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숲이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숲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관리자와 교사들의 갈등 때문만은 아니다. 교사와 교사 간의 갈등도 제법 많다. 승진하려고 애를 쓰는 교사와 그런 교사를 비난하는 교사, 학교도 사람이 모인 곳이다 보니, 서로 상처 주고 갈등하고 견제하는 일이 많다.
- 김태현, <교사의 시선>, 교육과 실천
적어도 초등학교에서는 동료 교사 간에 큰 갈등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과거에 나는 2년간 군대 생활을 하면서 수직적인 문화와 인간관계에 지쳐 있었고, 가능하면 인간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덜 받을만한 일자리를 찾았다. 고민 끝에 내가 선택 한 직업은 초등 교사였다. 초등 교사가 되기만 하면, 수평적인 교직 문화 속에서 선생님들과 큰 스트레스 없이 지낼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지금까지 만난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정이 많고 따뜻한 분들이었다. 그들은 서로에 대한 예의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상대방을 배려했다. 하지만 간혹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문득, 내가 초임 교사일 때 나에게 상처를 주었던 A가 떠올랐다.
전체 교직원들이 모인 교직원 회의 시간에 교무 부장인 A가 말했다.
“선생님들 복사하실 때 주의하세요. 복사를 이런 식으로 하시면 안 됩니다. 이 가정 통신문 한 번 보세요. 온통 까맣게 나와서 알아볼 수가 없잖아요. 이게 도대체 뭡니까? 복사를 맡기기 전에 인쇄 상태를 제대로 확인했어야죠. 이렇게 가정 통신문을 보내니까 학부모에게 민원이 들어오죠. 복사기 카트리지도 낭비가 되고요. 다들 절대로 이렇게 인쇄 맡기지 마세요. 000 선생님! 제 말 잘 알아들으시겠어요?”
A가 갑자기 내 이름을 불렀다. 자세히 보니 그의 손에 들려있던 가정 통신문은 내가 인쇄를 맡겼던 그것이었다. 가정 통신문 복사를 잘못했다고, 전 교직원 앞에서 A가 공개적으로 나를 질책했다. 나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 오른 채 멋쩍게 웃었다.
회의를 마치고 모든 선생님들이 교실로 돌아가려 할 때, A 교사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교무실 의자를 잘 넣고 가셔야 하는데, 의자를 안 넣고 가신 선생님들이 많네요. 의자 정리 좀 해주실 분 없을까요?”
누군가를 지칭하진 않았지만, A의 목소리가 왠지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 얼른 교무실 앞으로 달려가서 의자 정리를 모두 한 후에, 깍듯하게 A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 교실로 돌아왔다. 혼자 교실에 있는데 왠지 모르게 마음이 쓰렸다. 왜 마음이 쓰린지는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때 우리 학년 부장인 B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왔다.
“선생님, 누구나 실수할 수 있어요. 인쇄를 잘못한 일이 그렇게 크게 비난받을 만한 일이 아니에요. 오늘 교무실에서는 A 선생님이 전적으로 잘못하신 거예요. 큰일도 아닌데 전교직원 앞에서, 선생님의 이름을 부르며 그렇게 공개적으로 망신을 줄 필요가 있었을까요? 잘못한 것이 있다면, 선생님만 따로 불러서 조용히 말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 다수 앞에서 질책을 한건 선생님의 인격을 고려하지 않은 무례한 행동이에요.”
부족하고 실수투성이인 나를 위로해 주시는 B 선생님이 진심으로 고마웠다. B 선생님의 위로를 듣고 나니 내 마음이 불편했던 이유를 비로소 알 것 같았다. 내 마음속에 가득했던 마음은 '화'와 '원망'이었다. 먼저 인쇄를 잘못한 나에게 화가 났다. 또한 공개적인 장소에서 내 잘못을 지적한 A가 원망스러웠다. 마지막으로 기분이 나쁜데도 표현하지 못하고, 웃으며 A를 도와 교무실 의자까지 정리한 내가 바보 같았다.
나를 함부로 대하는 A에게, 나는 왜 그렇게 저자세를 보였던 걸까? 나는 이 학교에 오기 전에, 전교생이 11명인 학교에서 근무를 했었다. 새롭게 전근을 온 이 학교는 전교생이 1,000명이 넘는 큰 학교였다. 큰 학교에 와보니 이전까지 내가 해왔던 교직 생활이 마치 소꿉놀이처럼 하찮게 느껴졌다. 그동안 작은 학교에서만 근무를 했던 나는 ‘가짜 선생님’ 같았고, 큰 학교에서 많은 학생들을 가르쳐왔던 선생님들은 ‘진짜 선생님’ 같이 느껴졌다.
이번 인쇄 사건으로 내가 '가짜 교사'라는 것이 모두에게 들통난 것 같아서 속상했다. 당시를 떠올려 보면 부장 교사는 내게 산처럼 크고, 또 감히 다가갈 수 없는 어려운 존재였다. 학교 안에는 많은 부장 교사가 있다. 업무 부서를 담당하는 업무 부장 교사와, 학년을 담당하는 학년 부장 교사가 있다. 많은 부장 교사 중에서도 가장 핵심이 되는 보직은 단연 교무 부장이다.
당시 우리 학교 교무 부장은 교감 승진을 목전에 둔 상태였다. 그를 가까운 미래에 교감으로 만날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자, 나는 그 앞에서 한없이 더 작아졌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 인격을 깎아내렸던 그의 행동에 내가 감히 반박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시간이 흐른 후, 교무 부장이던 A가 교감 승진을 하여 학교를 떠났다. 학년 부장으로 내게 도움을 주던 B도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갔다. B가 떠난 그 자리를 내가 이어받아서 학년 부장 업무를 2년 동안 맡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나도 10년 차 교사가 되었다. 근무 연수가 늘어나고 또 부장 교사까지 직접 경험해보니, 몇 가지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먼저, 부장 교사는 관리자처럼 승진을 통해서 부여받는 직책이 아니었고, 매년 새롭게 부여받는 임시 직책일 뿐이었다. 부장 교사가 내 생각처럼 그렇게 특별하고 높은 자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교무부장 자리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교사들을 공개적으로 질책하고 나무랄만한 위치가 아니었다. 오히려 다른 교사들에게 부탁할 일이 많았기 때문에, 관계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하는 자리였다.
당시 나는 어리고, 경험도 부족했으며, 위축되어 있었다. 그런 나를 동등하게 대하고 또 응원해 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내가 자신감 없이 스스로를 낮춰갈수록, 어떤 이는 교묘하게 자신의 일을 나에게 떠넘기기도 했고 A처럼 내 위에서 군림하기도 했다.
10년 전에 교무실에서 있었던 그 일은 나의 교직 생활에 크고 작은 영향을 주었다. 먼저 그 일 이후로는 우리 반 학생들의 잘못을 지적할 때도, 사람들이 없는 곳에 가서 따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내가 바라는 것은 행동의 교정일 뿐, 그 학생이 다른 친구들에게 모멸감을 느낄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교사가 인격적일 것이라는 내 기대를 내려놓게 되었다. 내 생각을 바꾸자 상대방을 배려하는 선생님들이 더욱 고맙게 느껴졌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큰 상처를 받지 않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스스로 자책을 덜 하게 되었다. 모든 책임을 나에게 돌리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고, 남에게 관대하듯 나에게도 좀 더 너그러운 마음을 갖게 되었다.
신규 선생님들이 종종 발령을 받아서 학교에 온다. 기가 죽어있는 그들을 보면 예전의 나를 보는 것 같아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그래서 어리숙했던 나에게 B 선생님이 지지와 응원을 해주었던 것처럼, 가끔은 나도 그들에게 다가가 힘과 용기를 주는 말을 건네려고 노력을 한다.
직장에서 가끔씩 자신이 한없이 작게 느껴질 때가 있다. 옆에 있는 동료들은 자신감 있게 일을 잘하는데, 나는 아직도 어리숙한 것 같기 때문이다. 능숙해 보이고 자신감 넘쳐 보이는 그들도 10년 전, 20년 전에는 우리처럼 미숙하지 않았을까? 처음에는 누구든 실수하기 마련이니까. 부족해 보이더라도 자신을 책망하지 않고, 스스로를 지지하고 격려했으면 좋겠다. 시간이 지나면 우리도, 잘 해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