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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아샘 Jul 06. 2021

편안한 우리 집

초대받지 못한 손님

“삐 삐 삐 삐 삐”


 막 잠이 들려는 순간, 현관에서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당황한 나는 아내와 함께 현관으로 달려 나갔다. 현관문을 살짝 열고 보니, 말끔한 정장 차림의 중년 남성이 머쓱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집을 잘 못 찾아오신 것 같은데요”


 내가 조심스레 말을 건네자 남자는 연신 구십 도로 머리를 숙였다. 그 바람에 곤히 자던 사랑이가 깨어 큰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당황스러움과 짜증이 동시에 몰려왔다.


 “빨리 가세요! 우리 아이가 잠에서 깼잖아요!”


 아내 말에 그는 도망치듯 떠나버렸다. 나는 아내의 말투와 태도에 흠칫 놀랐다. 나와 달리 아내는 우리 가족의 불편함을 상대방에 명확히 전달했기 때문이다.


 ‘혹시 그 사람이 도둑은 아니었을까?’


 그 남자가 떠난 후에도 쉽사리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20년 전 그날의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이상하다 왜 문이 안 열리지?”


 20년 전 어느 날 저녁, 어머니와 나는 교회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집 대문이 열리지 않았다.

평소에는 잘 쓰지 않는 아래 자물쇠를 열자 그제야 문이 열렸다.


 ‘우리 가족들은 그 자물쇠를 잘 사용하지 않는데?’


 어머니께서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가시려던 순간, 오싹한 기운을 느꼈다. 어머니를 모시고 조심스럽게 대문 밖으로 나와 집 앞 경비실로 달려갔다. 그러곤 연장으로 중무장한 관리사무소 직원 3명을 대동한 후에 다시 집으로 갔다.


 집에 돌아와 보니 현관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잠시 집을 비운 사이에 도둑이 집을 빠져나간 모양이었다. 조금 전에 그냥 집 안으로 들어갔다면 분명 도둑과 마주쳤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그 후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집 안에 있던 현금도 폐물도 다 사라졌어!”


 어머니는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털썩 주저앉으셨고, 그날 나는 '도둑 트라우마'가 생겨 버렸다. 집에 혼자 있을 때면 쉽게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도둑이 집 안에 몰래 숨어있을 것만 같아서, 몇 번이고 집 안 곳곳을 쥐 잡듯이 살펴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로부터 약 5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트라우마는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방에 혼자 있으면 그날의 섬뜩했던 기운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온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섰고, 아주 작은 소리까지 섬세하게 느낄 수 있었다. 몸이 긴장 상태로 완전히 굳어버렸기 때문에 어떠한 일에도 온전히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적막감과 두려움을 해소하고자 나는 항상 TV를 켜 놓았다.


 고등학생 시절의 내면 아이가 '도둑과 마주할까 봐 두렵다'라고 지속적으로 마음속에서 울부짖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의식적으로 마음속 울림을 외면했다. 군대도 다녀온 20대 중반의 늦깎이 대학생이 '도둑이 무섭다'라고 말하면 다들 바보라고 할 것 같았다.


 도저히 혼자는 살 수 없다 느꼈을 때쯤, 다행히 친한 대학 동기와 함께 살게 되었다. 둘이 지낼 때는 마음이 편안해져서 이제는 정말 그 일이 해결된 줄 알았다.


 그렇지만 교사가 되어 타지에서 혼자 생활하게 되자 또다시 불안과 마주하게 되었다. 당시 나는 원룸 4층에 혼자 살았다. 잠을 자려고 하면, 갑자기 위에서 로프를 타고 도둑이 우리 집 창문을 넘어올 것만 같아서 무더운 여름철에도 창문을 잘 열지 못했다. 그렇게 밤에 잠을 설친 날들이 많아졌고 신경이 더욱 예민해져 갔다. 고등학생 시절의 기억이 지속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도둑이 든지도 벌써 20년이 지났다. 혼자 있는 것이 아직도 불편하긴 하지만 그리 신경 쓰일 정도는 아니라서, 이제는 완전히 그 문제에서 해결된 줄 알았다. 그런데 오늘 새벽, 낯선 이의 방문 이후에 쉽사리 잠들 수 없었다.


 나는 아직도 트라우마의 근본적인 해결 방법을 찾지 못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아주 조금씩은 자연스럽게 트라우마가 해결되는 것 같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그저 참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최선일까? 다른 방식으로 트라우마를 극복하려고 노력했다면 혼자서도 좀 더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을까?


 내 경우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크고 어려운 일을 겪은 이들을 종종 본다. 그들은 어떻게 삶을 버텨낼 수 있었을까?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과거의 아픔을 간직한 사람들이 아직도 본인이 힘들다고 말할 때가 있다. 그러면 주변 사람들은 그들에게 ‘이제 그만하면 됐다고, 언제까지 그럴 거냐고, 이제는 잊으라고’ 쉽게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울까?


 '충분히 슬퍼하고, 아파하라고, 스스로 마음이 편안해질 때까지 계속 슬퍼하고 아파해도 괜찮다고...'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신음하는 그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다.


 언젠가는 고등학생 시절 내면 아이와 마주 할 수 있을까? 그런 기회가 온다면 조심스럽게 과거의 나에게 진심을 담아 위로의 말을 건네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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