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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아샘 Jun 13. 2021

착한 하숙생

나에게는 모질고 나빴던

 교대 최종 합격 통지를 받았다. 예비 합격자로 마음을 졸이고 있던 나는 최종 합격 소식을 듣고 가족들과 얼싸안고 울었다.


 교대에 합격하기만 하면 모두 끝난 것이라 생각했고, 한동안은 합격에 취해 세상이 모두 아름답게 보였다. 무엇을 하든 웃음이 가시지 않았다. 그러다가 3월이 다가오고 있음을 깨달았고 서둘러 입학 준비를 다.     


 학교가 부산에 있어서, 서울 집에서는 통학을 할 수 없었다. 기숙사에 들어가기엔 성적이 좋지 않았고, 자취를 하자니 부모님께서 불안 해 하셨다. 하숙을 하는 것으로 가족들이 의견을 모았다.     


 나는 군대를 갓 제대한 20대 중반이었다. 제대 후 사회 경험이 풍부한 진짜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께서 부산에 하숙집을 구하러 함께 가자고 하셨지만 극구 만류했다. 이제는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해야 할 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난생처음으로 부산이란 도시로 향했다. 학교 앞에 도착하니 전신주에 ‘하숙집 구합니다’라고 쓰인 A4용지 크기의 불법 전단지가 눈에 띄었다. 그 번호로 전화를 드리고 하숙집에 방문했다.     


 하숙집은 2층으로 된 주택이었고, 좀 더 많은 학생을 받기 위해서 하나의 방을 억지로 2개 3개로 나누어 놓은 모습이었다. 2층짜리 건물에 촘촘하게 6개 이상의 방이 있었다.      


 방을 살필 때 나는 방음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방만 억지로 나누어 놓은 하숙집에 방음이 잘 될 리가 없어 보였다.      


“방음이 잘 안 될 것 같네요. 다른 방은 없어요?”     


 다른 집을 알아보려고 떠나려던 내게 아주머니가 회심의 미소를 보이시며 숨겨 둔 방을 보여 주셨다. 2층 위로 나무 계단을 한참 오르고 나니 조그만 방이 하나 있었다. 다락을 개조해서 만든 방이었다. 아주머니는 멋진 방이라고 연신 소개했다. 사실 방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초라한 공간이었다.    

  

  방은 1평 남짓해 보였고, 천장 높이는 2m 남짓 되어 보였다. 2층과 한참 떨어져 있어서 방음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나에게는 적합한 방이었다. 키가 별로 크지 않은 나도 방에 들어갈 때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야 했다. 똑바로 서있으면 고개가 천장에 닿지는 않았지만, 손을 조금만 올려도 손이 천장에 닿는 기이한 방이었다. 조그만 창문은 억지로 달아놓은 듯 보였고, 환기가 잘 될지도 의문이었다.    

 

 “이 방으로 할게요.”     


 오직 방음 하나만 생각하고 이 방을 바로 계약했다. 월 30만 원씩을 매달 방값으로 지불하기로 하였다.     

 

 그 집에서 나는 2년간 생활했다. 다른 하숙생들은 하숙집 아주머니를 욕하며 금세 떠나가곤 했지만, 나는 하숙집 아주머니를 늘 옹호했다. 안정을 추구하는 성향 탓에 새로운 곳에 갈 마음조차 생기지 않았다.


 하숙집 아주머니는 호탕한 분이셨다. 경상도 사투리를 사용하시며 말을 강하고 화끈하게 잘하셨다. 다만 음식 솜씨는 정말 형편없었다. 아주머니가 즐겨해 주시는 음식은 카레였다. 카레를 먹으며 늘 숨바꼭질하듯 고기와 감자 당근을 찾았다. 하숙집 카레는 물이 흔건한 카레 국이었다. 카레 국에 밥을 말아먹으며 2년이란 시간을 보냈다.


 친구들을 통해 들어보니 주변 하숙집들은 아침, 점심, 저녁으로 아주머니가 밥상직접 차려 주신다고 했다. 반찬도 국도 매번 다르다고 들었다. 다른 하숙집에 비해 우리 하숙집은 방목에 가까운 운영을 했다. 아주머니는 다른 집에 사셨다. 새벽에 잠시 들려서 카레 국을 큰 솥에 끓여 놓으셨고, 음식점에서나 볼법한 대형 전기밥솥에 쌀밥도 한가득 해 놓으셨다. 그리고는 이내 자취를 감추셨다.    


 밥을 먹는 시간도 따로 없었고, 밥상을 아주머니가 직접 차려 주시는 법도 없었다. 밥을 먹을 사람은 카레 국을 손수 데우고 흰쌀밥에 알아서 말아먹고 가야 했다. 반찬은 반찬통에 담긴 김치, 깍두기 등이 전부였다. 반찬통에 담긴 반찬을 덜어 먹는 법도 없이 함께 사는 모두가 같이 먹고 또 먹었다. 위생 따위는 신경 쓸 틈이 없었다. 3~4일이 지나 카레 국도, 흰쌀밥도 다 떨어져 갈 때가 되면 아주머니는 다시 카레 국과 쌀밥을 해놓으시고 사라지시곤 했다.      


 겨울에는 주택이라 너무 추웠다. 하숙집은 기름보일러를 사용했다. 하숙집 아주머니는 투덜거리시며 기름 채우는 일을 차일피일 미루셨다. 방에서 ‘호’ 하고 불면 입에서 하얀 김이 나왔다. 전기장판에 의지해 그렇게 겨울을 났다.     


 여름에 내 방은 찜질방 같았다. 위아래로 속옷만 입고 있어도, 더운 기운을 도무지 없앨 수가 없었다. 옥상과 맞닿은 다락이라 뜨거운 햇볕이 그대로 하루 종일 방에 전달되었다. 땀과 습함으로 인해서 내 곱슬머리는 심하게 말려들어 갔다. 선풍기 한 대로 버티고 버텨도 도저히 여름을 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참았고 버티고 또 버텼다.    

 

 하숙생들은 아주머니와 종종 싸우곤 했다. 아주머니는 학생들이 불만이 많다며 투덜거리셨지만 금세 조치를 취해 주시곤 했다. 그 조치는 근본적인 해결이 아닌 임시방편에 불과한 것이었다.


 학생들은 겨울에 기름을 넣어주지 않는 아주머니에게 항의를 종종 했다. 따져 묻고 나면 곧 기름을 한 번 채워주시곤 했다. ‘이 기름이 50만 원어치’라는 말도 항상 잊지 않으셨다. 그 기름도 2일 정도면 금방 동이 났고 학생들도 차마 다시 따져 묻지 못했다.      


 때로는 학생들이 반찬이 먹을 게 없다고 따져 묻기도 했다. 그러면 비타민 C가 풍부하다며 아삭이 고추를 잔뜩 사 오셨다. 라면을 잔뜩 사 와서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시며 입막음을 하시기도 했다.     


 나는 하숙집 아주머니가 열심히 노력해 주시는데 학생들이 불만이 많다고 생각했다. 군대를 다녀오지 않아서, 어려움을 겪어보지 못해서 불만이 많다며 그들을 속으로 나무랐다. 하숙집 아주머니는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나에게 특별한 대우를 해주시곤 했다.


 다락에서 더위로 힘들어하는 나를 위해 10년 이상 사용한 중고 에어컨을 몰래 설치해 주셨다. 필터 청소를 한 적은 있을까 의심스러웠고, 틀 때마다 이상한 냄새가 나긴 했지만 그걸 따질 여유는 없었다. 중고라도 에어컨이 생겨서 행복했다. 계란에 케첩을 뿌려 먹고 싶다고 아주머니께 흘리듯 말했었는데 바로 커다란 식당용 케첩 통조림을 사다 주시기도 하셨다.

    

 하숙집 아주머니가 보시기에 나는 착한 하숙생이었고 불평불만을 털어놓는 하숙생들은 나쁜 하숙생이었을 것이다. 15년 정도 시간이 흐른 지금 되돌아보니 나는 나쁜 사람이었다. 나 스스로를 돌보지 않고 모질게 대한 참 나쁜 사람이었다. 당시 나는 힘든 상황을 묵묵히 참아내기만 했다.


 더위와 추위를 온몸으로 맞으며 내 몸을 혹사시켰다. 부실하기 짝이 없는 밥으로 만족할 수 없어 밖에서 따로 밥을 사 먹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용돈을 넉넉하게 보내주시던 부모님께는 참 송구한 일이었다.


 아주머니께 부당함을 이야기하고 해결 방법을 함께 찾거나 아니면 내가 하숙집을 나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저 참기만 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그 당시 이 말을 끊임없이 되새겼다. 부당함을 인지하지도 못할 만큼 나는 어렸고 미숙했다. 지금의 내가 당시의 나를 만난다면 가장 먼저 스스로를 돌보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다른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스스로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타인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만 사는가? 내 힘듦을 당연하게 감내하며 참고 또 참으면서 살고 있지는 않은가? 지금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자. 그리고 상황에 맞게 대처하자. 나 스스로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자. 나는 존중받으며 살만한 가치 있는 사람이다. 내가 나를 존중하지 않을 때 어느 누구도 나를 존중하지 않는다.


  15년 전 나에게, 그리고 그때의 나처럼 오늘도 묵묵히 참으며 살아가는 착한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위해서 조금은 나쁜 사람이 되어도 괜찮다고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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