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없는 글쟁이의 글쓰기 편법

by 김상혁

무재능


원래 나는 직업군인이었다. 안정된 생활과 일상화된 패턴을 가지고 살아가던 중, 괴리감이 들어서 많은 고민을 했다. 그 고민은 안정적인 군인이라는 직업관 신분을 가진 채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생각이 꼬리를 물다 보니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이었는지, 할 수 있는 게 무엇이었는지를 어느샌가 버리고 살아왔었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과연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지금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 일 년 동안 고민을 했고 나는 글을 쓰고 싶다는 결론을 내렸다.


제대 후 일단은 독서실에 가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문예 창작과를 나온 것도 아니었고, 그 언저리에 발을 담가 놓은 적도 없었고 주위에 발을 담그고 있는 사람조차 없었다. 맨땅에 헤딩이었다. 그렇게 헤딩을 해가며 글을 썼고 하나의 짧은 글을 써서 완성한 후 전자책 출판사에 투고했지만 까였다. 그래서 직접 출판을 목표로 다시 인터넷 검색을 했고 전자책으로 출판했다.


결과는 참담했고 글을 목표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커뮤니티에 기웃거리며 내가 쓴 글을 올려 보았지만 역시 참담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이 쓴 글들을 훑어보다 느껴지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나는 재능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내가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처음 날아든 현상은 질투였다. 재능 있는 자들에 대한 분노, 좌절, 열등감 등의 부정적인 마인드가 자리 잡았다. 나는 이렇게 간절하고 절실한데 어째서 신이라는 작자는 내가 아닌 저들에게 재능을 주었나? 그런 생각으로 며칠을 보냈고 몇 달을 신음했다.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던 내가 쓴 모든 글들을 다시 한번 읽어보면서 하나씩 삭제를 해버렸다.


이런 쓰레기들을 왜 나는 가지고 있는 것일까? 자기반성과 함께 모두 날려버렸다. 그 결과는 포기로 이어졌다. 완전한 포기는 아니었지만 선택적 포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 취업을 하게됐다. 취업을 해서는 퇴근 후 글을 쓰자는 마음이었다. 현실은 퇴근 후 쓰러져 잠드는 수순이었다. 주말이면 독서실로 향했다. 독서실에 가면 컴퓨터 앞에 앉아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뭘 써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고 그렇게 시간을 또 버렸다.


예체능은 재능이 모든 걸 가른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곤 서점으로 달려가 내가 생각하는 천재였던 파울루 코엘류의 책들을 사서 읽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재미있단 생각이 들었고 한 권의 책을 읽고 나면 나도 이렇게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이 사람처럼 글을 쓸 수는 없겠지만 글을 쓰자. 일기라도 써야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일기를 썼다.


하루하루 일기장에는 부정적인 글들이 채워졌다. 소설가 김영하에 대한 질투, 파울루 코엘류에 대한 열등감 등으로 말이다. 주위에선 재능을 논하며 속을 긁어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주위에서 속을 긁어대니 더 글이 쓰고 싶었다. 재능 없는 글쟁이의 재미있는 글을 보여주고 말겠다. 그런 오기 말이다.


편법


토요일 오후, 강남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교통체증이 가득한 강남대로의 차들에게 마음속으로 신랄한 욕설을 퍼붓고 서점으로 들어갔다. 강남에는 2개의 서점이 있었다. 중고 서점 하나와 대형서점인 교보문고가 있었다. 먼저 교보문고로 들어가서는 ‘글을 잘 쓰는 방법, 소설 쓰는 법, 창작 비법’과 같은 문구의 책을 찾았다. 몇 권의 책을 뒤져보고 제목을 적은 후 중고서점으로 달려가 중고 나온 책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나는 꽤 좀생이 기질이 있어서 말이다. 결과적으로는 교보문고로 돌아가 구입했지만.


독서실에서 책들을 펼쳐두고 나름의 분석을 시작했다. 글을 쓰기 위해 갖춰야 할 것들과 재미를 더해주는 요소, 그리고 글에 필요한 구성과 진행 방법 등을 노트에 적어 내려갔다. 책마다 말하는 것들이 모두 달라서 조합이 되지는 않았지만 모든 책에서 공통적인 게 있었다. 그건 ‘원인과 결과였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원인과 결과로 이루어진다는 그 한마디는 어느 책이든 적혀있었고 그것을 따라 분석하기 시작했다.


‘원인과 결과’ 이 다섯 글자를 토대로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써봤다. 결과는 또다시 참담했다. 원인 한 줄과 결과 한 줄을 쓰고 보니 그다음이 문제였다. 뭘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는 상황에 닥친 것이다. 주제를 바꿔보고 소재를 찾아봐도 똑같았다. 그래서 다시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역사상의 천재 소크라테스, 그의 유지를 이어받은 아리스토텔레스는 또 다른 역사상의 천재, 즉 타고난 재능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그 천재가 하는 말은 두루뭉술해서 나 같은 재능 없는 사람이 알아들을 수가 없던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친절한 사람이었다. “그래 알았어, 알아먹기 쉽게 말해줄게.”라고 말하듯이 ‘극은 3막으로 이루어진다. 1 막은 일상, 2 막은 비일상, 3 막은 일상이다.’ 그렇게 알려주었다. 이 말만으로는 두루뭉술하다. 열받을 만하지만 그 천재의 조언을 새겨듣기로 하고 힌트를 찾아보았다.


‘원인과 결과’ 그게 힌트였다. 2단계가 원인과 결과였다면 그 원인은 1막일 테고 3막이 결과일 것이다. 그렇다면 2 막은 무엇일까 고민을 해보니 의외로 쉽게 풀리는 것이었다. 원인, 현상, 결과 하루에 수십 번을 봐왔던 것, 수십 번을 써봤던 것의 요소들이었다. 보고서였다. 보고서의 3가지 요소들이 답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원인 현상 결과를 바탕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이제야 2줄의 글들이 커져나가기 시작했다.


고작 1장, 보고서는 1장에 모든 것 담는다. 원인, 현상, 결과를 토대로 써 내려간 글은 1장을 넘기지 못했다. 이쯤 되면 사람이 미치는 게 정상이다. 난 그때 미쳐있었다. 지극히 정상이었다. 집에 있던 모든 책들을 가방에 넣어 중고서점으로 달려가 팔아버렸다. 또다시 무재능에 고개를 숙이고 미쳐 날뛰며 재능 있는 자들을 향해 열등감을 폭발 시켰다. 중고서점에서 한 권의 책을 사고 읽자마자 쓰레기 같다며 다시 팔아버리고 또 그 돈으로 책을 사고 쓰레기라며 바로 팔아버리기를 반복했다.


그 미친 과정을 겪다가 부록으로 주어진 노트를 한 권 가지게 되었다. 일기장 이외엔 노트가 없던 내 책상에 노트가 놓이자 뭔가를 끄적이기 시작했다. 무슨 말인지도 모를 글들을 써 내려갔다. 기껏해야 한 줄, 두 줄 정도였다. 낙서로 노트가 채워졌다. 노트의 반이 낙서로 채워졌을 즘 또 다른 미친 짓을 시작했다. 인터넷을 켜고 가장 먼저 보이는 단어를 적는 것이었다.


‘커피’ 맛도 없고 쓰기만 하다. 왜 먹는지 모르겠다. 미친놈들이다~ 와 같은 쓸데 없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두서없이 쓰기 시작한 글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진화했다. 하나의 단어에서 연상되는 또 다른 단어를 찾게 되었다. ‘커피, 카페, 아메리카노’ 그렇게 단어를 몇 개 적어놓고 단어를 보며 글을 썼다. '카페에 가면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집에서 먹는 커피보다 쓴 이 카피를 비싼 돈을 주고 사 먹는다. 다들 미쳤다.' 이런 식으로 시골집에 풀어 논 암탉의 배설물처럼 싸질러댔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르고 스스로 단어 연상법이라며 이름짓고 연습을 하게 됐다. '커피, 카페, 아메리카노, 음악.' 단어에서 떠오르는 단어들을 네다섯 개 적어놓고 글을 만들어 간 것이다.


'밖이 훤히 보이는 테라스에 한 여자가 앉아있다. 창밖으로 눈이 내리고 있다. 이 추운 겨울, 저 여자는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테라스에 앉아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헤어진 연인을 떠올릴지도, 누군가를 기다리며 운치를 즐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저 여자의 행동을 보며 미친 여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이유는내 이어폰 너머에 울려 퍼지고 있는 베토벤의 운명이라는 곡 때문일테다. 카페 안을 떠도는 캐럴 송과 나만의 감정, 그로 인해 저 여자는 어느 광고 속 주인공처럼 비친다.'처럼 두서없지만 단어를 길게 늘여 쓰기 된 것이다.


재능 없는 사람이 나뿐 만은 아니었다. 그 재능 없는 사람들은 나와 같이 편법을 찾아다녔고 재능 있는 자들의 기술을 훔치고 있었다. 훔치고 빼앗고 분석하여 내놓은 결과를 세상에 알렸다.


‘발단, 전개, 위기, 결말’ 우리가 학교 다니며 배웠던 방법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3단계에서 진화해 4단계가 됐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재능 없는 우리에게 재미있는 글을 쓸 수 있을 만큼의 편법이 되지는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또 훔치고 빼앗아 분석했다.


“발단, 전개, 위기, 심화, 결말” 이쯤 되면 재능 없는 사람이 재미있는 글은 쓰지 못해도 글을 쓰고 만드는 것은 가능해졌다. 5단계의 구조를 가지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물론 여전히 몇 장의 글이 나올 뿐이었지만 항상 단어 연상법을 통해 글을 길게 늘이는 연습을 했다.


5단계에서 만족하지 못한 재능 없는 존재가 여행을 떠났고 그 여행에서 영웅 서사 12단계를 만났다. 훔칠 시간이다. 12단계는 일상, 균열, 벽, 망치, 탈출, 전개, 어둠, 침식, 희망, 결투, 구원, 일상으로 나뉜다. 먼저 일상과 균열, 벽, 망치, 탈출은 5단계에서 발단 부분에 속한다.


일상- 주인공의 일상적은 모습을 나타낸다. 예를 들어, ‘나는 평범한 고등학생이다. 오늘도 교복을 입고 학교로 향한다.’ 와 같이 현재의 주인공 모습을 그린다.


균열- 일상적인 주인공의 삶이 어떤 균열을 가하는 사건이 된다. 예) ‘버스 안, 같은 학교의 교복을 입은 처음 보는 김태희를 닮은 여학생이 중심을 잃고 쓰러지며 나를 덮쳤다. 새로운 전학생이었다.’정도의 간략하게 그려본다. 균열은 일상적인 학생이 이제는 비일상적인 내용으로 가게 될 사건을 만드는 것이다. 다양한 사건을 줄 수 있고 연출도 가능하다.


벽- 벽이란 것은 일상에서 비일상으로 가야 하는데 갈수 없는 이유가 되는 것을 말한다. 작가는 주인공을 비일상으로 보내야 한다. 그런데 주인공을 일상적인 삶을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 상황, 그럴 때 작가는 전지전능한 신이 되어 주인공을 비일상으로 빠지게 만드는 것이다. 예) 너무나 예쁜 전학생에게 한눈에 반했지만 그에 비해 나는 못생기고 소심한 성격이었고 다른 남학생들 모두 전학생에게 관심을 보였다.


망치- 이 망치는 벽을 허무는 망치다. 주인공을 둘러싼 벽을 허물어야 주인공이 비일상으로 진입을 하게 되는 것이다. 예) 전학생은 비어있던 내 옆자리에 앉게됐다. 운이 좋게 짝이 됐고 이사 온 집도 같은 방향이었다. 길을 잘 모르는 전학생에게 나는 친철을 베풀었다.


진입- 망치로 벽을 허물었으니 비일상으로 진입한다.


그다음부터는 전개 부분이다. 전개 부분은 세부적으로 나뉘지 않는다. 자신이 구상했던 이야기의 방향을 적어 내려가면 된다. 앞서 예를 들어왔던 평범한 고등학생의 이야기를 풀어서 대략 전학생에게 반해 전학생과의 사랑을 꿈꾸는 남학생 정도로 만들고 이야기를 진행한다. 등, 하굣길에 같이 웃으며 학교를 오가고 학교에서는 짝으로서 친밀감을 더해가는 등의 에피소드를 넣었다고 치자.


어둠- 이 단계는 위기와 갈등의 단계다. 평범한 고등학생이 전학생의 사랑을 위해 고군분투하는데 드리우는 그림자라고 본다면 이해가 쉽다. 전학생에게는 이미 남자친구가 있었다던가, 또는 평범한 남자(이하 평범남)의 절친이 전학생을 좋아한다며 고민을 털어놓는다던가 하는 평범남의 내적, 외적으로 갈등이나 위기를 초래하는 것이다.

예) 평범남은 전학생이 전학은 온 날부터 행복함에 얼굴이 항상 빛났고 장밋빛 인생이 그려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로 인해 그는 한 집단에서 타깃이 되고 있었다. 전학생을 마음에 두고 있던 남학생들은 모두 평범남을 질투하며 깎아내리고 싶어 했다.


침식- 주인공(평범남)에게 위기나 갈등이 초래했다고 하자. 그런데 위기가 왔다가 그냥 쓩하고 지나가서 둘이 잘 먹고 잘 살았습니다. 하고 끝난다면 이야기가 재미있을까? 재미없을 것이다. 그래서 위기나 갈등의 단계에서는 그 어둠이 다가오면 그 어둠에 먹히게 만들어야 한다. 평범남은 다른 학생들의 질투로 유언비어에 시달리고 심지어 남학생들의 괴롭힘과 왕따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 예) 평범남은 교복은 매일 찢기고 얼굴과 몸에는 상처들이 늘어갔다. 결국 전학생을 멀리하게 되었고 등, 하교는 물론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게 됐다. 그러면 괴롭힘은 피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희망- 어둠에 다가오고 어둠에 먹히고 좌절과 분노 등에 휩싸여 있는 주인공에게 작가가 주는 한줄기의 빛이다. 그리고 이 희망은 작가가 이 이야기에서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힌트를 주기 위한 희망이기도 하다. 예) 전학생은 평범남이 괴롭힘을 당하는 사실을 알게 되고 평범남에게 실망감을 표현한다. 함께 공부하고 함께 등, 하교하며 좋았다. 같은 대학에 진학해 함께이고 싶었다며 쓸쓸한 표정을 건넨다.


결투- 작가가 던져준 위기와 갈등에 정면으로 대항한다. 주인공(평범남)은 모든 문제들을 피하거나 숨지 않고 앞으로 향한다. 당연히 이 단계에서는 모든 영화나 소설, 드라마가 그렇듯이 악당이 100대를 때리고 주인공은 1대를 때리며 이기는 그런 진부한 스토리다. 예) 평범남은 골목길에 서서 전학생을 기다린다. 손목시계를 보며 걸어오는 전학생을 보며 손을 흔들 곤 웃으며 학교로 향한다. 함께 들어와 앉은 교실, 자신을 괴롭히던 남학생은 잠시 이야기하자며 평범남을 부르고 평범남은 가해학생에게 맞서 싸움을 시작하지만 일방적인 폭력일 정도의 타격을 입는다.


구원- 구원의 단계를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주제를 주인공이 찾아내 전달하는 것이다. 즉, 평범남의 이야기 주제는 사랑의 결실은 아픔을 승화한다.라고 한다면 이 단계에서 그것을 평범남이 각성하는 것이다. 예) 한참을 두드려 맞고 입가에는 피가 흐르며 두 눈은 퉁퉁 부어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런 평범남을 보며 시시덕거리며 웃는 남학생들 사이로 전학생은 지지말라는 눈빛을 보낸다. 평범남은 용기를 얻어 잘 보이지도 않는 눈에 힘을 모아 주먹을 날렸고 그 주먹에 가해학생은 턱을 맞고 자리에 꼬꾸라진다. 쥐고 있던 주먹도, 두 눈도, 입술도 모두 피에 얼룩지고 멍이 들어 볼품없는 평범남에게 전학생은 눈물을 흘리며 두 손을 꼭 잡으며 웃어 보인다.


일상- 결말이 되는 일상이다. 발단 부분의 처음 일상과는 반대의 모습이다.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던 평범남은 앞선 과정들을 모두 겪고 나서 돌아온 일상에서는 달라져 있다. 작가가 던진 주제를 깨우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예) 평범남은 골목길에 서서 전학생을 기다린다. 손목시계를 보며 걸어오는 전학생을 보며 손을 흔들 곤 웃으며 학교로 향한다. 교실로 들어선 평범남과 전학생, 반 친구들은 둘을 보매 환호성과 박수로 교실을 채운다. 나란히 일류 명문 대학에 합격한 두 사람이 대견하다며 선생님은 두 팔을 벌려 둘을 끌어안고 노래를 흥얼거린다.


이처럼 12단계의 영웅 서사 구조가 현재 나온 형태의 모습이다. 물론 이 12단계를 모두 적용시킬 필요는 없다. 개인적으로는 10단계 정도로 줄이는 것이 적절하다는 판단이지만 그건 각자의 결정에 맡길 일이다.


호기심과 감정 대입

글을 쓰는 데 있어 중요하다고 말하는 부분이 참 많다. 책을 봐도 얘기를 들어봐도 가지각색의 중요성을 논하는데 개인적인 생각은 호기심과 감정 대입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쓰고 있는 글에 대한 이야기의 결말이 궁금하거나 관심을 가지게 만드는 것, 그리고 주인공이나 글 속에 등장하는 인물에 대한 상태와 상황, 감정을 이해하거나 빠져드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호기심과 감정을 대입 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해 본다.


첫째, 공통점을 넣는 것이다. 독자는 곧 소비자다. 특정 대상을 상대로 마케팅을 실시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얼마 전까지 유행했던 ‘롤러코스터’라는 TV 프로그램을 봤다면 이해가 쉽다. 개그맨인 정형돈이 나와 특정 캐릭터를 연기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어내고 웃음을 주었다. 그것처럼 공통점을 부여하면 감정이입이 쉬워진다. '남녀생활 백서'라는 프로그램에서 여자가 "집에 갈래!"라며 화를 내는 상황이 주어지고 이에 당황하며 데려다주겠다는 남자에게 더 화를 내는 여자. 이 장면도 많은 사람들이 웃고 공감했다. 남자의 언어와 여자의 언어가 달라 누구나 한 번쯤은 적잖이 당황했을 거라는 공감대를 자극한 것이다.


둘째, 동정심 유발이다. 주인공의 상황이 비참해지면 우린 안타까워한다. 굳이 겪어본 상황이 아니라도 안타까운 사실인 건 우리의 눈과 귀와 입으로 충분히 체득되어 있다. 뉴스를 통해, 또는 주변 누군가로 인해 말이다. 그렇기에 주인공의 상황이 내가 겪어본 게 아니라도 동정심을 갖는 일은 난해한 일이 아니다.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해선 초반에 주인공을 비참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그래야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스토리에 빠져들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단순히 스포츠 경기를 보면서도 눈물을 흘리고 어떤 사람은 시대를 뛰어넘는 새드무비를 보면서도 웃는다. 그 차이는 공감능력이다. 보통 여자들은 공감능력이 뛰어난 편이라 드라마나 영화, 책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일이 흔하지만 남자의 경우는 그런 걸 이해 못 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그렇다고 해서 공감능력이 아예 없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그들조차 사건 사고의 뉴스를 보면 안타까워한다.

그 이유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상상을 하고 생각의 폭을 넓히는 인간이기에 한 번쯤 좋지 않은 일에 자신을 대입하고 좋은 일에도 대입하곤 한다.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공감능력이 체득되어왔다. 우리는 어딘가에 숨어있는 그 공감능력을 끄집어내야 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재능이 없는 자로써는 힘든 일이다. 그렇기에 재능 있는 자들의 기술을 훔쳐 호기심을 자극하고 동정심을 유발하는 방법을 쓰는 것이다.


아래의 글은 예전에 썼던 짧은 글이다. 우선 한번 읽어보자.


오랜만에 여고시절의 동창생들을 만나 노느라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긴 머리를 풀어헤치며 춤을 췄더니 힐의 굽이 빠졌고 그제야 정신을 차린 후 시계를 보니 새벽 4시, 친구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노래방을 빠져나와 집으로 향했다.

늦은 시간이라서 신호등도 기능을 멈추고 노란 불빛만이 깜빡거렸다. 도로는 한적하고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새벽 공기는 시원해서 술이 조금씩 깨는듯했다. 굽을 욱여넣어 신은 힐 때문에 비틀거리긴 했지만 기분 좋은 새벽 공기에 모든 게 용서됐다.

집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데 등 뒤에서 헤드라이트가 비쳤다. 이 시간에 무슨 차인가 싶어 돌아보니 아주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봉고차가 보였다. 괜히 무서운 생각이 들어 걸음을 재촉했다. 등 뒤의 봉고차는 계속해서 천천히 다가왔고 혹시나 싶어 뒤를 돌아보면 봉고차는 진행을 멈춘 듯 잠시 서 있는 거 같았다.

빠져버린 굽으로 뛸 수 없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재촉했지만 차보다 빠를 순 없었고 어느새 뒤따라오던 봉고차와 거리는 좁혀졌다. 바로 뒤에 멈춰 선 봉고차의 소리를 듣고는 머리가 하얘졌다.

몸이 반응해 뛰었다. 하지만 이내 굽은 부러져 튕겨 나갔고 그대로 나자빠져 발목이 부어오르는 통증과 함께 움직일 수 없었다. 그때 뒤에 멈춰서 있던 봉고차는 다시 조용한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소리조차 낼 수 없을 공포에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때 앞에 봉고차가 멈춰 서고 우람한 남자가 문을 열며 뛰어내렸다. 차에서 뛰어내린 남자는 곧장 차 안에 있는 또 다른 남자를 돌아보며 무언가를 건네받았다.

막혀있던 목이 뚫리듯 소리를 질렀다. 살려달라고 소리를 지르며 머리를 감쌌다. 소리 내어 울며 두 손을 모아 빌었지만 아무 말도 없었다. 바지를 붙들고 애원하며 남자를 쳐다봤다.

별 미친년을 다 본다는 듯한 눈빛의 남자는 어깨를 두드리곤 손에 들려있던 신문을 신문함에 꽂고는 다시금 봉고차에 올라타 사라졌다. 사라지는 봉고차의 뒷모습에는 “새벽을 여는 신문, 벼룩시장”이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적혀있었다.


이 글을 보면 독자로 하여금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지 호기심을 유발하고 궁금증을 자아낸다. 또한 긴박한 상황을 설정해 감정을 이입을 호소한다. 무서운 일을 당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을 독자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에 반전을 주어 웃음을 유발하기는 했지만 만약 이 글을 영상이나 만화로 만든다고 가정할 경우 뒤에 어두운 배경에 굽이 떨어져 나간 빨간 구두와 눈가에 번진 눈물로 얼룩져 바닥에 앉아 멀어져 가는 봉고차를 바라보는 여자의 모습을 넣는다.


‘당신은 지금 웃고 있습니까? 멀어지는 봉고차를 보며 눈물에 얼룩진 여자는 당신 주위의 또 다른 누군가입니다.’라고 글을 붙인다면 웃고 있던 사람들은 계속 웃을 수 있을까? 바로 숙연해질 것이다. 웃음에서 순식간에 여자의 심정을 대입하며 트라우마를 생각하게 된다. 호기심이나 동정심을 대입하지 않은 사람이면 글의 시작부터 조목조목 따지며 말할 것이다.


“어떻게 새벽 4시가 된 것도 모르고 놀 수 있냐? 애초에 말이 안 돼.”
“개미 한 마리 없다더니 봉고차가 왜 튀어나와?”
“늦게까지 위험하게 여자가 놀다니, 쯧쯧”

이런 반응이 나올 수도 있다. 이들은 감정이입을 하지 못한 거다. 정확히 말하면 글쓴이가 독자의 감정 이입에 실패한 것이다. 공감능력이 탁월한 사람이라면 봉고차가 뒷모습이 보일 때조차 웃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여자에게 감정이 이입되어 안타까워했을 테니 말이다. 이처럼 동정심과 호기심은 독자를 빠져들게 하는데 강력한 힘이 된다.


소재와 주제

처음 글을 쓸 때 어떤 소재가 떠올라서 글을 쓴다. 단순히 소재만으로 글을 쓰게 되면 얼마 못가 벽을 만나고 한없이 키보드만을 쳐다보고 있게 된다. 그 이유는 소재만을 생각했기에 글의 방향과 주제에서 이탈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첫사랑을 소재로 글을 쓴다고 했을 때 단순히 소재 중심으로 글을 써 내려간다면 사랑에 빠지고 사랑을 하고 첫사랑이 실패한다. 또는 행복하게 끝난다. 같은 단순한 마무리가 지어지게 된다. 그러면 누가 그 글을 읽고 싶어 할까? 조금 더 재능 있는 자들의 기술을 훔칠 필요가 있다.


재능 있는 자들은 소재가 떠오르면 그에 맞는 주제와 방향을 설정한다. 여기서 말하는 방향은 전체적인 콘셉트, 테마라 할 수 있다.

' 첫사랑이 아름다운 이유는 순수한 아픔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라고 설정을 했다 치자. 그리고 소재를 다시 보면서 첫사랑의 아픔을 이야기하기 위해 글의 방향이 써내려가지게 된다. 순수했던 첫사랑의 기억을 아름답게 표현하고 처음이기에 몰랐던 사랑의 방법들과 이별의 방식 등이 나열되고 결말에는 미숙했던 나로 인해 나의 첫사랑은 끝이 났다. 돌이켜보면 그때 왜 그랬을까? 지금이라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 와 같은 여운을 남길 수도 있다.'


플롯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 이해하기 가장 힘든 부분이 플롯이 아니었을까 싶다. 대부분 플롯을 설명할 때 건축물의 뼈대라느니 구조의 틀이라느니 하며 설명을 한다. 그럴수록 이해가 될 듯 말 듯 , 혼란만이 가중되고 나중에는 플롯을 이해하는 것을 포기하기도 한다. 나 역시 그랬다. 플롯이 책의 목차와 같은 것인가? 싶었다가 또다시 들어보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플롯에 대해 간단하게 이해를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영화나 소설의 예를 들어 설명을 해보면 영화 ‘아저씨’의 경우 원빈은 옆집 여자아이가 악당에게 잡혀가 구해온다는 내용이다. 이걸 구출 플롯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구출을 하는 내용이라 구출 플롯이라고 하는 것이다. 플롯은 서사의 구조 4단계, 5단계, 12단계처럼 어떠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을 말한다.


‘주인공의 주변 인물 누군가가 납치당한다, 주인공은 그를 구출하기 위해 방법을 찾는다. 그 방법을 통해 구출을 한다.’ 이게 플롯이다. 자세하게 들어가면 이해가 더 어려울 수 있기에 간단하게 머리에 정리를 하기 바란다. 물론 저 플롯에 앞선 언급했던 12단계의 과정을 섞어 넣으며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만드는 것이다.


플롯에도 종류가 있다. 구출, 복수 플롯 등이 있는데 그런 플롯마다 특정 요소들이 들어가고 그 요소들은 찾아보면 되는 것이다. 구출 플롯의 경우 납치된 인물에 비중을 두는 것이 아닌 악당과 주인공의 대립에 초점을 둔다. 구출 여부를 떠나 악당과 주인공의 결투로 극의 마무리가 완성된다. 이런 요소들이 있는 것이다. 단순히 플롯은 콘셉트, 구출을 하는 것이냐? 복수를 하는 것이냐?에 초점을 두고 서사의 단계를 재미있게 나열하는 것이라 보면 된다.

물론 플롯에는 단순 플롯과 복합 플롯이라고 해서 나뉘기도 한다. 단순 플롯은 말 그대로 하나의 플롯을 가지고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다. 복합 플롯은 두 개 이상의 플롯을 깔아놓고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이다. 대개 단편은 단순 플롯을, 장편은 복합 플롯으로 진행하게 된다.


재능이라는 건

예체능에 있어서 재능이 90%를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나머지 10%는 때에 따라선 노력이라 말하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운이라고도 한다. 가끔은 시간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재능 없는 자로써 알게 된 건 재능 없는 자가 재능 있는 자를 이기는 건 '많이 보고, 많이 듣고, 많이 배우고, 많이 해보는 것' 그것이 꼭 정답이 아니라는 것이다.


재능 있는 자들도 재능 없는 자들만큼 노력한다. 다만 그들의 노력은 자신의 재능 속에 숨겨진 재미와 함께 움직인다. 우리는 이기기 위해 노력할 때, 그들은 재미를 위해 움직이고 있다. 그런 그들을 우리는 노력한다고 말한다.


그 차이가 그들을 이길 수 없는 이유가 된다. 헛소리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믿는 게 좋다. 그렇다면 다르게 생각을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재능 없는 내가 재능 있는 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지기 위해, 더 벌어지지 않기 위해 무언가 방법을 찾는다. 그리고 재능 있는 자들의 기술을 훔치는 편법을 사용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극은 3막으로 이루어진다고 했고 나는 이것을 보고서를 떠올리면 원인, 현상, 결과라는 구조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것은 내 모든 형태가 되었다. 재능 있는 자들에 대한 질투와 시기가 원인이 됐고 그들의 기술을 훔치고 엿보며 편법을 찾는 현상이 발생하게 됐다. 그렇다면 결과는 어떠한가?


그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나는 재능 없다. 재능 있는 자들처럼 뚝딱하고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없다. 나의 결과는 현재 진행형이다. 그 결과물은 어쩌면 10년 뒤에 나타날 수도 있고 누군가는 바로 어제 나타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직 나는 결과물이 나타나지 않았다.


영원히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건 아직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미 재능을 나타낸 재능 있는 자들의 재능을 훔쳐 우리의 재능을 만들어낼테다.


누군가 나와 같은 재능 없는 자가 재능 앞에 무릎 꿇고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해봤는데 방법이 없다 한탄하고 있다면 방법은 두 가지뿐이다. 지금 바로 포기하던가, 지금부터 다시 하던가.









매거진의 이전글긁지 않은복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