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방학을 하루 앞두고, 학생들과 함께 교실 정리를 했다. 그러다 문득 교실 뒤편에 있는 식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교실에 한 달 넘게 식물을 방치한다면, 금세 말라죽겠지?’
자신의 식물을 집으로 가져가라고 하자, 화분 2개만 덩그러니 남았다. 둘은 학급 전체가 공동으로 관리하던 식물이었다. 그런데 개별 관리하던 식물에 비해 둘의 상태는 영 좋지 못했다. 차마 학생들 앞에서 바로 쓰레기통에 넣을 수는 없어서, 학생들이 하교하면 혼자서 처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식물 집에 가져가서 키우고 싶은 사람 있나요?”
둘 중 그나마 상태가 좋은 화분을 들어 올리며 학생들에게 물었다. 쭈뼛대는 학생들 틈에서 한 학생이 손을 번쩍 들었다. 평소에도 남을 잘 배려하고 어려운 친구를 잘 돕는 A였다. 나는 아직은 쌩쌩해 보이는 화분을 그에게 건넸다. 그가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이거 말고 저걸 가져가도 될까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왜 거의 죽은 화분을 원하는 걸까?
“정말 다 죽어가는 이 화분을 가져갈 거야?”
A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한 번 살려보고 싶어요.”
“그렇구나, 장하다! 그럼 이 두 화분 모두 네가 가져갈래?”
화분 두 개를 받아 든 A가 대견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왠지 모르게 씁쓸해졌다.
‘A가 노력해서 죽어가던 식물이 잘 살아나면 좋겠지만, 만약 결과가 좋지 않으면 A가 크게 실망하지는 않을까?’
A를 보며,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몇 해 전, 우리 반에 북한이탈주민인 B가 전학을 왔다. 초기에는 B가 북한에서 왔다는 사실만으로 낯설고 긴장이 됐다. 하지만 지내다 보니 B는 잘 웃고 친구들의 말도 잘 들어주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학급 친구들도 다들 B를 좋아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B가 내게 배가 아프다는 얘길 자주 했다.
"요즘 무슨 고민 있니?"
내가 무심코 던진 그 한마디에, B는 자신과 자신의 어머니가 그동안 북한과 남한에서 겪었던 일들을 1시간 동안이나 털어놓았다. 뉴스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들이라 꽤나 충격적이었다. B가 그간 겪었을 아픔이 고스란히 내게도 전해져서 내 눈시울이 붉어졌다. 안타까운 점은 B가 겪었던 과거의 일들이 현재의 생활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과거의 아픔이 해결되어야 B가 건강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B에게 최소한의 조치만 할까? 아니면 제대로 문제를 풀어 볼까?’
최소한의 조치란 내가 B와 상담을 한 후에, 어머니께 그 사실을 말씀드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건 근본적인 문제 해결책은 아니었다. B를 제대로 도우려면 다양한 관계 기관의 협조가 필요해 보였다. 잠시 망설였지만 나는 B를 적극적으로 돕기로 결심했다.
B의 부모님께 B의 상태를 수시로 알렸고, 교내·외 관계 기관 담당자들과도 자주 연락을 주고받았다. 안타까운 마음에 최선을 다해 노력했지만, 실상 B의 사정은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최소한의 조치만 할걸. 괜히 내 시간과 노력만 허비했잖아.’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B와도 자연스럽게 헤어졌다.
몇 년 후, 스승의 날에 B에게서 문자 한 통이 왔다.
“선생님은 내가 만난 선생님 중에 진짜 선생님이었어요.”
나는 문법에 맞지 않는 B의 문자를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오래전 일을 기억해 준 B가 진심으로 고마웠기 때문이다.
죽어가는 식물을 살리려는 A를 보면서, B를 위해 노력했던 내 모습을 떠올렸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A를 응원했다.
'A야, 네가 최선을 다해도 식물이 살아나지 않을 수 있어. 그래도 네가 실망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네가 식물을 살리려고 노력한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는 거니까.'
돌이켜보면, B도 자신의 문제가 금세 해결될 것이라곤 생각지 않았던 것 같다. B가 정말 바랐던 것은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해 주는 것이 아니었을까? B가 어려운 일들을 꿋꿋하게 이겨내고, 남한에 잘 정착해서 멋진 어른으로 성장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더 이상 과거에 있었던 일로 인해 아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