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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아샘 Jun 17. 2021

아내의 꿈

그래도 성장을 꿈꾸는 아내 이야기

 아내가 간밤에 꾼 꿈 이야기를 했다.    


 “여보, 나 꿈에서 한국사 시험을 봤어요. 답안을 잘 못 적어서 쩔쩔매고 있었어요. 시험 준비가 전혀 안되어있는데 시험을 봐야만 하는 상황이었어요. 답답하기도 하고 마음을 많이 졸였어요. 그러다가 꿈에서 깼어요.”


 아내는 항상 무엇인가를 배우는 것을 좋아했다. 전공인 상담은 물론이고, 영어, 취미 활동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서 끊임없이 항상 배우고자 노력했다. 특히 전공인 상담에 대해서는 스스로 부족함을 느낀다며 항상 더 공부하려고 했다.


 아내가 가고 싶었던 상담 대학원은 서울에 있었다. 왕복 6~7시간 거리였지만 아내는 학교에 가고 싶어 했다. 나는 사실 아내가 한두 번 다니다가 그만두겠지 생각했다.  하고 싶었던 일을 남편 때문에 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아서, 아내의  대학원 입학을 만류하지 않았다.


 상담 교사 근무와 병행하며 단 한 번의 결석도 없이 아내는 대학원 1학기를 끝내 무사히 마쳤다. 아내의 집념이 생각보다 더 대단했다. 아내가 몸이 상했음을 스스로 인식하지 못했다면 2학기도 그렇게 계속 다녔을 것이다.


 대학원 1학기를 마치고 나니 아내의 몸에 이상 징후가 나타났다. 그동안은 긴장한 탓에 몸의 변화를 놓치고 있었던 것이었다. 건강을 위해 상담 대학원 2학기 과정을 잠시 중단하기로 했다.

  

 아내는 인근 문화센터에서 배우는 리 그라피 강좌에도 꾸준히 참여했다. 임신 중이었지만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강좌에 참석했다.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다사실이 즐거워 보였다.

    

 아내는 영어를 못하는 것에 대해서 항상 부끄러워했다. 영어 성경을 구입하여 매일 조금씩 영어로 암송을 했다. 영어 그림책을 구입해서 태교로 영어 책을 읽어 주기도 하였다. 또한 영어 교재를 구입하여 틈날 때마다 혼자 영어 공부를 했다. 아내는 영어를 잘하는 오빠를 항상 자랑스러워하고 부러워했다. 


 아내의 오빠는 영어를 잘했다. 오빠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신이 영어를 못하는 이유는 ‘○선생’ 때문이라고 말하곤 했다. ‘○선생’은 내가 어릴 적부터 영어 방문학습 업체로 유명했던 영어 학습지 업체였다.


 오빠는 어릴 적부터 ‘○선생’으로 공부를 해서 영어를 잘하는 것이라는 말이었다. 자신도 ‘○선생’을 하고 싶었지만 부모님께서 시켜주지 않으셔서 못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선생만 해서 영어 잘할 거면, 세상에 영어 못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나의 에도 아랑곳없이 아내는 ‘○선생’을 아직도 절대적으로 신뢰한다. 그만큼 과거에 영어 공부를 하지 못한 것이 아쉬운 모양이었다. 


 아내는 나와 결혼을 하고 사랑이를 낳다. 우리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출산이었다. 아내는 사랑이를 보며 진심으로 행복해했다. 아내가 휴직을 하고 전담으로 육아를 맡게 되었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힘들지만 그래도 늘 즐겁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아내는 육아로 바쁜 와중에도 본인이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무엇인가를 배우고자 했다. 최근에는 성경에 관심이 많아져서 성경 읽기 및 암송을 하고 있다. 온라인으로 진행하고 있는 성경 암송 모임에서 아내는 팀장의 역할까지 맡고 있다.


 아내는 육아로 지치고 힘들 텐데 잠시라도 꼭 짬을 내서 말씀을 암송하고 녹음해서 올린다. 같은 팀 사람들이 암송을 하도록 독려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끊임없이 배우려고 하는 아내가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아내가 육아를 하며 배움의 욕구를 잠시 묻어 놓은 줄 알았다. 아이를 바라보며 기쁨을 얻기 때문에 배움에 대한 열망도 많이 식었다고 생각했다.      


 아내의 배우고자 하는 열망은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마음  편에 꼭 꼭 묻어놓았을 뿐이었다. 아내는 공부를 해야 했고 또 공부가 하고 싶었다. 그렇게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갑자기 꿈으로 공부가 나타난 것이었다.


 나도 육아에 함께 동참하고 있지만 아내가 하는 육아 시간 및 양과는 비교할 수가 다. 책임자인 아내의 육아 부담은 조력자인 나와는 비교조차 불가할 정도이다.


 내가 벽을 허물고 성장을 위해 살기로 다짐한 것도 결국엔 아내 덕분이었다. 끊임없이 성장하고자 하는 아내의 모습이 나에게도 강한 자극이 되었다.


 이제는 아내가 성장할 수 있도록 내가 배려할 순간이다. 아내가 육아를 하면서도 성장하려는 마음을 잃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힘을 실어줘야겠다.

   

 나는 그동안 아내의 마음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 엄마이기 이전에 한 여성으로 또 한 개인으로 성장하고자 하는 아내의 마음을 공감하지 못했다. 성장이 멈춘 것 같아 속상해하는 아내를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아이가 너무 좋아서 육아도 좋다고 아내는 항상 이야기하였다. 아내의 육아가 좋다는 이야기를 본인의 성장을 잠시 포기한 것으로만 받아들였다.   

  

 많은 엄마들은 아이를 위해서 많은 것을 희생하고 포기하며 산다. 우리 어머니도 그러셨고, 장모님도 마찬가지셨다. 부모는 자신이 먹는 것까지 포기하며 아이에게 더 주려고 노력한다. 소득과 관계없이 자녀가 더 배우기를 바라며 수많은 학원에도 보낸다. 정작 본인을 위해서는 작은 돈을 쓰는 것에도 인색하면서 말이다.    

  

 영어 학원 가기 싫다며 투덜거리는 우리 반 학생들을 볼 때면 'ㅇ선생 '을 그토록 하고 싶어 했던 아내 생각이 난다. 아내가 'ㅇ선생'을  했다면  영어에서 좀 더 자유로웠을까? 엄마에게도 아내에게도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지치지 않도록 아내의 시간을 따로 마련해 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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