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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아샘 Jun 13. 2021

큰일 났다 병

자기 탐색과 회복

 학급 내에서 갑자기 생각지도 않게 안전사고가 발생했다.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해야 하지? 내 머릿속이 하얗게 번했다.


 '비상이다 비상'     


 내 마음속에서 비상 신호등이 울렸다. 불같이 뜨거운 기운이 온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고, 아까 먹은 음식도 목에 딱 걸린 것만 같았다. 배가 뒤틀린 것처럼 아파오기 시작했다.  


 '큰일 났다 병’이 또 발병을 했다. 이 병은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시도 때도 없이 나를 괴롭히는 병이다.


 나는 매사에 계획을 세워서 미리미리 꼼꼼하게 일을 완벽하게 처리하는 성격이다. 이런 업무 처리 방식으로, 주어진 일을 대부분 시간 안에 체계적으로 처리한다. 그래서 함께 일을 하는 동료들은 대체적으로 나를 신뢰하며 믿고 일을 맡긴다.


 하지만 나에게는 큰 단점이 있다. 바로 갑작스럽게 닥친 일들은 쉽게 처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최근에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갑자기 당일 오전 중으로 조사를 하여 제출해달라고 하는 긴급 공문이 오는 경우가 있다. 또 한창 수업을 하고 있는데 갑작스럽게 아픈 학생이 발생하여, 그 학생의 학부모에게 그 상황을 알리고 조치를 취해야 할 일이 생기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내 마음이 심하게 어려워진다. 마음속으로 큰일 났다 큰일 났다를 수없이 반복하며 안절부절못한다. 물론 그런 상황에서 마음이 편한 사람은 없겠지만, 그러나 나의 큰일 났다 병은 도가 지나친 감이 있다.      

 내 마음에는 지나치게 다른 사람을 의식하는 마음이 있다. 남들한테 피해를 주지 않고 또 좋은 피드백을 받기 위해 항상 조금의 빈틈도 없이 일을 완벽하게 처리하려고 노력을 한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일들을 처리 해 내는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가끔씩 깜빡하고 내가 기한 내에 일들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을 때, 지나치게 큰 죄책감과 오래도록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었다. 잘 생각해보면 나는 일 처리를 완벽하게 하는 것에 강박마저 있었다.     


 그건 바로 내 자존감의 문제와 연결 지어 볼 수 있다. 내 마음속에는 일을 잘해야만 사람들이 좋아해 줄 것 같고, 또 일을 시간 안에 완벽하게 끝내야만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고 여기는 마음이 있다.


 마음속에서 주변 사람들은 성숙한 성인이고, 나는 아직도 두려움이 많고 미숙한 아이이다. 어린아이가 어른들에게 칭찬을 받기 원하듯, 그들에게 잘하는 모습만을 보여주어 항상 칭찬을 받고자 한다. 또 내가 일들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그들에게 비난을 받을 것만 같아서, 두려워한다.     


 이런 내 마음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나는 중학교 1학년 때, 새로 만난 친구들로부터 따돌림, 괴롭힘을 받은 적이 있다. 그 아이들은 나를 거의 한 달간 괴롭히고 못살게 굴었다. 그들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네가 청소를 열심히 안 해서 우리가 그러는 거야.”, “네가 성실하지 못해서 우리가 너한테 그러는 거야”

  

 한 달 동안 반복적으로 들은 그 이야기들은 ‘완벽하지 않으면 가치 없는 사람이다’라는 잘못된 개념을 나에게 심어 주었다. 그 한 달여의 시간 동안 나는 괴로웠고, 밤에 잠드는 것이 두려웠다. 아침이 오면 또 학교에 가서 하루 종일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나는 그때의 미성숙했던 아이가 아니다. 10년 차 교사로 반 아이들 앞에, 또 동료 교사들 앞에 서있다. 그러나 마음속 한구석에는 중학교 1학년 시절의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 존재한다.

     

 그 내면 아이는 평소에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무엇인가 일을 완벽하게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나타나 나를 괴롭힌다. “넌 역시 성실하지 못해.” “나는 네가 완벽하지 않고 불성실해서 싫어.” 이런 메시지들 앞에서 내 마음에는 큰일 났다 병이 발병을 하는 것이다.     


 과거에 처리하지 못한 우리의 문제들이 결정적인 상황에서 불현듯 나타나서 우리의 마음을 어렵게 한다. “이런 반응은 평범하지 않은데?”라고 스스로 생각이 되면, 한걸음 뒤로 물러나 스스로를 탐색해야 한다. 그리고 과거의 자신과 직면해야 한다.     


 “네가 괴롭힘을 당한 것은, 네가 성실하지 않아서가 아니야. 또 네가 키가 작았기 때문도 아니야. 네 탓이 아니야, 네 잘못이 아니야. 너 자신이 그 아이들에게 당당하게 그만 하라고 하지 못했고, 또 선생님이나 부모님께 도움을 청하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원망스럽긴 했어. 하지만 네가 그때는 어렸고 미숙해서 그랬다는 것을 이해하려고 해. ”라고 과거의 자신과 마주하여 위로의 말을 건네고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힘들지만 과거에 나를 힘들게 했던 그 아이들과도 직면해서 그때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자신 있게 이야기해야 한다.     


 “너희들이 나를 괴롭혀서 내 마음이 끔찍하게 힘들었어. 너희들이 나를 괴롭혔던 그 한 달은 나에게 지옥과 같았다고. 그리고 그 일들이 20년 넘게 두고두고 내 삶에 나쁜 영향을 주고 있어. 너희들은 내 자존감을 무너뜨렸고, 나를 가치 없는 사람으로 만들었어.”


 그들을 한 명 한 명 찾아내서, 그들에게 직접 찾아가고 사과를 받을 수 있을까? 하지만 그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 같다. 20여 년 동안 서로 전혀 교류가 없던 그들에게 연락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또 설사 그들은 운 좋게 만났다 해도, 그들은 그 일을 기억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무엇을 바랄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항상 마음속에서 그들과 만나야 했고, 내가 하고 싶었던 일들을 다 말하려고 노력했다.     


 한 번 마음속으로 그 일들을 직면한다고 문제가 바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20여 년 넘게 내 안에 반복적으로 나타났던 마음들이 하루아침에 해결될 리도 없었다. 반복적으로 큰일 났다 병이 나타나지만, 그럴 때마다 “큰일 나지 않았어. 괜찮아. 조금 못해도, 조금 느려도, 완벽하지 않아도 너는 가치 있는 사람이야.”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몇 번이고 과거의 문제에 직면해서, 이제는 나와 그들을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는가? 그렇다면 이제는 그 일들을 그만 놓아주자. 그리고 과거의 나를, 또 나에게 상처를 준 그들을 진심으로 용서해주자. 그 용서는 그들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용서는 과거의 아픔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자신의 생활로 돌아오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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