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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아샘 Oct 29. 2021

혼자 가면 빨리 가고, 함께 가면 멀리 간다

함께 가는 길

최근, 다른 지역에서 초등 교사로 근무하는 친구에게 늦은 시간에 메시지가 왔다. 걱정이 되어서, 그에게 얼른 전화를 걸었다.


"요즘 학교에서 무슨 일 있어?"


"우리 반 아이들끼리 사소한 갈등이 있었는데, 그 문제가 양쪽 부모님의 갈등으로 커져버렸어."


친구가 힘없이 말했다. 내가 얼른 친구에게 되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양쪽 학부모님과 카페에서 만나서 대화도 하고, 매일같이 통화도 하고 있어. 근데 생각처럼 해결이 잘 안 되네. 모두 자기편을 안 들어준다고 서운하다고만 하고... 그래도 내가 조금만 더 신경 쓰면 해결될 것 같아."


친구가 학교 일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는 것 같아서 안타까웠다. 내가 친구에게 말했다.


"너는 이미 충분히 최선을 다한 것 같은데? 이제는 한걸음 떨어져서 상황을 지켜봤으면 좋겠어. 혼자서만 고민하지 말고, 학교 안에서 다른 선생님과도 상의하며 일을 처리하면 어떨까?"


친구가 당황한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 반에서 일어난 일인데, 내가 어떻게든 처리를 해야지. 주변 사람들에게 문제를 떠넘기고 싶지는 않아."


예전부터 친구는 책임감이 강하고 남에게 싫은 소리 하기 싫어하는 성격이었다. 내가 곧이어 말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라는 말이 아냐. 무거운 짐을 주변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지라는 거야. "

나는 왜 친구에게 그렇게 말했던 걸까?


몇 년 전, 학교 복도에 구두 소리가 날카롭게 들렸다. 학생들이 하교한 후, 적막하던 학교에 긴장감이 흘렀다. 불길한 마음이 들었다.


‘이 시간에 학교에 올 사람이 없는데? 누구지?’


학부모님 한 분이 우리 옆 반 교실로 급히 들어갔다. 그 학부모님은 일주일 동안, 매일같이 같은 시간에 옆 반 교실을 찾았다. 당시 학년 부장이었던 나는 옆 반에서 무슨 큰일이 일어났음을 느꼈다. 내가 A 교사에게 직접 물었다.


“선생님, 요즘 무슨 일 있으신가요?”


옆 반 교사인 A가 잠시 머뭇거리는 듯 보였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 놓았다.


“저희 반에서 최근에 사고가 있었거든요. 한 학생이 칼을 가지고 혼자 장난을 치고 있었는데요. 그 앞에 있던 학생이 갑자기 뒤를 돌아보다가, 칼에 오른손을 베였어요. 엄지손가락과 검지 사이가 찢어져서 피도 많이 났고요.”


A의 목소리에서 당황스러움이 느껴졌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정말 당황스러우셨겠어요. 그러면 일주일 동안 선생님을 찾아온 분은 누구인가요?”


“손가락이 다친 학생의 어머니예요. 처음에는 속상한 마음에 저를 찾아오셨던 것 같아요. 그 후로도 계속 찾아오셔서 여러 가지 말씀을 하세요."


"어떤 말씀을 하셨나요?" 


"상대 학부모에게 치료비와 정신적 피해 보상비도 받아야겠다고도 하시고요. 또 장난을 친 학생을 전학을 보내든지, 학급을 교체해달라고도 하세요. 그리고 이러한 입장을 상대편 학부모에게 전달해달라고도 하시고요.”


중간에서 이러한 상황을 다른 학부모에게 전달해야 하는 A 교사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럼 상대방 학부모님은 뭐라고 하세요?"


"학교에서 장난치다가 그럴 수도 있는 건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펄쩍 뛰죠. 원래는 사과하려고 했는데 자신이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만 하니까, 이제는 사과하고 싶은 마음도 없대요. 양쪽 학부모님이 서로 원하는 게 다르니, 저만 중간에서 참 난처하네요."


A 교사가 중간에서 얼마나 곤혹스러웠을지 상상이 되어 짠했다. 그가 일주일간 혼자 고민하다가 용기를 내어 나를 찾아온 것은 아니었을까? 어려운 상황에서 나를 믿고 자신의 어려움을 나누어준 A 선생님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선생님 혼자 마음고생이 심하셨겠어요. 앞으로는 함께 고민해 봐요."


이후에 내가 양측 학부모님과 만나보기도 했지만,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는 않았다. 결국 교장 선생님께 소상하게 사건을 말씀드리고, 교장실에서 양측 부모님과 만나서 문제를 마무리 지었다. 사건이 잘 마무리된 후에 A 교사가 내게 말했다.


"사실 그동안 매일 밤 혼자서 고민했거든요. 한 달간 머리를 싸매고 고민을 해도 해결이 안 되었는데, 부장 선생님과 교장 선생님의 도움을 받으니 이렇게 문제가 쉽게 해결되네요. 진작 문제를 같이 상의해 볼 걸 그랬어요."


A 교사의 홀가분함이 느껴져서 나도 마음이 참 편안했다. 학교에서는 매일 크고 작은 일들이 수없이 일어난다. 안타까운 점은 교사 혼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쓴다는 점이다. 담임교사는 학급 아이들과 관련된 일이라면, 가리지 않고 모든 일을 자신이 떠맡아서 해결하려고 한다.


그렇지만 교사 한 명이 지니고 있는 에너지는 제한적이다. 그 에너지를 아이들 교육이 아닌 다른 곳에 나누어 써버리면, 결국엔 학급 아이들에게 소홀할 수밖에 없다. 또한 교사 개인적으로도 문제에 짓눌리게 되고,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도 어려움을 겪게 된다.


혼자 문제를 안고 있지 말고, 주변 사람들과 어려움을 함께 나누면 어떨까? 주위를 둘러보면 내 어려움에 공감해 주고, 함께 문제 해결을 도와줄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과 함께라면, 조금 더 수월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혼자 가면 빨리 가고, 함께 가면 멀리 간다.'라는 말이 있다. 빨리 가는 것보다는 멀리 가려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우리 삶은 100m 달리기가 아니라 42.195km 장거리 마라톤과 같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을 천천히 돌아보자. 우리와 마음을 나누고, 어려움을 함께 고민해 줄 소중한 동료가 한 명쯤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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