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하는 선생님
과학 수업을 마치고, 교실에서 실험 도구를 정리하였다. 혼자 정리하기에는 생각보다 양이 많아서 학생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실험 도구 선생님과 같이 정리해 줄 사람 있나요?”
꿀 같은 쉬는 시간임에도 선생님을 돕겠다며, 몇몇 아이들이 교실 앞으로 나왔다. 아이들과 함께 실험 도구를 챙겨서 조심스럽게 과학 자료실로 향했다.
“실험 도구가 깨질 수 있으니 조심하세요.”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크고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쨍그랑”
주변에 있던 아이들도 나도 순간 얼어 버렸다. 정신을 차리고 살펴보니, A가 들고 있던 패트리 접시를 놓친 모양이었다.
“패트리 접시에 물기가 있어서, 물기를 털어 내려고 흔들다가 그만...”
유리 조각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서 반짝이며 빛났다. 순간, 아이들이 깨진 유리에 다칠까 봐 걱정이 되었다. A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가 큰 소리로 말했다.
“모두 가만히 있어!”
내가 던진 말에 날이 잔뜩 서 있었다. 갑자기 접시가 깨져서 순간 화가 났기 때문이었다. 여기저기 다니며 흩어진 조각들을 조심스럽게 쓰레받기에 담았다. 깨진 조각들이 더 보이지 않자, 내 마음에도 여유가 생겼다.
순간 내 옆에 가만히 서있던 A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처럼 고개를 떨군 채, 우두커니 서있는 A의 모습이 처량해 보였다. 가만히 서서 자신이 깨뜨린 접시 조각을 바라보던 A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때, A가 내게 다가와 조심스럽게 말했다.
“선생님 정말 죄송해요.”
A의 진심이 느껴져서 안타까웠다.
“A야, 많이 놀랐지? 다친 곳은 없니?”
A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말을 이어갔다.
“네가 실수로 그랬다는 것 선생님도 다 알아. 누구나 실수할 수 있어, 괜찮아. 네가 쉬는 시간에 놀지도 않고 선생님을 도우려고 하다가 생긴 일이잖아. 선생님을 선뜻 도와준 네가 기특하고 참 고마워. 선생님이 네가 다친 곳은 없는지부터 먼저 살폈어야 했는데... 네게 버럭 소리부터 질러서 미안해. 선생님도 갑자기 벌어진 일이라 당황스러워서 그랬어.”
그제야 A의 표정이 환해졌다. 내게 인사를 꾸뻑하더니, 복도로 신나게 뛰어나갔다.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A의 어두운 표정이 눈에 들어와서 다행이다. 가만히 있으라고 소리만 지른 채, 그를 그냥 돌려보냈다면 어땠을까? 선생님을 도우려다가 공연히 다른 친구들 앞에서 망신만 당했다고 두고두고 속상해하지 않았을까?’
교사도 실수를 할 때가 있다. 그런데 그 한 번의 실수가 학생의 마음에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문득 과거 중학생 시절, 담임 선생님과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중학생 때, 학급에서 동급생 B와 사소한 문제로 말다툼을 했다. 그때 갑자기 B의 주먹이 내 얼굴로 날아들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후, B의 주먹이 여러 차례 내 얼굴로 향했다. 나는 갑작스러운 B의 행동에 멍하니 있을 뿐이었다. 내 얼굴이 잔뜩 부었을 때, 담임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왔다.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억누르며 이렇게 생각했다.
‘일방적으로 친구에게 맞았는데, 선생님이 B를 야단치시겠지?’
그런데 담임교사의 행동은 내 기대와는 달랐다. 담임교사가 교단에 서서 나를 위아래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우스꽝스러운 말투로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 아닌가?
“눈탱이가 밤탱이 됐네?”
교실 안에 있던 모든 학생들이 책상을 치며 웃었다. 숫기가 없고, 조용하기만 했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집에 돌아와 생각해 보니 여러 가지로 억울하고 분했다. 잠자리에 누웠지만, 잠이 쉽게 오지 않았다. 얼굴에 난 상처보다, 담임 선생님이 던진 농담 한마디가 나를 더 아프게 했다. 그가 던진 그 말 한마디가 10년, 20년이 지나도록 내 귓가를 맴돌았다. 당시에 그가 담임교사로 교실에서 여러 모습들을 보였을 텐데, 그 말 한마디 밖에는 기억나지 않았다. 그건 교사인 그에게도 슬픈 일이 아닐까?
누구한테나 들키는 실수는 오히려 괜찮습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잘못을 저지르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내가 저지른 실수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헤어날 수 없는 아픔으로 작용하면 그러면 정말 어떡하지요? 가벼운 농담 한마디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면..... 못난 질투로 괜히 그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한다면 어떡하지요? 그건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될 텐데.....”
-송정림, <참 좋은 당신을 만났습니다>, 나무생각
우리는 매일 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대화를 주고받는다. 우리가 무심코 던진 한 마디가 상대방을 기분 좋게 만든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자연스럽게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그렇다고 좋은 말만 남발하면 상대에게 깊은 울림을 줄 수 없다. 상대방의 상황을 고려해서 진정성 있게 한마디를 던져야 비로소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말로 긍정적 영향을 주는 일보다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좋은 말을 하는 것보다, 상처가 되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조금은 더 쉬운 것 같다. 날이 선 말을 던지고 싶은 마음을 꾹 참으면 될 일이니까. 그러면 내 한마디로 인해서 상대가 오래도록 아파하는 일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상대방의 마음에 대못을 박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