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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아샘 Jun 23. 2021

곱슬머리가 싫어

따뜻한 시선으로 스스로를 바라보기

 “너 그림 진짜 잘 그렸다~!”


우리 반 A가 B에게 툭 던지듯 이야기를 건넸다.


“선생님 A가 제 그림 보고 놀려요.”


B의 미간이 찌푸려지고 볼이 붉어졌다.


“아니야, 나 너한테 진짜 잘 그렸다고 한 건데?”


A가 머리를 긁적이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나도 B의 그림을 찬찬히 살펴봤다. 섬세한 붓 터치로 나뭇잎이 팔랑 거리 듯 생동감 있게 보였다. 나뭇잎의 색깔도 노란색, 연두색, 초록색 등으로 다채롭고 풍성했다. B의 그림은 누가 봐도 잘 그린 그림이었다. 그 그림을 보며 담임교사인 나도 B에게 말을 건넸다.


“수채화 어디서 배운 적 있니? 정말 잘 그렸는데?”


B의 입이 오리처럼 튀어나왔다.


“제 그림이 어딜 봐서 잘 그렸어요? 선생님도 괜히 듣기 좋은 얘기만 해 주시는 것 다 알아요.”


 진심 어린 내 칭찬도 B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정색을 하는 B를 보며 칭찬을 건넸던 A도, 담임교사인 나도 그저 머쓱해질 뿐이었다.  A는 여기저기 다니며 다른 친구들에게도 조심스레 칭찬을 건넸다. A는 친구들의 그림에서 잘된 부분들을 구체적으로 짚어낼 수 있는 섬세한 아이였다. A의 구체적인 칭찬에서는 B가 말한 비꼬는 말투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B뿐만 아니라 우리 반 그 누구도 A의 칭찬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나의 칭찬도 마찬가지였다. 진심을 담은 우리의 칭찬은 점점 빛을 잃어갔다.


 우리 반 학생들을 보면서 어릴 적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어릴 적부터 곱슬 거리는 머리카락이 너무 싫었다.


 “자연스럽게 곱슬 거리는 네 머리카락은 정말 멋있어! 다들 돈을 주고도 파마도 한다는데 넌 타고난 곱슬머리라 얼마나 좋니?


 어머니가 아무리 애를 쓰셔도 내 귀에는 그 멋있다는 이야기가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부모님이니까 나를 위로해 주시려고 또 그러신다며 그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내 곱슬 거리는 머리카락도,... 작은 키도... 스스로 생각해도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9개월째에 접어든 사랑이가 이제는 아빠인 나를 잘 따른다. 나를 보고 방긋방긋 잘 웃는다. 사랑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사랑이의 머리 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찬찬히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사랑이의 곱슬 거리는 머리카락은 어쩜 그리 자연스럽고 예쁜지! 네모로 각이 지고 조금 큰 얼굴도, 볼록 나온 배도, 터질듯한 볼살도, 작은 입도 하나하나가 모두 귀엽기만 했다. 사랑이의 긴 속눈썹도, 동그랗고 큰 눈도, 배시시 환하게 웃는 얼굴도, 사랑스럽지 않은 곳이 하나도 없었다.


 온몸 구석구석이 예쁘다는 것이 이런 느낌이구나! 우리 부모님도 날 보며 이런 느낌이셨을까? 쳐다보기도 싫었던 곱슬 거리는 내 머리카락을 보시며 어머니께서 내게 넌지시 건네셨말씀들이 이제야 이해가 간다.


 “나는 외모가 마음에 안 든다고요! 내 얼굴, 몸에서 마음에 드는 부분이 하나도 없어요!”


 사랑이가 10년 후에 이렇게 내게 말을 한다면 나는 어떤 기분이 들까? 우리 부모님께서 내게 그러셨던 것처럼 아무리 사랑이에게 이야기를 해줘도 본인의 소중함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칭찬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는 우리 반 학생들을 보면서 과거의 내가 생각났다.


 별처럼 빛나는 눈, 해맑은 미소, 따뜻한 마음들...


 우리 반 아이들은 각자가 지닌 보석 같은 아름다움을 놓치고 살고 있었다. 나는 옆에서 그 아름다움이 생생하게 보이는데, 저들 눈에는 아름다움이 보이지 않는 듯했다. 내가 나를 스스로 존중하고 사랑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나를 존중할 수가 없다. 자아존중감이 낮은 사람들에게는 주변 사람들의 진심 어린 칭찬과 존중도 모두 빛을 잃고 만다.


 거울을 본다. 물론 내 모습 전부가 맘에 들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내가 사랑이를 바라보듯,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스스로를 바라보려 한다. 조금 부족해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을 건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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