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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아샘 Jun 29. 2021

그의 시간, 나의 시간

초등학교 단짝 친구 A와의 추억

 “오늘은 탁구 칠까?”


 “좋지!”


 우리 반 학생들끼리 대화를 나눈다. 방과 후에 탁구를 칠 모양이다.


'나도 초등학생 시전 친구랑 탁구 많이 쳤었는데...'


 문득 친구 A와 탁구를 치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


 30여 년 전 우리서로의 집에서 탁구를 자주 치며 놀았다. 먼저 친구 A의 집에 있는 원목 식탁 중앙에 엉성하게 책을 몇 권 올려놓았다. 일반 탁구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형편없고 허술했다. 하지만 그 탁구대 앞에서 우리는 누구보다 즐거웠다.

 

 나는 옆집에 사는 A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았다.  초등학생 시절,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는 바람에 나는 늘 혼자였다. 혼자 있는 것이 싫었던 나는 수업이 끝나면 옆집 A네로 매일 출근을 했다. A와 보내는 시간은 항상 새롭고 즐거웠다. 탁구, 팽이치기, 딱지치기, 컴퓨터 게임 등 함께 하는 놀이도 언제나 풍성했다.


 우리 둘 사이엔 경계가 없었기에 그 애 집이 우리 집이었고, 우리 집이 그 애 집인 것 같았다. 함께 즐겁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이내 부모님께서 퇴근을 하실 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또 다음날을 기약하며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단단할 것 같던 우리 사이에도 어느 순간 틈이 생겼다. 중학생 때도 여전히 옆집에 살았지만 사이가 이전 같진 않았다.  등하굣길이나 집 근처에서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긴 했지만, 단짝이라는 타이틀은 왠지 어울리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보다 하교시간이 늦고, 각자 학원에 다니느라 함께하는 시간이 없긴 했다. 하지만 그건 근본적인 이유가 아니었다.


 같은 학원에 다니는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나는 새로운 무리에 들어갔다. A도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점점 멀어져 갔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어느 날, A가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간다고 했다. 나와 A 사이에 더 이상 접점이 없다는 뜻이었다.


 “나 A야, 잘 지내지? SNS를 하는데 우연히 너를 보고 반가운 마음에 이렇게 연락을 했어! 우리 한 번 만나자!”  


 그로부터 10년여의 시간이 흐른 어느 날이었다. A가 SNS 상으로 나에게 연락을 해왔다. 우리는 당시 가장 유명했던 대학로의 어느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 갑자기 연락이 온 A가 반갑기도 했지만,  갑작스러운 연락에 당황한 나는 숨겨진 의도가 있는 건 아닐까 의심했다.


 약속 날짜가 다가올수록 마음이 불편해졌다. 어린 시절 추억을 회상하기에 우린 너무 커버렸고, 더 이상 접점도 찾을 수 없는데 나를 만나려는 이유가 뭘까?


 “반가워 진짜 오랜만이다!” “잘 지냈지?”  


 카페에서 만나서 우리는 상투적인 이야기를 나눴다.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그의 말투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인근의 유명한 대학교에 다닌다는 그는 더욱 당당해져 있었다. 나는 어깨를 잔뜩 웅크린 채 그와의 대화를 이어갔다.

 나는 스스로 생각했을 때 그에 비해 한없이 초라했다. 외적으로 A와 비교할 만한 것이 없어 보였다. 당당한 A와 있다 보니 상대적으로 내가 점점 더 작아지는 것만 같았다.


 카페에서의 만남 이후로도 A는 내게 자주 연락을 해왔다. 그가 자신의 벽을 허물고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내 벽을 쉽게 허물지 못했다. 성인이 돼버린 A는 나에게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A는 계속 나와 연락을 이어가려고 노력했지만, 나는 그에게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에게 벽을 더 강하게 세우는 나를 느꼈던 탓일까? 언제부턴가 A의 연락이 점점 뜸해지기 시작했고, 그렇게 우리는 다시 멀어졌다.

  

 그 후로 또 10년이란 시간이 다시 흘렀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어느 날, 문득 나의 초등학생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 기억 속엔 늘 A가 등장했다. A와 나 사이에 높게 쌓아뒀던 내 벽이 스르르 무너져 내렸다. A에 대한 고마움과 애틋한 마음이 생겼다. 10년 전 A가 나에게 연락을 할 때 A에게도 이런 애틋한 마음이 있었을까? 초등학생 시절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했던 나에 대한 그리운 추억 때문에 그가 먼저 용기를 낸 것이 아닐까? 그럼 이제 내 차례인 건 아닐까?


 10년 전 A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수소문해서 연락을 해볼까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억지로 인연을 끌고 가는 것 같아 관두기로 했다. 추억은 추억으로 남을 때 아름다운 것이었다. 초등학교 시절의 기억들만 가지고 관계를 유지하기에는 우리는 이미 너무 커버렸고, 성인이 된 우리는 서로 너무나도 달랐다.


 그의 시간과 나의 시간이 맞았다면 우리는 다시 초등학생 시절처럼 살갑게 지낼 수 있었을까? 10년 전에 자신감 가득했던 A처럼 그때의 나도 스스로에게 당당했다면 우리 관계가 지금과는 달랐을까? 지난 시간들을 떠올려보면 아쉬운 순간들이 있다. 특히 내 미숙함으로 놓쳐버린 과거의 소중한 인연들을 생각하면 더욱 아쉬운 마음이 가득하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사람들과 깊이 있는 교제를 이어가기란 쉽지 않다. 표면적인 관계 맺기에는 달인이 되는 반면, 마음을 나누는 관계 맺기는 더 어렵게 느껴진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25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다. 지금도 용기 없는 나는 그에게 연락을 쉽사리 못하고 있다. 그저 단짝 친구였던 그의 삶에 좋은 일들이 가득하기를 먼발치에서 기도하고 응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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