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를 받지 않는 사람

공감의 힘

by 괜찮아샘

“나 너 싫다고!”


방학식 날 회식자리에서 상급자 A가 내게 한 말이다. 방학으로 몸이 편해졌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그 한마디의 파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돌아보면 A는 애초부터 나를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학교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 내가 인사를 해도 그는 도통 받지 않았다.


“혹시 시력이 안 좋아서 당신을 못 본 건 아닐까요?”


아내의 말을 기억했다가 나는 일부러 바로 앞에 가서 큰소리로 인사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교사들 사이에서 꽤나 영향력을 가진 A가 내 인사를 받지 않는 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것 같았다. 그런데 더 당혹스러운 것은 어떤 날은 아무렇지 않게 내게 정답게 인사를 건네거나 칭찬을 한다는 것이었다. 오락가락하는 그의 마음을 도통 알 수 없었기에, 마음이 계속 불편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그에게 작은 흠이라도 잡히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1년을 마무리하는 종업식 날, 모든 교직원들이 함께 모임을 가졌다. 나는 술도 회식도 좋아하지 않았지만, 한 해 동안 애썼던 동료들과 마음을 나누기 위해 회식에 참여했다. 모두가 얼큰하게 취했을 때, A가 갑자기 일어났다.

“나 너 싫어!”


그의 눈과 손가락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순간 모두 굳어버렸다. 당황한 나는 어색한 분위기를 무마하려 웃음을 짜냈다.


“에이, 제가 A님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잘 아시잖아요~!”


그는 내 말에 대꾸도 않고 넘겼지만, 순간적으로 느꼈던 복합적인 감정은 이후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술기운에 농담을 한 거겠지? 진짜로 내가 싫다는 건가?’


잠시 후에 술에 취한 그가 먼저 일어났다. 나는 불편하고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의 말이 농담이었음을 확인하기 위해, 집에 가는 그를 배웅하겠다며 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제가 모셔다 드릴게요.”


그가 내 손을 완강하게 뿌리쳤다.


“나는 B랑 갈 거야. B, 나 데려다 줄 거지?”


B는 술에 취한 상태라, A는 할 수 없이 내 차를 탔다. 자신을 배웅하려고 하는 나를 강하게 거부하던 그를 보며, 조금 전에 그가 던졌던 말이 농담이 아니었음을 나는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그래 내가 싫을 수도 있지. 모두가 나를 좋아할 수는 없어!’


예전에 인터넷에서 어떤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열 명이라고 가정한다면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세 명, 나에게 관심 없는 사람이 다섯 명,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두 명이라는 내용의 글이었다.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고 또 사랑받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생각하며 스스로를 달래 보아도, 회식 자리에서 있었던 장면들이 쉽사리 잊히지 않았다. 그날 이후 억울함과 분함이 쉽게 해결되지 않아서, 나는 한 달간 침대에 틀어박힌 채 지냈다. 밤에 이따금 악몽을 꾸거나 놀라서 소리를 지르는 통에 아내도 괴로워했다.


시간이 흘러 기독 교사 단체 수련회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마음 같아선 수련회도 가고 싶지 않았지만, 마지막 날 맡은 사회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수련회 마지막 날, ‘행복한 헤어짐’이란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수련회에 참석한 사람들 모두가, 수련회 기간에 자신이 느낀 점들을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이었다.

자연스러운 진행을 위해 현재 상황을 말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회식자리에서 내가 느낀 당혹감을 설명하던 중 난데없이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그 자리에 참석한 많은 선생님들이 이야기를 경청하며 함께 울었다.


그러고는 다들 자신이 학교에서 학생, 학부모, 동료 교사, 관리자들로부터 겪었던 어려웠던 일들을 하나 둘 털어놓았다. 그렇게 '행복한 헤어짐' 시간이 서로가 그동안 학교에서 겪었던 아픔을 진솔하게 털어놓고 위로하는 자리가 되었다.

그날 이후로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그동안 나를 힘들게 하던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말끔히 사라진 것이다. 수련회에서 내가 경험한 것은 다름 아닌 ‘공감의 힘’이었다.


"선생님의 그런 마음을 저도 충분히 이해해요. 저도 선생님과 비슷한 일을 겪었고, 당시에 많이 힘들었거든요. 그런 일을 겪으면서 아프고 힘들었겠어요."


비슷한 일을 겪었던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건네는 위로의 말 한마디가, 나에게 무엇보다 큰 힘이 되었다. 공감은 힘이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 그리고 진심으로 경청하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큰 힘이 된다. 우리는 자신의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또 상대방의 아픈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살다 보면 억울한 일,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을 만나기 마련이다. 그런 상황에서 상처를 털어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비슷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과 공감을 나누는 것이다. 함께 공감하고, 또 위로할 때 온전한 회복과 치유를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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