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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아샘 Jul 04. 2021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산처럼 크게 보이는 그의 단점

 “우리 이번에는 계곡 가자!”     


 친구 A가 대화방에서 말을 건넸다. 대화방에는 단짝 친구들이 모여 있었다.


 “계곡 말고 시원한 식당이나 카페에서 보는 것은 어때?”     


 내가 A의 말에 반대 의견을 냈다. 평소에 물놀이를 좋아하지 않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A의 의견에 동조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컸다. B나 C가 계곡에 가자고 의견을 냈다면 바로 기분 좋게 OK를 했을 것이다.  

   

 A가 무엇인가를 하자고 이야기하 과거에 그와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친구들과는 주로 A 집 근처에서 만났다. 다들 멀리 떨어진 곳에 살았지만 큰 불만은 없었다.


 내가 오랜 기간 치료를 끝내고 몸을 회복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건강 상의 문제로 익힌 음식만 먹었다. 대부분 친구들은 음식을 가려 먹는 것을 이해해줬고, 음식을 선택할 때도 적극적으로 배려해 주었다.


 반면에 A는 그렇지 않았다. 그날은 회를 먹자고 우리에게 이야기했다.      


 “나는 회는 되도록 안 먹으려고 해. 날 것을 먹으면 몸에 안 좋을 것 같아서...”     


 A에게 용기를 내어 이야기를 했지만 의 대답은 확고했다.     


“나는 회를 꼭 먹고 싶어. 회 진짜 맛있게 하는 곳 아니까 같이 가자!”     


 모임의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아서 더 이상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횟집에서 회를 한 점도 먹지 않고 미역국, 당근, 계란찜 등만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가 가진 ''은 명확하고 분명했다. 우리들은 원하는 식당모임을 했다. 속으로 투덜거렸지만 가능하면 맞춰 주려고 노력했다. 사실 A와 개인적으로는 그리 친하지 않았다. 모임 안에 있는 B와 C와 더 친했고, 그들을 만나기 위해 모임에 나갔다.


 A의 '틀'이 과하다 싶을 때가 많았다. 그러나 다른 친구들은 그의 주장을 크게 불편해하지 않았다. 나는 그의 ''이 정말 싫었고, 그 틀을 볼 때면 우리 아버지 생각이 났다. 명확히 말씀은 하지 않으셨지만, 내가 보기에는 아버지에게는 언제나 아버지만의 은근한 틀이 있었다. 물론 친구 A의 틀이 본인의 만족을 위한 것이었다면, 아버지의 틀은 자녀들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는 점은 명확히 달랐다.


 때로는 아버지께서 본인이 원하시는 바를 명확하게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명확한 말씀이 없으시니 아버지의 표정 행동 등을 항상 살피며  틀을 찾아내려고 노력했다. 출제자인 아버지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맞춰가야만 아버지께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버지께서 별다른 말씀을 안 하시고 표정이 좋지 않으실 때면 무엇인가를 잘못한 건은 아닌지 항상 불안했다.


 20년 전 수능시험 날, 아버지께 가채점 결과를 보여드렸. 그때 아버지 미간에 깊게 파인 주름과 깊은 한숨을 보았다. 성적이 아버지의 기대와는 많이 달랐다. 성인이 되고 난 후에는 아버지의 틀이 좀 더 명확히 보였다. 어렸을 때는 그 틀에 나를 맞추려 했지만, 성인이 된 후에는 벗어나려 했다. 좀 더 자유롭게 살고 싶은데 아버지의 틀이 답답한 족쇄처럼 느껴졌다.     


 나는 때로는 아버지를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실질적으로 가장 역할을 하셨다. 어릴 적부터 홀로 삶을 개척해 나가셔야만 했고. 어린 동생들의 미래까지 책임지셨다.  아버지께서 결혼을 하시고 우리가 태어난 후에는, 나와 형에게도 길을 제시하시려고 하셨다.


 A의 행동에 내가 더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아버지의 틀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A의 일방적인 모습을 볼 때면 그가 우리를 본인의 틀 속에 가두어 놓으려는 것만 같아서 숨이 막혔다.


 "계곡 안 가도 괜찮아. 우리가 같이 만나는 게 더 중요하지."


 계곡에 가고 싶지 않다는 말A가 반응을 했다. 가 자신의 확고한 주장을 거뒀다. 그때  마음이 스르르 녹아내렸고, 폭발 직전이었던 감정도 이내 잠잠해졌다. 에 대한 미움과 서운함도 어느새 사라졌다. 지금까지는 '나쁜 사람'이었지만 순간 '좋은 사람'이 되었다.


 나는 예전부터 상대방의 어떤 행동이 마음에 들면 좋은 사람으로 낙인을 찍었고, 반대의 경우에는 나쁜 사람으로 낙인을 찍었다. 그런 마음을 잘 아는 아내가 식사를 하던 중에 문득 이야기를 했다.


 "항상 좋은 사람, 항상 나쁜 사람이 있을까요? 사람을 그렇게 나누어서 보지 말고, 누구에게나 좋은 면도 있고 그렇지 않은 면도 있다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항상 좋은 사람, 항상 나쁜 사람은 상상 속에만 존재했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을 나누는 기준도 지극히 주관적이었다. 아내의 말에 친구 A와 아버지에 대한 좋은 기억들을 떠올렸다.


 A는 자신이 전혀 흥미가 없음에도 친구들에게 맞춰주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먹는 것과 약속 장소를 정하는 문제에는 민감했지만, 다른 것들에 있어서는 좀 더 유연했다. 보드게임을 정말 싫어했지만 때론 우리를 위해서 함께 해주기도 했고, 정말 하기 싫을 땐 큰 불평 없이 옆에서 다른 일을 하며 기다려 주기도 하였. 또 멀리까지 자신을 찾아와 줬다며 비싼 음식을 우리에게 종종 대접하기도 했다. 음식을 친구들에게 직접 떠먹어져주기도 하는 정이 참 많은 친구였다.


 아버지는 누구보다 다정하신 분이셨다. 내 친구 한 명 한 명 이름을 모두 기억하셨고, 종종 그들의 근황까지 꼼꼼하게 물어보시셨다. 내가 아플 적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왕복 4시간도 넘는 거리를 아무런 불평 없이 매일 달려와주셨고, 극진히 간호해 주셨다. 또 본인보다는 항상 자녀들과 남들을 위해서 헌신하며 성실하게 셨다.


 나는  거울에 비추어서 사람들을 너무 쉽게 평가해왔고, 때로는 너무 쉽게 '나쁜 사람'이란 프레임을 상대방에게 씌워버렸다. 나쁜 사람 낙인을 찍는 순간 상대방이 지금까지 베풀었던 배려와 호의는 모두 기억 속에서 지워버렸다.


 지금도 이따금 내가 싫어하는 모습들을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발견한다. 남들은 그냥 지나처 버리는 문제가 내게는 커다란 산처럼 보인다. 그 문제는 상대방의 문제일까 나의 문제일까?


 내 문제가 해결되었다면 그 문제가 산이 아닌 티끌처럼 보일 수 있지 않았을까? 만약 그랬다면 다른 친구들처럼 계곡을 가자고 하는 A의 이야기에도 씽긋 웃음 한번 지으며 부드럽게 넘어갈 수 있었으리라.


 자신의 상처와 문제 때문에 상대방이 가진 빛나는 모습들을 보지 못할 때가 있다. 때로는 한 가지 부정적인 모습을 발견한 후에 상대방을 너무 일찍 나쁜 사람으로 낙인찍어 버려서, 그의  다른 좋은 점들을 놓칠 때도 있다. 상대방의 좋은 면에 좀 더 주목하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자신의 마음 그릇을 키워 주변 사람들을 넉넉하게 품어줄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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