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새벽, 나는 나를 원망했다

by 김상혁

오랜만에 여고시절의 동창생들을 만나 노느라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고 긴 머리를 풀어헤치고 춤을 췄더니 힐의 굽이 빠졌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시계를 보니 새벽 4시, 친구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노래방을 빠져나와 집으로 향했다.


늦은 시간이라서 신호등도 기능을 멈추고 노란 불빛만이 깜빡거렸다. 도로는 한적하고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새벽 공기는 시원해서 술이 조금씩 깨는듯했다. 굽을 욱여넣어 신은 힐 때문에 비틀거리긴 했지만 기분 좋은 새벽 공기에 모든 게 용서됐다.


집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데 등 뒤에서 헤드라이트가 비쳤다. 이 시간에 무슨 차인가 싶어 돌아보니 아주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봉고차가 보였다. 괜히 무서운 생각이 들어 걸음을 재촉했다. 등 뒤의 봉고차는 계속해서 천천히 다가왔고 혹시나 싶어 뒤를 돌아보면 봉고차는 진행을 멈춘 듯 잠시 서 있는 거 같았다.


빠져버린 굽으로 뛸 수 없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재촉했지만 차보다 빠를 순 없었고 어느새 뒤따라오던 봉고차는 거리가 좁혀졌다. 바로 뒤에 멈춰 선 봉고차의 소리를 듣고는 머리가 하얘졌다.


몸이 반응해 뛰었다. 하지만 이내 굽은 부러져 튕겨 나갔고 그대로 나자빠져 발목이 부어오르는 통증과 함께 움직일 수 없었다. 그때 뒤에 멈춰서 있던 봉고차는 다시 조용한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소리조차 낼 수 없을 공포에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때 앞에 봉고차가 멈춰 서고 우람한 남자가 문을 열고 뛰어내렸다. 차에서 뛰어내린 남자는 곧장 차 안에 있는 또 다른 남자를 돌아보며 무언가를 손에 건네받았다.


막혀있던 목이 뚫리듯 소리를 질렀다. 살려달라고 소리를 지르며 머리를 감쌌다. 소리 내어 울며 두 손을 모아 빌었지만 아무 말도 없었고 바지를 붙들고 애원하며 남자를 쳐다봤다.


별 미친년을 다 본다는 듯한 눈빛의 남자는 어깨를 두드리곤 손에 들려있던 신문을 신문함에 꽂고는 다시금 봉고차에 올라타 사라졌다. 사라지는 봉고차의 뒷모습에는 “새벽을 여는 신문, 벼룩시장”이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적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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