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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아샘 Jun 09. 2021

회피, 후회 그리고 직면

병실에서 만났던 Y형을 기억하며

 선한 눈과 배려심 가득한 말투, 나는 그가 처음부터 좋았다. 어느 날, 또래가 없던 병실에 나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는 Y형이 입원을 했다. 무균 병동에 입원한 그 역시도 몸 상태가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가 몸이 안 좋아서 이곳에 왔다는 사실은 슬픈 일이었지만, 나는 그가 내 옆자리로 와서 내심 좋았다. 그는 병원 생활이 익숙한 듯 보였고, 병실 사람들에게도 친절하고 다정했다. 그는 항상 침작했고, 그런 그에게서는 큰 슬픔이 느껴지지 않았다.  

 

 "병이 재발해서 다시 입원을 했어. "


 그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내 마음이 콩닥콩닥 뛰었다. 혈액 암이 다시 재발해서 왔다는 것은 그가 위중한 상태라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병실에서 수시로 TV 예능 프로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저 주어진 하루를 즐겁게 살아내려고 노력하는 그의 모습에선, 큰 슬픔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종종 자신이 좋아하는 음료수를 내게 나누어 주기도 했다. 그건 병실에서 베풀 수 있는 가장 큰 친절이었다. 그는 몇 년 전에 이곳에서 치료를 받았던 경험이 있다고 했다.


 "몇 년 만 더 건강하게 지냈으면 완치 판정을 받을 수도 있었는데..."


 그는 혈액암 완치 판정을 코앞에 두고 병이 재발하여, 다시 병원에 입원을 했다고 했다. 자신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남의 이야기하듯이 담담하게 말하는 그를, 나는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처음에 병을 앓았을 때처럼, 1년 여 간 고통스러운 치료 과정이 다시 시작된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는 듯했다. 그럼에도 그는 흔들림이 없었다. 언제나 변함없이 밝은 그가 있어서, 나도 낯설고 외로웠던 병원 생활에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의지하며 힘든 항암 치료 과정을 버텨 나갔다.


  모든 치료과정을 마치고 그가 먼저 퇴원을 하게 되었다. 나는 그가 완전히 회복되어 퇴원한다는 사실이 진심으로 기쁘기도 했지만, 그와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서운하고 아쉬웠다. 그가 떠난 후에도 치료를 이어 나갔고, 나도 마침내 퇴원을 했다. Y형과 나는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었다. 그래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약속을 잡고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또는 휴대전화로 언제든지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단 한 번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 인간적으로는 Y형이 정말 좋았지만, 그 형을 만나면 심한 병을 앓던 내 모습이 떠오를 것만 같았다. 퇴원을 한 후에는 병원과 관련되었던 것들은 그 무엇도 가까이하고 싶지 않았다. 그 지독한 병이 나에게 다시 찾아올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 후로 몇 달이란 시간이 지났다. 내게 문자 한 통이 왔다. 바로 Y형의 부고 소식을 알리는 문자였다. 망설였지만 나는 Y형의 장례식장에 찾아가지 않았다. 형은 병원에서 낯설어하던 내게 큰 친절을 베풀었다. 하지만 나는 병원 밖을 나와서는 형을 모른척하며 살았다. 퇴원 후에는 내가 형에게 친절을 베풀 순간이었지만, 철저하게 그를 외면해버렸다. 과거에 형은 병실에서 태연한 척했다. 하지만 그도 병이 재발하여 많이 괴롭고 또 외롭지 않았을까? 그는 정말 그릇이 큰 사람이었다. 혈액 암이 재발했음에도 세상을 원망하지 않았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친절함을 잃지 않았다. 그와 생전에 더 깊은 교재를 나누지 못한 점이 두고두고 아쉽다. 또한 그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주지 못해서 정말로 미안하다.


 그 후로 시간이 많이 흘렀다. 형은 그렇게 떠났지만 나는 오늘 또 하루를 살고 있다. 이 평범한 하루를 Y형은 얼마나 꿈꾸었을까? 선하고 배려심 많았던 Y형에게 다시 하루가 주어졌다면, 형은 그 하루를 어떻게 보냈을까? 내가 형 몫까지 잘 살고 있는 걸까?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하지만 우리는 그 사실을 종종 잊고 산다. 죽음을 의식하고 살지 않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를 의미 없이 흘려보낼 때가 많다. 가끔씩이라도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하루가 특별하다는 것을 기억할 순 없을까? 건강하게 하루를 더 살고 싶었지만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먼저 떠난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배려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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