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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아샘 Jun 21. 2021

나와 아내의 결핍

부모의 결핍이 자녀 교육에 어떤 영향을 줄까

 아내와 나는 대화를 많이 한다. 대화를 하다 보면 닮은 점들이 참 많다. 가끔은 대화를 하다 보면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우리가 다른 점들도 생각보다 많기 때문이다.     


 먼저 나는 학창 시절 키가 많이 작았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1학년 때 까지는 우리 반 남·여 모두를 합쳐서 내 키 번호가 항상 1번이었다. 주변 친구들보다 머리 하나만큼 작았다. 키가 큰 친구들이 항상 부러웠다.     


 학창 시절 아내는 또래에 비해서 키가 많이 컸다. 아내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단 한 번을 제외하고는 키순서로 맨 뒤에 서 있었다. 작고 귀여운 친구들을 부러워했고, 자신이 친구들과는 뭔가 다른 이상한 사람인 것 같은 느낌이어서 항상 불편해했다.     


 나는 작은 키가 콤플렉스였고 아내는 큰 키가 콤플렉스였다. 나는 학창 시절에 큰 사람들을 항상 부러워했고, 아내는 반대로 작은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어떤 고등학교를 다녔는가도 아내와 나는 많이 달랐다. 나는 소위 말하는 명문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 당시 서울에선 고교 평준화가 시행되고 있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인근 고등학교에 자동적으로 배정이 되는 방식이었다. 내가 가게 된 고등학교는 다들 기피하는 학교였다. 우리 학교는 학습 분위기가 좋지 않은 것으로 유명했다.      


 우리 반 학생들은 50여 명가량 되었는데 나를 포함해서 4~5명의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수업 시간에 전부 엎드려서 잠을 잤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던 인문계 고등학교였음에도 수업 시간에 깨어있는 학생들을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선생님들도 학생들을 일찌감치 포기해서 그들을 깨울 생각도 하지 않으셨다.     

 

 친구들과 학업에 대한 부담 없이 즐겁게 고등학생 시절을 보내기는 했다. 다만 주변 친구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며 자극을 받지는 못했다. 항상 잠만 자는 친구들 옆에서 나는 스스로가 굉장히 공부를 열심히 하고 또 잘한다고 착각을 하며 지냈다. 공부에 대한 큰 자극과 노력 없이 그렇게 고등학생 시절을 보냈다.     


 아내의 학창 시절은 나와는 또 달랐다. 아내는 지방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나왔다. 본인이 원하는 고등학교에는 시험을 봐서 입학을 해야 했다. 아내는 도시에 있는 명문 고등학교로 시험을 다. 지방에서 중학교까지 상위권이었던 아내가 도시에 있는 이름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을 한 것이었다.      


 아내가 고등학교에 가니 본인보다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많이 위축이 되었다고 했다. 아내가 진학한 고등학교에선 다들 공부를 열심히 다. 아내 주변에는 공부를 열심히 하고 또 잘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중학교까지 상위권이었던 아내였지만 그들과 경쟁하며 부족함을 느꼈고 아내의 자존감이 많이 떨어졌었다고 했다.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 영어 그룹 과외를 했었다. 영어에 대해서는 어릴 적부터 나름 체계적으로 학원에서 배웠다. 영어 그룹 과외를 하며 영어를 일찍 접할 수 있었다.


 반면에 아내는 어릴 적 영어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학습지를 통해 영어를 좀 더 배우고 싶어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오빠의 학습지 공부를 어깨너머로 지켜봐야 했다.     


 나와 아내는 각기 다른 삶을 살았다. 처한 환경도 상황도 같지 않았다. 선택에 의해 또는 자발적이지 않게 결핍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결핍은 현재 우리 가정과 자녀 양육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먼저 나는 사랑이가 너무 작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반면에 아내는 사랑이가 너무 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우리는 키로 인해서 학창 시절에 스트레스를 각각 받았다. 그래서 우리 자녀는 그런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이다.     


 사랑이는 아직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2살 아이다. 나는 벌써부터 사랑이가 명문 고등학교에 진학을 했으면 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자연스럽게 경쟁을 하면서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그런 학교에 진학하기를 바라고 있다. 반면에 아내는 지나친 경쟁이 아이의 자존감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저 사랑이가 즐겁게 학교 생활을 할 수 있는 학교에 진학하기를 바란다.     


 아내는 사랑이가 조금 더 크면 영어 교육을 늦지 않게 시작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한다. 가능하다면 영어는 이른 시기에 가르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반면에 나는 굳이 영어를 이른 시기에 가르쳐야 하냐고 말한다. 한글도 잘 모르는 시기에 영어를 가르치는 것은 아이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나와 아내의 바람은 대부분 각자의 결핍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각자가 어린 시절부터 부족했던 것들이 자녀에게만큼은 이어지지 않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사전에 여러 가지를 미리 준비하면 자녀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의 결핍으로 인해서 과중한 것들을 자녀에게 억지로 시키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된다.  우리가 사전에 모두 계획을 해서 사랑이가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아 버리는 것은 아닐지도 염려스럽다.     


 결핍 없이 풍족하게만 자라면 좋을? 돌아보면 결핍으로 인해서 우리에게 도움이 되었던 것들도 많다. 아내가 성인이 되어서도 항상 무엇인가를 배우기를 소망하는 것도 과거의 영어 결핍 때문이다. 나는 학창 시절을 공부에 스트레스받지 않고 여유 있고 즐겁게 보냈다. 그런 탓에 성인이 되어 다시 대학 입학을 준비할 때 열정적으로 공부할 수 있었다.  학창 시절에 공부에 질려버린 상태였다면 성인이 된 이후에 또다시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 더 어려웠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녀의 삶을 나와 아내가 모두 계획할 수 있을까? 고등학교 선택도 영어 교육도 우리가 미리 선택하고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녀가 해야 할 중요한 모든 선택을 부모가 미리 해놓는 것이 자녀에게 도움이 될까?


 생각해보면 결핍은 우리의 문제이지 자녀의 문제가 아니다. 결핍을 극복해야 할 대상은 또한 우리 자신이다. 우리의 결핍으로 인해 자녀가 원하지 않는 것들을 과잉 공급하게 될까 두렵다. 그래서 결핍의 문제를 자녀에게 돌리지 말고 우리 자신부터 그 문제들을 직면하고 풀어가자고 아내와 이야기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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