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으로 가르치는 것만 남는다

보여주기 위한 모범이 아닌 나를 위한 모범

by 괜찮아샘

 “우리 아이가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는데, TV를 보거나 스마트폰 게임만 해요. 어떻게 하면 책과 친해질 수 있을까요?”


상담 시간, 학부모님의 질문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학생들은 부모님이 책을 대하는 자세를 보고 따라 하기 마련입니다. 부모님께서 책과 친한 모습을 보이시면, 자녀들도 자연스럽게 책에 흥미를 갖게 될 것입니다.”


부모님들은 TV를 보면서 자녀들에게는 책을 읽으라고 한다면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다. 물론 책을 읽는 시늉은 할 수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책과 친해지기는 어렵다. 이는 비단 가정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 또한 학생들에게 독서를 강조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학교에서 책을 읽지 않았다. 학생들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분주하게 업무 처리를 했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으라는 내 말이 학생들에게 의미 있게 전달되지 않고 공허한 잔소리가 되곤 했다. 학생들은 아침 활동 시간에 독서에 집중하지 않으면서 내 눈치만 살폈고, 그럴수록 내 잔소리는 더 심해져만 갔다. 말로만 가르쳤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의미 있는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한편, 독서 말고도 내가 학급 내에서 특히 중점을 두고 강조하는 것이 있다. 그건 바로 ‘글쓰기’이다. 글을 쓰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고, 또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수도 있기에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매년 강조한다. 이런 내 마음과 달리 학생들은 글쓰기를 좋아하지 않았고, 나는 매년 새로운 글쓰기 지도 방식을 시도하느라 분주했다. 어떤 해에는 일주일에 2~3번 이상 일기를 쓰도록 한 적도 있었고, 또 다른 해에는 주제에 맞게 글을 써보도록 하기도 했다.


글쓰기 숙제를 검사하며 세심하게 코멘트도 달아주었지만 정작 아이들은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학생들은 억지로 글을 쓰느라 힘들었고, 나는 억지로 쓴 글을 보느라 힘든 상황이 반복되었다. 의미 없는 글쓰기로 학생도 나도 지쳐갔다. 글쓰기 또한 독서 지도와 마찬가지로 학생들에게만 강요해서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올해는 학생들에게 글쓰기 숙제를 내주는 대신, 내가 정기적으로 글을 쓰고 있다. 담임인 내가 글쓰기를 좋아하지도 않고, 글쓰기와는 관련 없이 살면서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강조해봐야 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글쓰기의 장점을 알려주기보단 내가 쓴 글 한 편을 읽어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었다.


국어 교과서에는 작품성이 뛰어난 멋진 글들이 많이 실려 있다. 하지만 학생들은 그저 의무적으로 글을 읽을 뿐이다. 반면, 내가 쓴 글은 주의 깊게 듣곤 했다. 물론 교과서에 실린 작품이 작품성이 훨씬 뛰어났지만, 본인들과 관련된 사람의 글이라 더 관심을 가지는 것 같았다. 학생들이 집중해서 들어준 덕분에 나는 꾸준히 글을 쓸 수 있었다.


1학기가 끝나갈 때쯤, 몇몇 학생들이 2학기 때는 본인들도 글을 써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글쓰기를 하겠다고 한 건 이번이 처음이어서 나는 내심 크게 놀랐다. 이후, 학급 회의를 통해 2학기 때는 모두 함께 글쓰기를 하기로 결정했다. 학생들이 즐겁게 글 쓰는 모습을 상상하니 절로 대견해졌다.


김요셉 작가가 쓴 책의 제목은 <삶으로 가르치는 것만 남는다>이다. 이 문장이야말로 아이들을 기르고 또 가르치는 부모와 교사들이 가슴에 새겨야 할 덕목이 아닐까? 강조하고 지시하는 태도는 아이들의 반감만 불러올 뿐,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순 없다. 따라서 우리 어른들이 할 일은 먼저 시도하고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 즉 말이나 글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삶 자체로 가르치자는 뜻이다. 경험상 이보다 효율적인 교육법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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