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터의 글쓰기
아니요. 사실, 좋은 말도 듣지 않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어떤 브랜드든 타깃이 귀를 기울일 말을 고민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브랜드의 입장에서 꼭 전해야만 하는 잔소리 사회적 가치들이 있습니다. 게다가 주위를 둘러보면, 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판매되는 상품들이 얼마나 많은가요. 특정 사회 문제에 대해 자신들의 태도를 확실히 정해, 타깃의 마음을 사로잡는 브랜드도 있습니다. 오히려 이제는 사회 문제에 대한 태도를 확실히 할 것을, 브랜드들이 요구받고 있습니다.
배달의민족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때때로 사장님들에게 그런 말을 전해야 합니다. 지키면 사회가 따뜻해진다는 것을 알고있지만, 귀기울여 듣지는 않는 일들 말이죠. 공공의 이익과 사익 사이에서, 공익을 지켜달라고 이야기해야 하는 일들요. 누가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지 마세요.'를 몰라서 쓰레기를 버릴까요. 쓰레기통이 눈에 안 보이고, 손에서 걸치적거리니 그냥 버려버릴까 생각이 들곤 하는 거죠.
기능이나 정책을 하나 만들어낼 때 우리는, 수 백 수 천 가지 경우의 수를 테스트해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문제가 되지 않도록, 최대한 꼼꼼하게 방어한 결과물을 내놓죠. 그럼에도 예상을 벗어난 상황은 발생하곤 합니다. 서비스를 사용하는 것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행위를 예측한다는 것이 그렇게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사용자인 '사람'에게 호소합니다. 배달앱이 나온 초기. 예상할 수 있었을까요? 사장님이 '리뷰를 남겨달라' '안 좋은 후기를 지워달라'고 고객에게 따로 연락하는 것이 문제가 될 것이라고요. 하지만 소수의 사장님들은 그러셨습니다. 연락해서 과한 제스처를 취한 경우도 있었죠. 몇몇 사장님들로, 고객이 배달 주문을 불안해하도록 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이는 결국, 전체 사장님들의 이익을 저해시킬 것입니다.
자, 이제 저는 사장님들에게 '고객의 개인정보를 보호해 달라'라고 글을 써야 합니다. 배달 외 목적으로 사용하지 말아 달라고요. 공익을 생각해달라고요. 사회를 따뜻하게 만들어달라고요. 네, 좋은 이야기이지만, 때로 사익과 충돌합니다. 한 귀로 흘리기에도 좋은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사장님이 행동 변화를 고려하도록 만들 수 있을까요?
가장 쉽게 쓸 수 있는 방법은, 처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저도 그 방법으로 아주 놀라운 효과를 보았습니다. 음식점을 운영하시는 사장님들은, 원산지 표기가 의무화되어 있습니다. 배달의민족과 같은 배달앱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장님들이 원산지 표기를 하도록 하게 해야 합니다. 그때 쓴 카피가 이것입니다.
"깜박했을 뿐인데, 벌금이 1억 원이라고요?"
배너 클릭률은 평소보다 두 배 이상 더 높았습니다. 놀라운 반응이었고, 사실 예상을 했습니다. 공포는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효과적인 마케팅 수단이니까요. 하지만, 그만큼 무뎌지기 쉬운 방법입니다. 또한 낚시성 콘텐츠가 될 수 있고요.
표지와 내용이 너무 동떨어지면 낚시성 콘텐츠로 여겨지게 됩니다. 무엇보다 표지에서 받은 충격만큼, 내용에서 지속적으로 충격을 주는 것 자체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지 않도록 내용을 탄탄히 써야 하지만.. 네, 어렵죠. 읽고 난 후 '에이 뭐야.' 여겨지기 십상입니다. 클릭할 확률은 확실히 높일 수 있지만, 타깃의 행동으로 이어질 확률까지 높아진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당장 눈 앞에 경고문구도 지키지 않는다는 걸, 우리는 수많은 사례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카피를 쓰고 나서는 어딘가 마음이 찜찜합니다. 그렇다고 쓰지 않겠다는 건 아닙니다.
저는 마케팅을 위한 콘텐츠를 제작할 때, 다음의 두 가지를 꼭 고려합니다.
- 타깃의 행동 변화를 끌어낼 것.
- 우리의 다음 콘텐츠를 기대하게 할 것.
재미와 감동'만' 있는 콘텐츠는 마케팅 콘텐츠라고 할 수 없습니다. SNS에서 좋아요는 많이 받을 수 있겠지만요. 좋아요를 많이 받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차라리 지속적으로 귀여운 강아지 사진을 올리는 것이 낫습니다.
마케터가 만드는 콘텐츠는 결국, 타깃의 행동 변화를 끌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브랜드를 사랑하게 되든, 제품을 구매하게 되든, 기능을 숙지하든, 무엇이든 타깃이 브랜드를 위한 행위를 하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타깃이 우리를 위한 행위를 하게 만드는 데에 너무 집중하면, 노골적인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글을 다 읽고 난 이후, '이거 광고 아니야?'라면서 '화나요'를 누르는 타깃이 많아진다면, 엇. 이 글 어딘가 잘못된 거죠.
그렇게 볼 때, 공포를 자극하는 카피만 계속 쓴다는 것. 괜찮은 걸까요? 글쎄요. 글을 다 읽은 후 맥이 빠져,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고, 우리의 다음 콘텐츠는 더더욱 기대하지 않겠죠. 그래서 저는 조금 다른 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클릭할 확률이 '공포'보다는 낮아도, 행동할 확률이 높은 방법으로요.
사람이 가장 귀 기울이는 이야기의 소재는 무엇일까요?
네, '내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마케터는 타깃을 분석합니다. 타깃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아는 마케터만이 타깃에게 필요한 걸 줄 수 있죠. 바로 그 지점부터 글을 시작하면 됩니다.
앞서 배달의민족 사장님들이, 배달 목적 외에 고객의 정보를 사용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배달앱에 입력하는 개인정보는 배달을 위해서만 사용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극히 일부 사장님들은 리뷰를 써달라, 혹은 나쁜 리뷰를 지워달라, 심지어 개인적인 친분 관계를 만들고자 연락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런 사장님들에게 고객의 개인정보를 지켜달라고 이야기를 전해야 합니다.
제가 처음 참고하라고 받은 글은 이것이었습니다.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이라니. 이만큼 공포스러울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사장님들이 이 글귀를 읽을 것 같지도, 마음에 와 닿을 것 같지도 않습니다. 저 역시 '1. 고객의'까지 읽고 정신이 아득해졌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사장님의 이야기를 썼습니다. 사장님의 입장으로요.
(자세히 보기 : https://ceo.baemin.com/#/knowhow/detail/25)
이후에 이어지는 글은 이렇습니다.
사장님이 악의가 없다고 해도 일부 고객은 불안함을 느끼며, 오히려 이것이 고객을 신뢰를 잃게 만든다고요. 심지어 법적인 처벌도 받을 수 있다고. 그때서야 5년 이하의 징역과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앞서 쓴 사연은 '사장님은 왜 고객에게 연락을 하고 싶을까?'를 가설로, 많은 사례를 수집한 결과 중 하나입니다. 소수의 사장님이 실행해봤거나, 다수의 사장님이 머릿속으로 생각해본 적이 있던 일 중 하나이죠. 특별히 하나 더 신경썼던 점은, 너무 극단적인 사례를 끌어오지 않는 것입니다. 이 글은 문제가 된 사장님들뿐만이 아니라 전체 사장님들이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 사장님들이 마치 잠재적으로 문제를 발생할 것으로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타깃의 마음을 헤아려야 하는 것이지, 타깃을 탓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글을 쓰기 전에, 타깃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조사도 많이 하고요. 기회가 되면 심도 있는 대화도 나눠보시고요. 그래야 타깃의 입장으로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충분히 사연에 감정이 몰입되어야, 그 이후에 잃게 되는 것들에 대해 상실감을 느낄 것입니다.
감정 몰입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상황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작성해야 합니다. 전지적 작가 시점이 아니라 1인칭 주인공 시점이나,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적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표현하는 배경이나 감정이 세밀하고, 현실적이어야 합니다.
글에 감정적 몰입을 더해주는 장치들도 있습니다. 이미지나 배경음악, 냄새처럼요. 카드뉴스는 각 장이 짧은 텍스트와 이미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포맷,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무척 익숙해져 있습니다. 네, 그림 동화들이 그랬었죠. 텍스트에 이미지가 덧붙여져 순식간에 우리를 마법의 성으로 데려갑니다. 타깃이 사연에 감정이입을 하게 하는 데에는, 카드뉴스 포맷 자체도 큰 도움이 됩니다.
카드뉴스로 제작할 여건이 안된다면, 따옴표("") 처리를 해서 이야기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혹은 노골적으로 '상상해볼까요?' '상상해보세요.'같은 문구를 먼저 적고 시작해도 됩니다. 그 다음은 글 쓰시는 분의 작문과 타깃 이해도에 달렸습니다.
저는 이미지로 직접 보여주기도 하고, 배경을 그리듯이 쓰는 방법을 사용하곤 하는데요. 사실 진짜 고수들은 몇 줄 안 되는 글로, 아니 심지어 여섯 단어로 그 이상을 상상할 수 있게 하더군요. 아.. 아직 전 멀었습니다.
우아한형제들 사옥에는 곳곳에 이 말이 붙어있습니다.
동료들과 일하다 보면, '아니 진짜 왜 이렇게까지 해?;;' 하는 경우를 종종 겪습니다. 기획자든, 개발자든, 디자이너든 마케터든 그런 분들이 좀.. 많더라고요.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는 자기의 업에 있어서 만큼은 그런 자세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닐까요? 다른 업에 있는 사람들은 이해 못하는 나만의 디테일이요.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그럴 거예요. 내 업의 디테일을 위해 이런 부족한 글도 읽어보는 거라 믿습니다.
그렇다면, 조금만 더 수고로워보는 거 어때요? '공포'를 자극하는 방법은 가장 쉬운 방법입니다. 저도 열에 한 번은 이 방법을 또 쓰게 될 거예요. 하지만 조금만 더 시간을 쓰고 발품을 팔면, 타깃에 대해 조사할 수 있고 더욱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타깃의 마음이, 타깃의 입장이 글로 발현될 거예요. 우리는 조금 수고로워지겠지만, 타깃은 분명 편안하게 그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있겠죠.
좋은 말도 듣지 않는 시대입니다. 재밌는 콘텐츠가 너무 많아요. 좋은 말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말을 써보는 건 어떨까요. 저는 그것이 우리의 말에 귀 기울이게 할 수 있는 가장 탁월한 방법이라 믿고 있습니다.
당연한 말을 써야 할 때는, 한번 떠올려보세요. '타깃이 당연한 이 말을 지키지 못했던, 사정은 무엇이었을까?' 답을 하고 나면, 그 이후의 글은 더이상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