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과 청춘, 세월이 흘러도 아름답게 포장되는 단어다. 옛 선조들은 시조를 통해 젊음과 청춘을 읊었으며, 기성세대는 급변하는 시대에 직선적으로 다가가며 젊음과 청춘을 노래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젊음과 청춘을 노래한다.
아주 우연히, 일상 어느 날 유튜브 알고리즘이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그리고 그곳엔 청춘을 노래하던 1990년대 젊음이들이 있었다. 지구 종말이 다가온 거 같은 영상미와 청각 장애가 올 것 같은 잡음, 촌스러운 패션의 젊은이들에게 2020년 현대인들은 박수를 보냈다. 그들이 겪어왔던 젊은 시절, 청춘이었을 때 감성과 감정을 대변했기 때문이겠지. 어쩌면 그들이 가장 찬란하고 가장 순수했던 시절의 회상일지도 모른다. 아날로그 감성 물씬 풍기는 옛 영상을 보고 있는데 괜스레 아련해진다. 내 학창 시절, 내 청춘과 젊은 패기가 노랫말 너머 되새김질 돼서다. 어쩔 땐 내가 겪어보지 못한 그 이전 세대의 젊음을 보면서도 그리움을 느낀다. 아마도 그들의 과거와 나의 과거는 같은 물길을 흘렀기 때문일 테다.
사람의 감성은 보통 10대에서 20대 사이 완성된다고 한다. 각각의 감성을 한창 피 끓어오르는 시기 무엇을 들었는지, 무엇을 보았는지에 따라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새로운 음악을 접하는 것도 10대, 20대는 거부감이 없다. 하지만 30대가 되면서부터 차츰 새로운 것보단 과거 들었던 음악을 찾아듣거나 비슷한 장르를 쫓아간다. 그들의 청춘을 노래했던 기억을 거슬러 가는 것이다.
지금도 종종 교복을 입고 노래방에서 친구들과 함께 불렀던 노래가 흘러나오면 울컥한다. 유튜브란 혁신적인 플랫폼은 친절하게 영상도 띄어준다. 돌아갈 수 없는 시절에 대한 그리움은 댓글 창을 통해 동질감을 형성하고 공감지수를 높인다. 그곳에선 어떤 가수든 상관없다. 젊음과 청춘은 시대를 막론하고 심장 어딘가 콕 박혀있으니까.
몇 년 전 ‘무한도전’에서 90년대 아이돌 재결성 프로젝트가 진행됐었다. 그때 게시판은 물론이고 기사에도 엄청난 댓글이 달렸다. 여러 커뮤니티에서도 화제가 됐는데 기억 남는 댓글이 있다. HOT 팬과 SS501 팬의 설전 아닌 설전이다. 구세대가 된 HOT 팬과 그 시절 젊은이들은 요즘 아이돌은 ‘아이돌이 아니고 인형이다.’, ‘문화적 영향력, 가요계 영향력에서 비교되지 않는다.’ 등 의견을 내놓았다. 그런 와중에 어린 친구였던 SS501 팬이 ‘지금은 SS501이다.’와 비슷한 글을 남긴 것.
자칫 지저분해질 수 있었던 설전에서 의외로 내게 충격을 줬던 건 어린 SS501 팬이었다. ‘그 시절 당신들에게 HOT가 전부였던 것처럼 지금 나에겐 SS501이 전부다. SS501이 내 학창 시절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글로 말이다. 그때 처음으로 음악이란 것이 어떻게 시대를 대변하는지 알게 됐다. 단순히 기억을 끄집어내고 머릿속 필름이 스치는 것이 아니라 ‘내 시절’을 대변하는 아이콘이란 것 말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누구나 들어봤을 이 문구는 청춘 교과서로 자리했다가 청춘 학살자로 떨어졌다. 청춘은 언제나 밝고 아름답고 열정적인데 그것을 이용해 누군가의 아름다운 시절을 짓밟는다고 말이다. 청춘이 아픈 것은 사실이고, 그렇기에 의미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청춘은 한 세대를 노래하고 세대와 세대 사이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공유하는 것이다. 잠시였을 청춘과 젊음을 서로 무심하게 툭 던져 선한 영향으로 남기는 그런 가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