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국어 교과서를 읽었다.
“그...리..고....나......느....는.....바...밥.....을...먹...었...다...”
다른 친구들이라면 2~3분도 안 걸릴 분량이었지만, A는 10분여 가량 책을 소리 내어 읽었다.
‘6학년인데도 문장을 시원하게 못 읽으니 본인은 얼마나 답답할까?’
이런 생각을 하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문제는 수업 시간이 그리 넉넉하지 않다는 것이다. 빠른 진
행을 위해 다른 아이를 시킬까 잠시 고민했지만, A의 입장을 생각해 묵묵히 기다려주었다. 그 때문에 내가 준비한 활동은 고스란히 포기해야만 했다.
A는 다문화 가정의 아이였다. 어머니가 한국말을 잘 못하는 외국인이어서 어릴 적부터 한국말에 많이 노출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런 탓에 글을 읽거나 말하는 능력이 또래에 비해서 많이 떨어졌다. 기본적으로 문장을 읽는 것 자체를 어려워하다 보니, 다른 교과도 학습 부진 정도가 심각했다.
때로는 친구들이 A의 외모를 보고 놀리는 경우도 있었다.
“너 한국 사람 맞아? 너는 왜 우리랑 생긴 게 달라?”
친구들이 짓궂게 놀리면 A의 얼굴이 어두워지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엄하게 아이들을 꾸짖었는데, 그건 아마 발령 첫해에 만난 B 때문인지도 모른다.
당시 우리 반은 남학생 네 명, 여학생 한 명 총 다섯 명이었다. 다문화 학생인 B는 우리 반의 유일한 여자아이였다. 유난히 까만 얼굴에 작은 키를 가졌지만, 나머지 친구 넷을 너끈히 상대할 만큼 당찬 아이였다. B는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친구들과 놀 때는 당당하게 골목대장 노릇을 했다. 하지만 글을 잘 읽지 못했기 때문에 수업 시간만 되면 한없이 작아졌다. 그런 B를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글만 능숙하게 읽을 수 있다면, 수업 시간에도 주눅 들지 않고 생활할 수 있을 텐데.’
B를 돕고 싶어서 방과 후에 한글 지도를 해보았다. 하지만 들인 시간과 노력에 비해서 큰 성과가 없어 보였다. 또한 당시에는 신규 교사로 학교 현장에 적응하는 것도 버거웠던 탓에 방과 후 지도는 며칠 못 가서 흐지부지 사라지고 말았다.
몇 년 전, 기억 속에서 잊혀 가던 B의 소식을 우연히 들었다.
'B는 그동안 어떻게 지냈을까?'
첫 제자였기에 더욱 애정이 있었다. 기대하며 B의 소식에 귀 기울였다. 하지만 전해진 소식은 내 예상과는 다른 것이었다.
"B가 고등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자퇴를 했어."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초등학생 시절에 B의 국어 공부를 조금 더 열심히 도왔다면 B가 고등학교를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을까?’
B가 학교를 그만둔 것이, 어느 정도는 내 책임도 있는 것 같아서 한동안 마음이 무거웠다. 그 후로 비슷한 처지의 다문화 학생들을 볼 때면 B가 떠올랐다. B처럼 되지 않도록 더욱 책임감을 갖고 지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0년 전, 임용 시험을 위한 면접 스터디에서 단골 질문은 늘 '다문화 학생지도', '개별화 학습'에 관한 것이었다.
“선생님 반에 읽고 쓰는 것을 어려워하는 다문화 학생이 있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나는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이렇게 대답했다.
“그런 학생이 있다면 학생 수준에 맞게 개별화 교육을 해야 합니다. 국어 시간에 따로 학습지를 준비해서 학생 수준에 맞게 읽고 쓰는 연습을 시킬 것입니다. 또한 그것으로 부족하다면 방과 후에 따로 남겨서 공부를 시키거나, 과제를 따로 내줄 생각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그 학생이 금세 국어를 능숙하게 하게 될 것입니다.”
그 시절에는 호기롭게 답변을 했지만, 학교 현장에서 개별화 교육이나 방과 후 학생 지도는 쉽지 않은 문제였다. 우리 반 학생이 한두 명이라면, 또는 가르치는 과목이 한두 과목이라면 가능할 법도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학생 수도, 가르쳐야 할 과목도 많았다. 또한 수업 지도와는 별개로 배정된 업무 처리에도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그런 탓에 학생 개개인의 수준에 맞게 수업과 학습지를 매시간 따로 준비할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기본적인 수업을 준비하기에도 빠듯한 시간에 담당한 업무까지 처리하고 나면 개별화 학습의 준비, 방과 후 부진 학생 개별 지도는 꿈같은 이야기였다. 그래서 중간 정도 수준의 학생들에게 맞게 수업을 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수업을 잘 이해했지만, 수업을 어려워하는 몇몇 아이들이 계속 눈에 띄었다. 그들을 생각하면 퇴근 후에도 불편한 마음을 떨치기 힘들었다.
그래서 가끔은 따로 시간을 마련하여 수준에 맞게 다양한 수업을 준비하기도 했다. 그러면 마음이 한결 편안했다. 다만 그렇게 많은 시간을 내어 수업을 준비하다 보니 퇴근 이후에 충분히 휴식하는 시간을 갖지 못했고, 몸과 마음이 소진되었다.
나는 아직도 기본적인 수업을 준비하려는 나와 개별화 교육을 실현하고 싶은 나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찾지 못했다. 나를 챙기면서, 소외된 학생들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며 양쪽 사이를 수시로 넘나들고 있다. 그래서 어떤 날은 학생들에게 도움을 제대로 주지 못했다며 자책하고, 어떤 날은 스스로를 돌보지 못하고 육체적으로 소진되어 방전된 채로 잠자리에 든다.
삶의 문제들이 수학 문제처럼 명확한 정답이 있다면 좋겠다. 공식에 대입만 하면 답이 명확하게 나오는 문제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삶의 문제들은 그리 단순하지 않은 것 같다. 나를 지나치게 혹사시키지 않으면서, 학생들에게도 적절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언젠가는 찾을 수 있을까?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은 답을 찾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