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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아샘 Jun 27. 2021

때가 있다

나에게 하고 싶었던 잔소리

“하~~ 암”


 여기저기서 하품 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이 눈을 가늘게 뜨고 연신 손으로 눈을 비벼대고 있었다. 아이들은 죄 없는 시계만 노려보았다. 내 잔소리는 목적지를 잃은 채 허공을 떠돌았다.


 “선생님은 너희가 초등학교 시절을 의미 있게 보냈으면 좋겠어. 게임하는 것도 좋지만 책을 많이 읽고, 또 주어진 공부도 열심히 하면 너희의 미래에 큰 도움이 될 거야. 공부에도 다 때가 있어!”


 내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동그랗게 뜬 눈으로 학생들에게 이야기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학창 시절은 공부해야 할 때인데 열심히 공부하지 않는 우리 반 학생들이 참 답답했다. 그들에게 주어진 소중하고 많은 시간들을 적절하게 활용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문득 과거에 나는 항상 시간들을 의미 있게 보냈었나 떠올려 보았.


 “쳤습니다 홈~런~! 역시 대단한 선수예요.”


 컴퓨터 모니터에서 야구 중계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의 대학 생활은 단순했다. 대학교 수업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대부분의 시간을 게임 방송이나 프로 야구를 시청하며 보냈다. 물론 이따금 친구들도 만나고 동아리 활동 등도 열심히 했다. 그 시간들을 마치고 나면 항상 집에 와서 게임 방송이나 프로 야구 중계를 봤다.


 나는 프로게이머도 아니었고, 야구 선수도 아니었다. 게임이나 야구를 특별히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다. 특별히 해야 할 일이 없었고 하고 싶은 일도 없었기 때문에 그냥저냥 시간을 때운 것이었다.


 교사가 되고 결혼을 한 후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리 집 TV 브라운관에서는 언제나처럼 예능 프로그램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여유 시간을 콸콸콸 흘려보냈다. 시간은 넘쳐나는데 그 시간을 잘 활용해 보겠다는 생각은 쉽사리 들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대학교를 다닐 때나 결혼 이전에는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여유를 갖고 마음껏 즐기고 누릴 수 있던 시기였다. 그 소중한 시기에 나는 아까운 시간들을 의미 없이 흘려보내고 있었다.


 최근에 갑자기 책을 읽는 것과 글을 쓰는 것에 관심이 생겼다. 열정이 없던 내 몸에 뜨거운 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결혼을 하고 사랑이도 막 태어난 이후였다. 예전에는 여유 시간이 넘쳐흘렀었지만 몇 년 사이에 내 상황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으앙~~~~~~!”


‘사랑이 울음 알람’이 울렸다. 어김없이 5시였다. 5시가 되면 사랑이의 울음에 의해서 내 하루 일과가 강제적으로 시작되었다.


"헤헤헤헤 빠빠빠 빠빠"


 사랑이의 눈이 반달 모양이 되었다. 입술이 귀에 닿을 듯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웃음과 동시에  방 저 방 새로운 물건을 찾아서 사랑이가 탐험을 시작했다. 기어 다니는 탐험 대장 사랑이에게는 항상 자신을 바라봐 줄 보조가 필요했다. 그 보조는 둘 뿐이었다. 하루 종일 쉼 없는 육아로 지친 아내와 학교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힘겨워하는 나였다.


 나는 낮에는 학교에서 일을 하고, 저녁 시간에는 사랑이 육아를 함께 해야 했다. 사랑이를 저녁 9~10시경에 재우고 나서는 아내와 함께 남아있는 집안일들을 처리했다. 모든 일을 마치고 나면 밤 12시 가까이 되었다. 아이가 잠든 후에 12시경이 되어서야 비로소 내 시간이 생겼다. 그냥 잠들기가 아까워서 책을 읽고 글을 쓰다 보면 새벽 2시 가까이가 되었다. 그리고 잠시 눈을 붙이면 5시 사랑이 알람이 울렸다.


 잠을 잘 못 이루니 내 몸이 버티지를 못했다. 여유 시간이 없다고 어린 사랑이방치할 수는 없었다. 수업 준비나 업무를 미룰 수도 없는 일이었다. 잠자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줄일 수 있는 시간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이었다.


“지금 주어진 시간들을 잘 사용하렴! 나중에는 흘러간 그 시간을 아까 워하며 후회할 날이 올 거야.”


 아침에 학생들에게 건넨 이야기는 사실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관심도 없던 스포츠 중계, 게임방송, 예능 프로그램을 틀어놓고 그냥 흘려보냈었던 내 과거에 대한 후회였다.


“여유로운 시간은 항상 주어지는 것이 아니야!”


 눈썹을 한컷 추켜올린 현재의 내가 10년 전 나에게 외치고 있었다. 5년 후, 10년 후 미래의 나는 현재의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을까? 수수께끼를 푸는 것처럼, 그 순간을 상상하며 눈을 지그시 감아봤다.


'너는 지금 육아에 전념해야 할 시기야. 아내와 함께 협력하고,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아내를 위로하며 힘든 육아의 시기를 함께 잘 버텨내렴.'


 마음속 이야기를 듣고 나니 생각이 정리가 되는 듯했다.

 

 대학교를 다닐 때 시험 기간만 되면 평소에 관심이 없던 소설책이 내 눈에 들어왔었다. 평소에는 관심도 없던 소설책이 시험 기간만 되면 반짝반짝 빛이 났다. 최근에 내가 책을 읽고 싶은 것도, 글을 쓰고 싶은 것도 힘든 육아를 피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 아닐까? 사랑이가 보조를 찾지 않는 시기가 와도 내가 책을 읽으려 하고, 또 글을 쓰려고 노력을 할지 궁금하다.


 현재에 매몰되어 버리면 내 상황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다른 사람의 상황은 잘 보이는데 내 상황은 좀처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가 없을 때가 있다. 한 걸음 두 걸음 떨어져서 내 현재 상황을 살펴보자. 그런 후에 다른 사람에게 조언을 건네 듯, 나에게도 힘이 되는 한 마디를 건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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