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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상혁 Jul 08. 2021

그때 그 못난이 16화

어릴 땐 외면했고 이젠 너무 늦었다

이 지긋지긋한 동네를 벗어나지 못했다. 20살이 되고 대학에 진학했지만 여전히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와 중학교 버스 정류장을 지난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이 동네 마을버스는 그때 그대로다. 변한 게 있다면 비 오는 날 윤기 흐르는 청개구리 같았던 외색이 초가을 잡초 이파리처럼 바랜 정도다. 


대학에 진학하면 미팅도 많이 하고 여자 친구도 사귀게 될 줄 알았다. 꿈같은 얘기였다. 대학 미팅은 영화에서나 흥미진진한 장면이었다. 지루한 맞장구와 끄덕임, 웃기지도 않는 대화만 가득했다. 여자들의 옷이나 신발에 왜 내가 궁금증을 가져야 하는지 의문이었다. 


몇 번의 소개팅이 있었지만 역시나 크게 관심이 가지 않았다. 이성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 흥분은 넘치도록 들어찼지만 어째선지 즐겁지 않았다. 대학에 대한 환상은 점점 줄어들었고 밀려드는 과제와 동아리 활동, 쉴 시간만 생기면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술만 들이켰다. 


오후 휴강으로 동아리방에서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저 멀리 색 바랜 09번 마을버스가 서서히 다가왔다. 술이 완전히 깨지 않아서일까? 3년 전 버스 정류장이 떠올랐다. 그때 이곳에서 못난이가 말을 걸어왔을 때 자연스럽게 인사를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그랬다면 우린 지금도 만나고 있었을 거란 상상을 해본다. 


마을버스 안에는 내가 다니던 학교의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 떠들고 있다. 남학생 무리와 여학생 무리의 멍청한 눈치싸움이 볼만하다. 서로에게 관심이 지대하지만 퉁명스러운 몸짓과 말투, 눈빛이 꽤나 귀엽다. 중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허영과 허세 같은 모습에 괜스레 입가가 올라간다. 


창밖으로 슬슬 가로등 불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약국의 간판도 불이 켜졌다. 저 멀리 한 여자가 미친 듯이 뛰어온다. 마을버스를 타기 위해 뛴다. 시간을 맞추기엔 어림 반푼 어치도 없다. 그런데 익숙하다. 레고머리처럼 똑 떨어지는 단발머리, 붉게 물든 볼따구, 못난이다. 


'아직 이 동네 살고 있었구나?'

소식이 들리지 않아 멀리 이사 간 줄 알았다. 의외로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다. 중학교 바로 앞 동네, 6~7년을 매일 지났던 동네다. 친구들과 수시로 pc방을 전전했던 그 동네다. 


09번 마을버스는 헐레벌떡 뛰어오는 못난이를 놀리듯 새까만 매연을 뿜어내며 동네를 빠져나왔다. 나는 창밖으로 작아지는 못난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못난이가 사라져 버리고 한동안 못난이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렸다. 


"아저씨, 여기서 좀 내릴게요. 죄송합니다."

술에 취한 탓인지 머리가 너무 늦게 돌아갔다. 곧바로 내렸어야 하는데 말이다. 지금이라면 술기운을 빌려서 못난이와 다시 예전처럼 웃으며 인사할 수 있을 텐데 왜 또 지나쳤을까? 이번엔 내가 헐레벌떡 뛰면서 버스 정류장으로 달려갔다. 


거친 숨소리와 붉게 물든 볼따구, 그 모습의 못난이는 없었다. 오히려 내 볼이 붉게 물들어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을 뿐이었다. 시내버스 정류장까지 뛰어가 못난이의 모습을 찾았지만 너무 늦었다. 


3년 전 사춘기의 나는 못난이를 외면했고, 성인이 된 지금의 나는 너무 늦었다. 그 덕분에 결심하게 됐다. 나는 다시 못난이를 만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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