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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상혁 Aug 19. 2021

그때 그 못난이 19화

공백의 시간

오후 늦게까지 술이 깨지 않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혹여라도 술냄새가 나진 않을까? 눈동자가 흐리멍텅하진 않을까? 고민과 걱정을 안고 카페로 향했다. 한걸음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걱정과 고민은 설렘으로 바뀌었다. 


약속시간보다 1시간 일찍 도착해 창가 쪽 자리를 잡았다. 괜히 화장실을 들락날락 거리며 머리를 매만지고 술냄새가 나진 않는지 확인했다. 좋은 향기를 내고 싶다고 열심히 페브리즈를 뿌려댔다. 1분이 지날 때마다 심장박동은 더 빠르게 널뛰는 것 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카페지만 단번에 알았다. 어떻게 알았는진 모른다. 그냥 느낌으로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내게 전해졌다. 못난이가 카페에 들어선 순간 자리에서 일어나 기다렸다. 군대에서 처음으로 선임들 앞에서 경례할 때만큼 몸이 굳었다. 멋지게 웃으며 반갑다고 인사를 건넬 생각이었는데, 몇 번이고 시뮬레이션을 돌렸는데 결과는 어정쩡한 바보가 입 벌리고 어버버 할 뿐.


"오랜만이네? 군복 입고 왔을 줄 알았는데 아니구나."

"어, 휴가니까 군복은 벗고 왔지."

멋쩍은 미소와 함께 차디찬 아이스커피를 호호 불어가며 목 구녕으로 넘겼다. 이 얼마나 바보 같은가? 그 모습을 보고 못난이는 갸우뚱한 표정으로 미소 지었다.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난?"

"어?"

아이스커피를 호호 불어가며 목 넘김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바보 같았는데 그걸 또 혼자 마시고 있다. 아차, 싶어 급하게 커피를 주문하고 못난이 앞에 대령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예전 친구들은 잘 만나고 있는지, 그때 버스정류장에서 기억 못 한 게 아니라 말이 안 떨어졌다는 얘기 등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또 그때와 마찬가지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애꿎은 커피잔의 얼음만 놀려댔다. 어느새 못난이의 얼굴도 지쳐갔다. 


"근데 난 왜 보자고 했어?"

"그냥, 그냥 보고 싶었어."

"갑자기? 내 번호는 어떻게 알았어?"

"너 유미랑 친했잖아? 졸업앨범에 있는 유미네 집으로 전화해서 물어봤어."

어색한 게 싫었는지 못난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리웠다. 쉴 새 없이 조잘거리던 저 입과 손동작이.


못난이가 만들어낸 흐름 덕분에 천천히 조금씩 옛 모습을 찾아갔다. 천진난만하게 장난치고 말장난을 주고받았다. 그렇지만 예전과 같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이미 내가 알던 못난이는 사라졌다. 지금 내 앞에 앉아있는 못난이는 10년 푼수 같던 그 아이가 아니었다. 잃어버린 건지 잊어버린 건지 모를 10년의 시간은 못난이가 달라졌음 알렸다. 내가 좋아했던 그 시절의 못난이를 다신 볼 수없다는 현실, 그 사실이 너무 크게 다가왔다. 아파왔다. 


"우리 아직 할 말이 많은 거 같은데, 술 한잔 할래?"

"그럴까?"


이런 모습이 있을 줄 몰랐다. 고장 난 카메라 셔터처럼 눈꺼풀이 지멋대로 오르락내리락하고 두 뺨은 붉다 못해 새까맣게 타오른다. 알 수 없는 꼬부랑 말로 떠들다 알아듣지 못하면 버럭 화를 낸다. 


"야, 그때 버스정류장 기억나? 그때 어? 니가 나 모른척해서 내가 얼마나 쪽팔렸는 줄 알아? 개넘의 시키가!!"

눈을 뜬 건지 부라린 건지 헷갈리는 모습으로 침 튀기며 화를 내는 못난이가 어쩐지 더 친숙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 모습은 내가 하려던 모습이었다. 술기운을 빌려 예전 일을 꺼내 들고 후회와 고백을 하려던 내 모습 말이다. 


"그때는 미안, 사춘기였나 봐. 기억 못 한 게 아니라 그냥 말이~"

"노래방 가자."

나름 분위기 잡고 과거를 회상하며 읊조리려던 찰나 내 말을 쏙 잘라먹고 일어났다. 

"빨리 와! 뭐해?"

"어, 그래. 가자."


자는 건가? 잠든 건가? 긴가민가했다. 마이크는 쥐고 있는데 눈은 감겨있다. 눈은 감겨있는데 입술은 성실하게 움직인다. 이젠 무슨 노래인지도 모른다. 그저 가만히 듣고 있다. 

"너도 불러."

마이크를 건네받고 분위기도 잡을 겸 진득한 발라드를 한곡 뽑았다. 물론 못난이가 바로 취소했다. 오글거린단다. 무거운 두 눈을 깜빡이며 노래를 기다리는 모습, 선택지를 많이 주지도 않았다. 결국 신나는 댄스곡을 불러야 할 판이었다. 


"붐빠 붐빠 붐빠 붐빠~ 따라라딴다 따라라딴다~"

전주가 흘러나오자 씨익 웃으며 박수를 보낸다. 

"나는 가끔 이런 생각들을 했어,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누군가도 지금 나와 같은 생각으로 나의 모습들을 가끔씩 그려보는지~"


어긋난 박자를 따라잡으며 연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빠르고 흐리게 흘러가는 가삿말을 붙잡으려 애썼다. 등 뒤에서 조용히 박수를 쳐주던 못난이의 박수소리가 어느새 멈췄다. 나는 여전히 가삿말을 쫒고 있었다. 


"나에 상상 속에 그리던 널, 나의 눈이 너와 마주치던 그 순간 나는 굳어버렸지 할 말도 잃어버린 채~" 

정신없이 노래를 부르며 후렴구에 다다랐을 때쯤 등 뒤에서 조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얘기 같네."

뒤를 돌아볼 순 없었다. 차마 뒤로 돌아 얼굴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하지만 왠지 못난이의 눈과 입, 붉어진 뺨이 그려졌다. 내 노랫소리는 점점 작아졌고 이내 마이크는 기능을 상실했다. 노래를 재촉하는 노래방 사운드만 울려 퍼졌다. 나도 못난이도 아무 말없이 노래방을 채워갔다. 공백의 시간이 나에게 알려준 건 확인이었다. 10년을 되돌릴 수 있다는 확인.



23살의 생일, 삼청동으로 나들이를 나왔다. 가을인 거 같더니 금세 찬바람이 불어왔다.

"어? 저 여자?"

"응?"

"단발머리에 체크무늬 남방, 두 손으로 커피 들고 있는 여자."

"저 여자가 왜?"

"초등학교 동창이야. 그리고 내 첫사랑."

나는 말없이 하늘을 봤고, 못난이는 땅을 봤다. 못난이도 나도 그때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우린 손을 맞잡다. 아주 꼭 부여잡고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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