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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아샘 Nov 12. 2021

우리 학교에 놀러 오세요

노력과 평가

"우리 학교에 오면 공짜로 악기를 한 가지씩 배울 수 있어요."


공짜로 악기를 배운다는 말에 아이들의 눈이 갑자기 커졌다. A 선생님이 신나서 말을 이어갔다.


"학교에서 악기도 무료로 사줘요. 3년간 마음껏 사용하고 졸업할 때 반납만 잘하면 돼요."


악기도 공짜로 주는 줄 알고 기대했던 학생들이 금세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가 당황한 모습으로 말했다.


"우리 학교는 급식도 맛있고요. 학교 안에 노래방, 당구장 도 있어요. 마술 동아리, 밴드부, 댄스 동아리도 활성화되어 있고요. 우리 학교 오고 싶지 않나요?"


그때 한 학생이 손을 들고 말했다.


"근데 저희 집에서 학교까지 거리가 너무 먼데요?"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돼요. 학교에서 매일 택시비를 지원해 주니까요. 매일 학교에서 보내주는 택시를 타고 등하교하면 돼요."


며칠 전 학교로 전화 한 통이 왔다. 그는 자신을 B 중학교 소속인, A 선생님이라고 했다. B 중학교는 처음 들어보는 학교라 당황스러웠다. 검색을 해보니 우리 학교에서 2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시골의 작은 중학교였다.


A 선생님은 우리 반 아이들에게 학교 소개를 하고 싶다며, 10분만 시간을 내달라고 했다. 교장 선생님께 말씀드리고는 그렇게 하시라고 말했다. 우리 반 교실에 찾아온 A 선생님은, 연신 자신이 속한 중학교의 장점을 말했다. 그의 이야기를 한참 듣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좋은 중학교라면 서로 가려고 여기저기서 난리일 텐데. 왜 이렇게 먼 곳까지 와서 진땀을 흘리며 학교를 홍보하고 있는 걸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가 학생들에게 마지막으로 말했다.


"여러분 오징어 게임 잘 알죠? 우리 학교에서 이번 주 토요일에 오징어 게임을 해요. 우리 학교로 놀러 와서 꼭 참여하세요. 학교에 오면 상품도 받고, 학교 설명도 들을 수 있어요."


주말 근무까지 불사하고, 마지막까지 한 명의 학생들이라도 더 유치하려는 그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A 선생님이 내게 인사를 꾸벅하고는 급히 교실 밖으로 나갔다. 왠지 모르게 A의 뒷모습이 짠했다.


수업을 다 마치고 B 중학교를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았다. 학교 소개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전교생 수가 27명이라니... A 선생님이 우리 학교까지 직접 찾아오고, 최선을 다해서 소개를 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속한 학교에 신입생이 없어지고, 또 폐교되는 게 두렵지 않았을까? 작은 시골 마을에서 자연적으로 중학교에 입학하는 학생은 별로 없을 테니, 타 지역까지 와서 학생을 끌어가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다.


폐교를 걱정하는 전교생 27명의 사립 중학교 A 선생님과, 학생 수가 1,000명이 넘는 공립 초등학교의 교사인 나 사이에는 접점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의 모습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학교의 좋은 점만을 보여주려고 애쓰는 A 교사의 마음이, 우리 반 아이들과 학부모님들께 좋은 모습만을 보여주려고 애쓰는 내 마음과 비슷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내가 학생과 학부모님께 좋은 모습을 보이려는 마음은 특히 교원 능력 개발 평가 시기가 오면 더 커진다. 학교에서는 매년 11월이 되면 학생 학부모 만족도 조사를 한다. 담임교사에 관해 객관식, 주관식으로 평가를 하는 것이다.


평가 결과가 나의 교직 생활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승진 여부를 결정하거나 성과급 지급에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평가를 받는다는 사실만으로도 긴장이 된다. 그들이 적은 한 단어, 한 문장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기 때문이다. 특히 부정적이고 날카로운 말들은 내 가슴 깊이 박혀서 오래도록 상처를 남긴다.


한편 얼마 전부터 나는 학교생활과 관련된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쓰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한 가지는 글을 엮어서 내 이름으로 된 책을 출간하고 싶기 때문이다. 내 책을 통해, 학생과 학부모에게 ‘내가 학교 현장에서 나름 고민하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A 선생님이 우리 학교를 방문하여 열심히 학교 홍보를 했지만, 아쉽게도 우리 반 아이들의 중학교 선택에는 영향을 주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내가 열심히 글을 쓰고 내 책이 실제로 나온다고 해도, 학생과 학부모 모두에게 좋은 교사로 인정받지는 못할 것이다.


노력한다고 모두에게 좋은 평가를 받을 수는 없다. 각자가 가진 생각이 다르고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내 생각으로 옳다고 주장해도,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래서 좋은 평가받는 것을 목표로, 아이들 앞에서 열심을 내는 일은 소모적이다.


학교에서만 그럴까? 어디에서든지 남의 평가에만 시선을 맞추면 평생 행복할 수 없다. 이제는 상대방의 이목보다는 스스로의 내면에 초점을 맞추고 살 필요가 있지 않을까?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글쓰기를 시작했다. 그 글쓰기가 이제는 다른 사람이 아닌 스스로에게 집중하라고 말한다. 평가를 내려놓고, 묵묵히 해야 할 일을 하라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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