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를 이해하는 출발점

가정 방문

by 괜찮아샘

우리 밖에 있는 존재들은 쉽게 배척된다. 울타리 밖에 있는 이들의 상처나 억울함, 슬픔과 죽음은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고려의 대상이 아닐 때가 많다. 우리의 안과 밖을 구분하는 담은 견고하고 높아서 일단 한 번 만들어지고 나면 좀처럼 허물 수가 없다. 그러니 방법은 하나뿐이다. 누군가 문을 여는 것.

-무루,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어크로스


내 마음속에도 학생과 나 사이를 가로막는 견고하고 높은 담이 있었다. 학생들과 온전하게 마음을 나누고 싶었지만, 담으로 인해 쉽게 다가가지 못했었다. 그러다가 '그 일'이 일어났고, 견고하던 담에도 균열이 생겼다.


교실에서는 도난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그러나 교사의 물건이 사라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아무리 간 큰 사람이라도 교사의 물건에 손 대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지갑 안에 넣어둔 돈이 반복적으로 사라졌다. 물론 지갑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한 내 잘못도 있지만, 학교에서 여러번 돈이 사라지는 일은 무척 당황스러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우연히 도난 사건의 범인을 찾게 되었다. 그 범인은 바로 우리 반 학생인 A였다. 어머니께 전화로 이 사실을 알리자, 내게 정중하게 사과했다. 물론 사건을 공론화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그 일을 크게 문제 삼지 않았던 이유는, A가 장애가 있는 학생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속이 꽤 쓰렸던 건 사실이다.


‘내가 그동안 A에게 얼마나 잘해줬는데, 담임교사인 내 지갑에 손을 대? 내가 웃으면서 잘 해주기만 하니까, A가 나를 만만하게 본 건 아닐까?’


원망어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A는 뇌에 작은 문제가 있었기에 나는 항상 애정어린 관심을 기울였었다. 이런 마음도 몰라주고 A가 내 물건에 손을 대다니, 진한 배신감이 밀려왔다.


비단 이 일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에는 나의 관심과 애정이 좋은 반응으로 돌아오는건 아니었다. 학교에서 그런 일들이 반복될수록 내 마음속 담이 조금씩 높아져만 갔다. 그러다보니 학생들 한명 한명에 마음을 쓰기보다 그들 전체를 통제하는 일이 더 효율적이란 결론에 이르렀다.


그렇게 한 해를 마무리하고, 학생들이 우리 반을 떠나갔다. 다음해에 교직원 몇 분과 A의 집에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더이상 A의 담임이 아니었기에 부담없는 동행이었다.


A는 책상에 앉아서 공부를 하고 있었고, 어머니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셨다. 어머니는 홀로 아이를 키우며 직장에 다니느라 A에게 충분히 관심을 기울일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A와 함께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갖고 싶지만, 생계를 위해서 직장 일을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이전 상담을 통해 어느 정도 상황을 알고 있었지만, A의 집에서 들으니 마음이 더 짠해졌다. 한참 이야기를 듣다보니 A 또한 특별하고 소중한 '개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과 나 사이에 담을 쌓고, 그 담 너머의 아이들을 늘 '전체'로 보았던 내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날의 가정 방문은 참 낯설고 신선했다. 또한 나의 담을 허무는 계기가 되었다.


‘작년에 이런 마음이 들었다면, A에게 좀 더 마음을 썼을 텐데...’


뒤늦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날 이후 A의 행동이었다. 진학한 후 한번도 찾아오진 않던 A가 방과후 요리를 들고 종종 나를 찾아왔다.


“선생님 이것 드세요.”


A가 무심한 듯 음식을 놓고 금세 가버렸다. 나는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A에게 음식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마음 둘 곳이 없었는지, A는 음식을 먹는 것에 집착했다. 점심 시간에 항상 음식을 과하도록 많이 받아와서, 오랜 시간 동안 음식을 먹었다. 그런데 본인의 음식을 나에게 나누어 주다니. 초등학생이 만든 음식이라 맛도 모양도 살짝 부족했지만, A의 마음을 생각하며 먹으니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내가 속한 교사 단체에서는 회원들에게 예전부터 ‘가정 방문’을 권유했다. '가정 방문'을 하면 학생들과 학부모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학부모도 부담스러워할 것이고, 관리자나 동료 교사들도 유별난 교사라고 생각할 게 뻔했다.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학생 집에 찾아가서 상담하는 건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아닐까?'


하지만 우연한 기회로 인해 내 생각이 틀렸다는 걸 깨달았다. 학생과 학부모 뿐만 아니라 나를 위해서도 유익한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30명의 무리를 상대하는 교사가 아니라, 개별적으로 학생을 마음에 품는 교사가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의 나처럼 '가정 방문'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편견의 벽을 먼저 넘어야 하지 않을까? 무루 작가가 그의 책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에서 말했던 것처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누군가 문을 여는 방법밖에 없는 것 같다. 특히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야말로 적극적으로 문을 열어야 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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