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아침, 오늘을 보내다

by 김상혁

일탈이란 단어를 좋아하지 않았다. 일탈이란 단어에 허영과 허세, 몽환적 망상이 깃들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종종 일탈을 꿈꾸고 실행에 옮기곤 한다. 지난 주말 아침이 그랬다. 우당탕 거리는 소리,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계음에 반쯤 잠긴 눈으로 시계를 본다. 오전 11시다. 딱히 집에 고양이를 키우는 것도 아닌데 소란스러움에 잠이 깨서 짜증이 난다.


짜증 유발의 정체는 금세 밝혀졌다. 각각의 전쟁터에서 긴장감을 유지하고 싸워왔던 가족들이 주말이면 긴장을 풀고 충전을 하는 것이다. 평일에 하지 못했던 빨래를 돌리고, 먹고 싶던 비빔면을 무치고, 작년에 담가놨던 매실을 다듬는다. 그 소란스러움으로 내 충전은 완충상태가 되지 못했다.


평일이면 적막함이 싫어 음악을 틀고 잡스러운 소리로 사무실을 채웠던 모습이 떠오른다. 모순적이게도 주말아침은 적막함을 원했고 고요함을 갈구했다. 이기적인 충전시간은 일탈로 이어졌다. 모든 게 짜증난다는 듯, 문을 쾅 닫고 욕실에서 대충 고양이 세수를 한다. 모자를 눌러쓰고 밖으로 나간다. 딱히 갈 곳을 정한 것은 아니었다. 멍한 상태의 머리로 걷기 시작해 10분쯤 걸었을까? 공원에서 목줄을 단채 뛰고 있는 강아지를 발견한다. 저 녀석도 평일동안은 적막한 집을 지켰겠지?


공원에는 주말을 맞고 찾아든 전사들로 가득했다. 저마다 각자의 명분을 가지고 전쟁을 준비하기 위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한쪽에선 삼삼오오 모여 공을 찬다. 활기차 보였다. 주먹을 불끈 쥐고 활기를 빼앗기로 마음먹는다. 곧장 만화방으로 달려가 당대 최고의 축구만화를 펼쳤다. 눈으로는 만화를 보면서 머리로는 그라운드에서 뛰는 모습을 그렸다.


누군가가 정해놓은 프레임 속 그라운드에서 3시간가량 뛰었을까? 시계를 보니 저녁이 다됐다. 생각해보니 한 끼도 먹지 않았다. 만화도 완결편만 남겨 논 상태. 카운터로 가 짜장면 곱빼기를 부탁했다. 주인은 노량진 수산시장의 베테랑 칼잡이처럼 능숙하게 전화기를 돌려 짜장면을 시킨다. 수화기를 내려놓는 모습이 잘 떠진 회를 내놓고 내려놓는 사시미같이 멋져보였다.


짜장면 한 젓가락, 만화 한 장면. 그렇게 한 시간을 더 채우니 창밖으로 해가 진다. 하루가 끝나가는 시간, 외투를 챙겨 입고 밖으로 나온다. 또 10분을 걸었다. 부산했던 공원은 어느새 한적해져 적막감이 흐른다. 지금 이 적막감이 좋은지 나쁜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아직 내일은 오지 않았고 오늘이 끝나지도 않았다. 그 어렴풋한 경계에서 아침에 갈구했던 적막감과 내일 들이 닥칠 적막감의 감정이 싸우고 있었다.


가로등 불빛이 켜진 공원을 천천히 걸어본다. 이 시간은 나와 같은 전사들이 꽤 있다. 혼자만의 공간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지닌 채 걸어 다니는 이들. 공원 중앙에 다다랐을 때 가로등 불빛이 비치는 벤치가 보였다. 벤치 양쪽으로 가로등이 자리하고 있었고 이질적이게도 두 가로등은 백열등과 LED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뉴스를 봤던 거 같기도 했다. 붉은 빛의 가로등이 전력량이나 밝기에서 비효율적이라 LED등으로 바뀐다는 기사를 말이다. 난 그 변해가는 과정을 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질적인 두 빛이 내려진 벤치에 앉았다. 혼란스러웠다. 어느 빛이 내가 좋아하는 빛일까? 어떤 빛이 내 빛일까?


집에 돌아오니 이미 불은 꺼져 있다. 어둠 속에서 TV만 빛나고 있다. 그 속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도 알지 못하는 연예인의 웃음소리였다. 다시금 집안에 적막감이 찾아 든 것이었다. 침대에 누워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오늘의 나는 오늘이란 하루를 보낸 것일까? 지난 일주일을 보낸 것일까? 그렇게 부둥거리다 잠에 들며 오늘일지 내일일지 모를 하루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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