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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아샘 Nov 02. 2021

이기적인 사람

자신에 대한 배려

"선생님, 한 달 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내가 모임에 참석한 A 선생님에게 물었다. A 선생님이 갑자기 한숨을 푹 쉬면서 말했다.


“선생님, 말도 마세요. 저 지난달에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나는 한 달에 한 번 주변 선생님들과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있다. A 선생님은 올해 처음 중학교에 발령을 받은 신규 선생님이다. 평소 수줍음이 많고 말수도 적은 그가 자신의 감정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다니... 그에게 지난 한 달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A 선생님이 말을 이어갔다.


“제가 갑자기 몸이 좋지 않아서, 큰 병원에 갔어요. 병원에서 바로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의사 선생님께 사정을 해서 수술 날짜를 1주일 후로 미뤘어요."


"왜 바로 수술을 하지 않으셨어요?"


내가 놀라서 A 선생님에게 물었다.


"제가 갑자기 출근을 안 하면 학교가 곤란해질 것 같았거든요. 1주일 후에 수술을 하면, 학교에서 보결도 정하고 미리 준비를 할 수 있잖아요. 가능하면 학교에 피해를 덜 주고 싶었어요."


"1주일 동안 출근하면서 힘들진 않으셨어요?"


"힘들었죠. 진통제를 먹고 수업을 했어요. 1주일만 버티면 되니까 이를 악물고 버텼죠. 그런데 수술을 하루 앞두고 저희 반에서 큰일이 일어났어요.”


“무슨 일인데요?”


잠시 뜸을 들이던 A 선생님이 대답했다.


"저희 반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거든요. 순간 눈앞이 깜깜해졌어요.”


반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니, 신규 교사인 그가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그러면 다음날 수술은 못 한 거예요?"


“네, 수술이 다시 2주 뒤로 미뤄졌어요.”


“수술도 미뤄지고, 코로나 19에 걸린 반 아이들도 살펴야 해서 더 힘드셨겠어요.”


“네. 그동안 진통제를 먹으며 간신히 버텼는데... 갑작스럽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하더라고요."


“선생님 몸이 많이 좋지 않으면, 바로 병가라도 내고 좀 쉬지 그랬어요?”


그는 나의 질문에 아무 대답 없이 멋쩍게 웃었다. 신규 교사인 그가 학기 중에 수술을 잡은 것만으로도 미안했을 텐데, 수술을 앞두고서 병가까지 낼 수 있었을까? 또한 자신의 학급에서 코로나19 확진자까지 나온 상황에서, 그런 얘기는 더욱이 꺼낼 수 없었을 것 같았다. 내가 괜한 소리를 한 것 같아,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A 선생님이 다시 말을 이어갔다.


“이를 악물고 버텼어요. 학교에서는 아픈 내색을 안 하려고 노력했고요. 진통제를 먹으면 참을만했는데, 나중에는 진통제를 먹어도 통증이 계속 느껴지더라고요. 퇴근 후, 매일 밤 집에서 혼자 울었어요.”


A가 밤마다 혼자 방에 누워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상상하니 짠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A 선생님의 모습 속에서 과거 내 모습이 보였다.


나도 신규교사 시절, 학기 말에 갑자기 몸이 많이 아팠다. 그렇지만 A 선생님처럼 주변 동료들과 가족들에게도 크게 내색하지 않았다. 내 건강보다는 학교 일이 중요했고,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통증이 느껴지면 약을 먹었지만, 몸 상태가 나아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학교에서는 동료들에게 항상 웃는 모습과 씩씩한 모습을 보였다. 직장에서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방학이 되고 통증을 도저히 견디지 못할 때가 되어서야, 큰 병원에 갔다.


종업식을 한 달 남긴 1월, 나는 병원에서 백혈병 판정을 받았다. 그 당시를 떠올릴 때마다 스스로의 건강을 돌보지 않았던 나 자신과, 또 적극적으로 내 상태를 돌보라고 조언해 주지 않았던 당시 동료들이 원망스러웠다. 다음 모임 때, A 선생님을 만나서 이렇게 얘기했다.


“선생님, 자신의 건강을 돌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요. 다음에는 아프면 주변 동료들에게 아프다고 말하세요.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선생님 상태를 모르거든요. 선생님 스스로 자신을 보호해야 해요.”


A 선생님에게 말했지만, 사실 이 말은 10년 전 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남의 이목을 신경 쓰며 스스로의 몸을 돌보지 않았던 나 자신에게 말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나를 돌보지 않고 혹사시킬 때가 있다. 어려서부터 이타적인 삶은 옳고, 이기적인 삶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배워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스로를 살피지 않고 다른 사람만을 위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일까?


나 자신을 생각하지 않고, 남을 돌아보는 것은 위선이다. 성경에서도 네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라고 말하지 않는가? 아프면 아프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 내 상태를 다른 사람에게 스스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조금 더 이기적일 순 없을까? 이기적인 사람이 진정으로 이타적인 사람도 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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