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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아샘 Oct 24. 2021

소통 연습

불편해도 소통해야 하는 이유

사회 시간에 무작위로 6명씩 뽑아서 모둠을 정했다. 한 명씩 모둠원이 정해질 때마다, 아이들의 환호와 탄식이 이어졌다. 평소에 친구들에게 장난을 잘 치는 B와 C의 모둠이 정해지는 순간이었다.


"B와 C는 모두 1모둠입니다."


B와 C를 끝으로 1모둠 6명이 모두 정해졌다. 순간, A가 큰 소리로 말했다.


“아싸! 최악인 두 명은 피했다!”


나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물론 B와 C가 짓궂은 장난을 칠 때도 종종 있지만, 학급 친구에게 최악이라니... 그것도 큰 소리로 말할게 뭐람.’


수업을 마친 후, A를 따로 불러서 나지막하게 말했다.


“누군가가 싫거나 미울 수 있어. 하지만 그런 마음을 상대에게 드러내는 것은 무례한 행동이야. 누군가 대놓고 네가 싫다고 하면 네 기분도 좋지 않겠지?”


“네. 저도 그러면 속상할 것 같아요. 앞으론 안 그럴게요.”


A는 발표도 잘하고, 책도 잘 읽었다. 하지만 그에게 부족한 면이 있었다. 그건 바로 인간관계였다. A는 자신과 맞지 않는 친구를 티가 나게 대했다. A가 그들에게 싫은 티를 팍팍 내는 탓에, 친구들도 A를 싫어했다. 한 번은 체육 시간에 아이들이 씩씩대며 들어왔다. 한 아이가 화를 내며 말했다.


“오늘 피구를 하는데 황당했어요. 두 명이 팀장이 되어 한 사람씩 돌아가며 팀원들을 뽑았거든요. 저희 팀은 A가 팀장이었고요. A가 피구 실력과는 관계없이 자신하고 친한 친구들만 뽑았어요.”


“피구를 잘하는 친구들이 아니라, 친한 친구들만 뽑은 거야?”


“네. 피구를 잘하는 아이들을 뽑자고 해도, 걔는 나쁜 애라고 하면서 뽑지를 않더라고요. 저희 팀은 피구 실력이 부족한 친구들만 모였어요. 결국에는 제대로 게임도 못하고 저희가 일방적으로 졌고요. 저희가 게임에서 진건 모두 A가 팀을 이상하게 뽑은 탓이에요.”


“A가 친구들을 지목하며 나쁜 애라고 했다고?”


“네, 자기하고 친한 애들은 착한 애들이고, 친하지 않은 애들은 나쁜 애들이래요.”


당황스러웠다. A의 행동 속에서 과거의 내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고등학생 시절, 수업 시간에 뒷자리에서 잠만 자던 아이들이 수업 시간에 큰 소리로 떠들었다. 당시 반장이던 내가 큰 소리로 말했다.


"공부하는데 방해되잖아. 떠들지 말아 줘."


잠시 움찔하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내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쟤들은 진짜 나쁜 애들이야. 학교에서는 담배나 피워대고, 수업 시간에는 잠만 자거나 떠들기나 하고. 쟤들은 학교에 왜 오는 건지 모르겠어.'


나는 그 아이들이 정말 싫었다. 학기 초부터 일찌감치 그 아이들은 '나쁜 애들'이라고 규정지었다. 그 이후로도 나는 주변 아이들을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나누었다. 나랑 친하고 성향이 비슷한 아이들은 '좋은 사람'이었고, 성향이 다른 아이들은 '나쁜 사람'이었다.


학창 시절에는 그렇게 사람을 분류해도, 생활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나쁜 사람’으로 판단되면 상대를 하지 않으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직장 생활을 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나랑 성향이 다르고 불편하다고 모두 '나쁜 사람'으로 규정지을 수는 없었다. 또 그들과도 업무적으로 소통을 하고 교류를 하며 지내야 했다. 불편하다고 그들을 배제하거나 피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결국, 내가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고,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을 바꿔야 했다.


어렸을 때부터 불편한 사람들을 피하지 않고, 소통하는 연습을 했다면 성인이 되어서 관계에서 어려움을 덜 겪었을 것이다. 하지만 성인이 된 후에 사람들을 대하는 연습을 하려니 힘들었다. 쉽게 사람을 판단하고, 거리를 두는 A를 볼 때마다 과거의 나를 보는 것 같아서 짠했다. 종례 시간에 우리 반 모든 아이들을 모아 놓고 관계에 대한 얘기를 했다.


"여러분, 우리 반에 잘 맞는 친구도 있고, 그렇지 않은 친구도 있죠?"


"네. 친한 친구도 있고, 잘 안 맞는 애들도 있어요."


"맞아요. 어른들도 마찬가지예요. 여러분이 어른이 되어 직장에 들어가도 잘 안 맞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에요. 선생님도 마찬가지로 동료 중에서 성향이 잘 맞는 선생님도 있고, 그렇지 않은 선생님도 있거든요."

내가 의외의 얘기를 하자, 아이들이 눈을 크게 뜨고 내 얘기에 집중했다.


"그런데 나랑 잘 안 맞는다고, 직장 상사를 찾아가서 동료를 바꿔달라고 할 수 있을까요? 나랑 잘 맞는 사람 하고만 같이 일하게 해달라고 말이에요. 여러분도 알다시피, 그럴 순 없을 거예요. 여러분도 초등학생 시절부터 나랑 잘 맞지 않는 사람과도 소통하는 연습을 했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A는 나의 이런 마음을 잘 이해했을까? 잠시 후, 점심시간에 아이들이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꽃을 피웠다. 한참 후, A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A가 B와 함께 공을 주고받으며 놀고 있는 것이 아닌가? B랑 얘기를 할 때 인상부터 쓰던 A의 달라진 모습이 놀라웠다. 소통 연습을 시작한 A를 진심으로 마음속으로 응원해 주었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끝나갈 때쯤, A에게 조용히 얘기했다.


“세상에 항상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은 없어. 좋은 면도 있고 그렇지 않은 면도 있는 것이지. 네가 주변 친구들의 좋은 면을 많이 발견했으면 좋겠어. 아까 B랑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니 선생님도 기분이 좋더라.”


A가 밝게 웃으며 내게 꾸벅 인사를 했다.


누구에게나 단점이 있다. 때로, 우리는 타인의 작은 단점 하나만 보고, '나쁜 사람'이라고 쉽게 판단한다. '나쁜 사람'이라는 내 틀로 상대를 보면, 그 사람의 좋지 않은 모습밖에 볼 수 없다. 상대방이 갖고 있는 장점은 배제한 채, 너무 쉽게 '나쁜 사람'으로 치부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의 틀로 인해, 그 사람 안에 빛나는 장점들을 보지 못할 때가 많다. 상대방의 장점들을 놓치는 것은 결국 우리의 손해가 아닐까? 사람을 쉽게 판단하고 규정짓는 마음을 버리고, 상대를 좀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바라봤으면 좋겠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도 그런 눈으로 우리를 바라봐 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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