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는 게 이기는 거야!’
차마 학생들 앞에서 이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우리 반 학생들의 어깨가 축 처져 있었다. 입은 굳게 다물었고 고개는 바닥을 향해 있었다. 아무도 나와 눈을 마주치려고도 하지 않는 듯했다.
그들에겐 더 이상 남아있는 힘이 없어 보였다. 체육 수업을 마치고 내게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한 채 학생들은 터벅터벅 집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선생님 다른 반이랑 피구 한 번 해요!”
이 한마디로 급하게 추진한 반 대항 피구 시합이었다. 급하게 교내 체육관 사용을 예약하고 옆 반과 피구를 하게 되었다. 일찍 체육관에 가서 학생들이 몸을 풀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학생 몇 명과 급하게 피구 코트를 그렸다.
피구 코트 그리기를 다 완성했을 때쯤 옆 반 학생들이 체육관에 왔다. 지난번 다른 반과 한 피구 경기에서 이겨서였을까? 우리 반 학생들에게서 강한 자신감이 보였다.
옆 반 선생님께 갑자기 제안한 피구경기였다. 흔쾌히 응해준 옆 반 선생님께 고마운 마음이 있었다. 경기를 여러 번 진행을 해 본 경험도 있어서 전체적으로 내가 심판을 한다고 했다. 옆 반 선생님도 심판 보조 역할을 해주기로 했다.
심판은 부담스러운 자리이다. 잠깐 사이에 벌어진 일을 정확히 판정하는 일은 참 어렵고, 양 측 학생들의 무수한 반발도 들어야만 했다. 하물며 우리 반 학생들이 뛰는 경기에 담임교사가 심판을 보기는 더욱 어려웠다. 옆 반 학생들에게 편파적인 판정이라는 이야기가 나올게 뻔했다. 잘해야 본전인 자리였다.
나는 애매한 경우에는 가능하면 옆 반에 유리한 판정을 내렸다. 대놓고 옆 반에 유리한 판정을 여러 번 하기도 하였다. 우리 반에 유리하게 심판을 보고 있지 않다는 무언의 메시지였다.
우리 반 학생들이 종종 한숨을 쉬었고, 그들의 서운해하는 표정이 느껴졌다. 애써 우리 반 학생들을 외면하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옆 반 학생들에게 유리하게 판정을 했다. 그렇게 판정을 해도 내심 우리 반이 이길 것이라는 확신도 있었다. 결정적인 상황은 마지막에 나왔다.
세트 스코어가 1대 1로 동률이었다. 한 게임을 더 이기는 편이 전체 게임에서 승리를 하는 상황이었다. 시계는 마지막 세트가 3분이 남았음을 알려 주었다. 우리 반 학생은 1명이 남아 있었고, 옆 반 학생들은 4명이 남아있었다. 우리 반 학생이 있는 힘껏 공을 던졌다.
두 명의 옆 반 학생이 순식간에 아웃되었다. 이제 남아있는 옆 반 학생은 2명뿐이었다. 남은 시간은 1분이었다.
‘퍽’
옆 반 학생의 옆구리를 공이 스치며 지나갔다. 나는 사실 옆 반 학생이 공에 맞았다고 확신했다. 마침 우리 반 학생들도 환호성을 질렀다. 옆 반 학생은 전혀 맞지 않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한쪽 편은 맞았다고 주장하고, 다른 쪽은 전혀 맞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애매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심판이 아웃으로 보았다면 사실 바로 아웃 판정을 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일이었다. 내가 아닌 다른 심판이었다면 바로 아웃으로 판정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정적인 상황에 우리 반에 유리하게 판정을 하는 것이 망설여졌다.
“너 공에 맞았니?”
내 물음에 옆 반 학생은 펄쩍 뛰며 자신은 절대 공에 맞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시간이 흐르고 있었고, 빠르게 판단을 해야 했다. 머리가 멍해졌다. 시계를 보니 그새 시간이 흘러 남은 시간은 없었다.
“삐삐~~~~”
호각을 불고 경기 종료를 선언했다. 옆 반은 남은 학생이 2명, 우리 반은 1명이었다. 나는 결국 공에 맞지 않았다는 옆 반 학생들의 손을 들어줬다.
그렇게 경기를 마쳤고, 2대 1로 옆 반이 이겼다고 선언했다. 우리 반 학생들은 나에게 와서 왜 그렇게 판정을 했냐고 따져 묻지 않았다. 억울하고 분했을 텐데 내게 항의 한마디 하지 않았다. 착하고 착한 학생들이었다.
그들은 한마디 따져 묻지도 않은 채 힘없이 서있었다. 곧이어 학생들이 축 처진 어깨를 하고 하교하였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나도 한동안 깊은 생각에 빠졌다.
우리 반 학생들이 내게 따져 물었다면 나도 적극적으로 변명하며 항변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반 학생들은 따지는 법도 없이 말없이 서있었다. 우리 반 학생들의 그런 모습이 나를 더욱 슬프게 했다.
‘공정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는 공정은 내가 좀 더 손해 보는 것이었다. 여태까지 그렇게 삶을 살아왔기에, 스스로 조금만 손해 보면 주변 사람들이 좀 더 행복할 수 있다고 여겼다. 스스로를 낮추는 것이 미덕이라는 생각이었다.
축 처진 우리 반 학생들의 어깨를 보며 내 생각이 틀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정은 말 그대로 양 쪽 모두에게 공평해야 하는 것이다. 그동안 스스로 손해 보면서 공정하다고 이야기해왔지만, 나에게 일부러 불리하게 판정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한 일이었다.
과거에는 나 혼자만 손해 보면 끝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내 선택이 나와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학교에서는 우리 반 학생들이, 가정에서는 아내와 딸아이가 내 선택으로 인해 영향을 받게 되었다.
공정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학생들이 책상에 앉아 교단에 선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제 내가 그 물음에 답 할 차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