 같지만, 실은 협업을 하면 할수록 '개인'이 보입니다. 개인에 집중하게 됩니다.  



나는 a만큼 일하고, 너는 b만큼 일해. 그래서  AB를 달성하자. 같은 목표를 위해 함께 일하자. 이게 '협업'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협업을 해보면, a+b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내가 가볍게 건넨 말에서 상대는 놀라운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기도 하고, 상대가 말해준 작은 우려사항에서 프로젝트의 방향이 개선되기도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협업은, 함께 일한다를 넘어 어떤 식으로든 업무적 사고에 영향을 주는 모든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이것도 영향은 영향이죠... #약치기 그림


그렇기에 협업을 하는 과정에서는 오히려 일이 아니라 '사람'에 집중하게 됩니다. 함께 일하는 사람의 능력에 집중하게 되고, 역으로 나 자신의 능력에 대해 새삼 깨닫게 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부분, 할 수 없는 부분을 명확히 알게 됩니다. 스스로의 가치를 알게 되는 방법이, 함께 하는 것이라니. 아이러니하지만, 정말 그랬습니다. 협업은 팀이 목적을 달성하게 하는 동시에 개인을 성장시킵니다. 물론 설계가 잘 된 협업이어야겠죠.


우아한형제들에서 1년 동안 저는 제 자신의 능력과 한계에 대해 명확히 깨닫고 있습니다. 협업을 통해서요.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되면, 그다음은 발전 방향을 설정할 수 있습니다. 회사는 학교가 아니다. 회사는 가르치는 존재가 아니다.라고 하지만, 저는 이렇게 배우고 있고, 앞으로의 제 업을 위해 무엇을 보완해야 하는지 명확히 깨닫고 있습니다. 천 여 명의 이승희와 '함께' 일하는 곳. 그게 우아한형제들에서 일하는 방법이자 가장 큰 장점입니다. 우아한형제들 1년 차. 협업에서 내 업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끗)


P.S. 글을 다 쓰고 보니, 역시 소제목은 고치는 게 좋겠죠? ‘이게 다 이승희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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