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아침에 A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네 봤지만, 오늘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A는 오늘도 변함없이 인상을 푹 쓰고 있었다. A의 표정은 어제와 변함이 없었다. 미간을 찌푸린 채 입술을 굳게 닫고 있었고, 고개는 삐딱하게 밑으로 향해 있었다. 무엇보다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나 당신 싫어요’라고 말하는 듯 항상 나를 노려보는 그 아이의 표정이었다.
나는 학급에서 매년 10여 명, 많게는 30여 명의 학생들을 만난다. 우리 반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것은 결국은 1~2명의 아이들이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학급에서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하루하루 평범하게 잘 지냈다. 그러나 매년 많은 학생들 속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1~2명의 학생들이 있었다.
그들을 찾아내고 발견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소위 많이 힘들다고 소문이 난 학생은 더 그랬다. 이전 학년의 담임교사가 살며시 나를 찾아와서 그 아이와 힘들었던 점을 털어놓고 가기도 했고, 그 아이들이 학기 초부터 표정이나 행동으로 ‘올해는 나예요’라고 이야기를 해주기도 했다.
내가 이들을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는가는 우리 반의 1년 분위기를 좌우하는 중대한 일이었다. 그들은 언제든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시한폭탄과도 같았다. 그래서 항상 관심을 그들에게 두었다.
아이들을 만나는 첫날, 나는 매 년 하는 일이 있었다. 그것은 친구들 앞에서 각자가 자신을 소개하도록 하는 일이었다. 모두가 앞에 나와서 자신의 이름,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 등을 이야기하도록 했다. 각자에게 충분히 준비할 시간을 준 이후에 한 명씩 나와서 자기소개를 했다.
몇 년 전 3월 어느 날, 나는 같은 방법으로 자기소개를 시켰다. 한 아이의 차례가 되었다. 교실 앞에 선 A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30초... 1분... 3분... 5분 시간이 흐르고 보다 못한 내가 그 아이에게 다가갔다.
“저... 원래... 발표.... 못..... 해.... 요.”
그 아이는 들릴 듯 말 듯 희미한 목소리로 내 귀에 대고 나지막하게 이야기를 하였다.
“원래 발표를 잘하는 사람은 없어. 자기 이름과 반갑다는 이야기만 하면 되는 걸. 그건 모두가 할 수 있어!”
‘이 사람은 발표를 하지 않으면 계속 나를 세워 놓겠구나!’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던 것일까?
또다시 30초... 1분... 3분... 5분.... 한 참을 망설이던 그 아이는 바닥을 보고는 읊조리듯 자신의 이름을 아무도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나도 더는 지체할 수 없어서 자리로 돌아가도록 이야기를 했다.
“거 봐! 그렇게 잘할 수 있잖아!”
나는 학생들이 듣도록 일부러 크게 이야기했다. 그 아이 한 명으로 인해서 10여분을 지체한 사실이 속상했지만 괜찮은 척 넘어갔다. 그리고는 마음속으로 ‘올해는 너구나!’ 하고 이야기를 하였다. 그때부터 A의 행동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첫날은 어색해서 그런가 보다 라고만 생각했다. 그 아이의 표정은 다음날 그다음 날도 변함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 굳어져만 갔다.
3월 2일 이후로 A가 친구들 앞에서 발표할 일은 크게 없었다. 그 아이를 위해 10여분의 시간을 기다려줄 정도로 수업 시간이 짧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그 학생만 발표를 안 하고 넘어가도록 하는 것도 내가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다른 모든 친구들도 발표를 시키면 다들 똑같은 방법으로 발표를 피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사실은 내 마음이 그 아이를 그만큼 기다려 줄 여유가 없었다. 시종일관 무표정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는 그 아이를 배려하고 싶은 마음도 선뜻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발표할 때가 되면 그 아이 차례가 되지 않기를 은근히 바랐다.
급식실에서 점심을 먹을 때, 그 아이가 내 앞이나 옆에 앉아서 먹게 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 아이는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버리곤 하였다. 보란 듯이 밥과 반찬을 한 곳에 모은 채 바로 잔반을 버리는 곳으로 향해 버리곤 하였다.
‘내가 싫고 불편한가? 그래도 그렇게 싫은 티 팍팍 내는 건 아니지!'
한 번은 'A를 따로 불러 따끔하게 혼을 내볼까?' 생각도 했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 먹었다. 굳이 빙산 아래에 있는 문제를 수면 위로 꺼내놓고 싶지 않았다. 수학 시간에 문제를 풀 때도 A는 도무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미간을 찌푸린 채 멍한 표정으로 가만히 그 자리에 앉아 있기만 하였다. 내가 다가가서 하는 방법을 알려주면 하는 시늉을 하기도 했지만, 자리를 뜨면 바로 가만히 있는 일이 반복되었다.
의욕 없는 아이에게 무엇인가를 억지로 시키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내가 애쓴 만큼 돌아오는 마땅한 반응도 없던 터였다. 몇 번 그렇게 반복하다가 이내 그냥 모른 척하며 그 아이를 지나쳐버렸다.
미술 숙제로 그림을 그려 오도록 한 일이 있었다. 온통 검은색으로 칠한 그 아이의 그림을 보면서 이 아이는 어떤 마음을 갖고 있을지 참 궁금했다. 그 아이의 마음은 자물쇠를 수도 없이 두르고 있는 상자와도 같았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와중에 문득 A 생각이 났다. 삶에 의욕이 없던 모습, 세상을 향한 울분, 치밀어 오르는 분노... 그 아이가 얼굴 표정과 태도를 통해 드러내는 세상을 향한 분노가 나의 그것과 닮아 있어 보였다. A는 솔직하게 그것을 표현하고 있었다. 나는 괜찮은 척 가면을 쓰고 살아갔던 것이 다를 뿐이었다.
‘나도 힘들다고! 너만 힘든 줄 알아? 상처 없는 사람이 있냐고! 너도 괜찮은 척 지내라고!’
그 아이에게 내가 이렇게 계속 외치고 있었다. 결국은 그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그 아이를 바라보는 내 문제였다. 방치된 감정들이 그 아이를 통해 지속적으로 올라오는 것이었다.
내 안에 처리되지 않은 감정들이 그 아이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나는 과거에 상처를 외면한 채 남에게 맞추기만 하고 살았었다. 그 아이도 그렇게 괜찮은 척 살라고 내심 강요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런 사실을 발견한 후 A를 다시 바라봤다. 그 아이도 다른 아이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아이였다. 단지 남들보다 말수가 적고 의욕이 없는 것뿐이었다.
어떤 날은 A가 피구를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였다. 또 항상 숙제를 빠짐없이 해오려고 노력하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칭찬을 건네면 무표정하지만 내심 좋아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내가 그 아이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니 그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가 다르게 보였다.
처리되지 않은 감정들은 지속적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다. 상처가 해결되지 않는 한 내 안의 상처와 아픔이라는 틀에 갇혀서 주변 사람들을 판단하게 된다. 그 사람은 그 사람일 뿐인데 내 관점에 갇혀서 사람들을 바라보게 된다.
문제는 결국 나였다. 상대방이 가진 벽을 문제 삼고 그 벽을 허물라고 이야기 하기 이전에 내 벽을 허물어야 했다. 그래야 상대방의 진가를 볼 수 있었다. 스스로의 아픔들을 직면하고 그 아픔들을 처리하는 것이 건강한 관계 맺기의 출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