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보다 중요한 일
방학식 날,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방학 동안에 꼭 이루고 싶은 일이나, 하고 싶은 일을 이야기해 볼까요?”
우리 반에서 키가 가장 작은 A가 번쩍 손을 들었다.
“저는 방학 동안에 키가 10cm 컸으면 좋겠어요.”
당황한 나는 잠시 고민했다.
‘키 10cm 크는 게 방학 중 이루고 싶은 목표가 될 수 있을까? 모두가 열심히 노력한다고 10cm 클 수 있을까?’
그건 목표가 될 수 없다고 말하려는데, A의 태도가 너무 진지해서 차마 그럴 수 없었다. 그런데 다른 학생들도 비슷한 목표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방학 동안에 키가 많이 컸으면 좋겠어요.”
“저도요. 키 크는 게 목표예요."
온통 키 크는 얘기만 하는 학생들을 보며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방학 동안에 새롭게 배울 수 있는 것도 많고,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할 수 있는 것도 많을 텐데... 방학 동안에 꼭 이루고 싶은 일이 키 크는 것 밖에 없는 것일까?’
문득 아이들이 왜 이토록 키에 집착하는지 궁금해졌다.
“왜 키가 컸으면 좋겠나요?”
학생들이 여기저기서 손을 들기 시작했다.
“제가 키가 작다고 친구가 무시해요.”
“저희 오빠가 땅꼬마라고 매일 놀려요.”
“제가 좋아하는 연예인은 키가 커서 멋있는데, 저는 키가 작아서 초라해 보여요.”
아이들의 속사정을 듣다 보니 키에 대한 고민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에게 키는 단순히 유전적인 문제를 넘어 우열을 판단하는 기준이자, 하나의 능력인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겉으로 보이는 신체적인 발달에만 집중하고 있는 학생들이 안타까웠다. 그러고 보니 나도 어린 시절 키 때문에 고민을 했었다.
‘키가 작아서 도무지 되는 일이 없어.’
학창 시절 남들보다 키가 작았던 나는 항상 이런 생각을 했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는 남자 여자 다 포함해서 키 번호가 항상 1번이었다. 키가 작아서 불편한 점이 많았다. 친구들과 놀이공원에 가면, 친구들은 다들 탈 수 있는 놀이 기구를 키 제한에 걸려서 탈 수가 없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나를 나이보다 2-3살 어리게 보는 탓에 동생이나 후배 취급을 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스스로 나이를 말하며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사람들이 종종 빤히 쳐다볼 때가 있었다. 그럴 땐, 키가 작아서 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키가 작다고 나를 불쌍하게 쳐다보는 건가?’
이런 생각을 할수록 스스로 위축되었다. 자신감이 없었기 무슨 일을 하든지 잘 해내기가 어려웠다. 원하는 일이 잘되지 않으면 모든 것을 키가 작은 탓으로 돌렸다. 어릴 적에 원하는 일들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단순히 작은 키 때문이었을까? 그건 아닐 것이다. <아빠는 아동 권리 히어로>라는 책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사실 ‘키’보다 중요한 것들은 너무나도 많다. 특히, 아이의 발달에 있어서 ‘마음의 키’는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행복감’과 ‘자존감’은 아이의 현재와 미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고완석, <아빠는 아동 권리 히어로>, 부크크
생각해 보면 신체적으로 키가 크는 것에는 관심이 많았지만, 마음의 키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겉으로 드러나는 신체적인 발달에만 집중한 나머지, 내면의 발달에는 신경을 쓰지 못한 것이다. ‘키’에 신경을 쓴 만큼, ‘마음의 키’에도 신경을 썼다면 더욱 넉넉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을 텐데... 정작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살았던, 학창 시절이 아쉽게 느껴졌다.
‘키’에 집착하는 우리 반 학생들을 보면 과거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그래서 그들에게 종종 말을 하곤 한다.
“너희들은 키가 크든 키가 작든 멋지고 예뻐. 키에 관심을 갖는 것처럼, 너희들의 내면에도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
외모는 타인이 나를 판단하는 기준이지만, 내면은 내가 주체적으로 규정할 수 있는 영역이다. 외적으로 키가 작아도, 내면의 키는 나 스스로 얼마든지 키울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나의 내면을 최고로 멋진 사람이라 규정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