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과장 직급에서 회사 생활을 마무리했지만 그 정도 어깨 힘 빼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아직도 버거워요. 저도 모르게 회사에서의 버릇이 훅 튀어나옵니다. 가만히 있으면 누가 다 해줄 것 같고, 말하지 않아도 필요한 것들을 다 가져다줄 것 같고 말이죠. 정말 같잖은, 어설픈 마인드죠. 아예 없어도 되는 버릇이고 습관입니다.
회사가, 내가 속한 조직이 세상의 전부가 아닙니다. 그 무리 밖으로 나오면 더 큰 세상이 펼쳐져 있죠. 까딱했다가는 파도에 휩쓸리기 좋은 빈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그전에 가지고 있던 명예, 지위 다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1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 쑬 딴, <대기업 때려치우고 동네 북 카페 차렸습니다>, 잇콘
과장으로 살았던 저자는 어깨에 들어갔던 힘을 빼야 했다고 고백한다. 나도 저자와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몇 년 전 근무하던 학교에서 나는 2년간 학년 부장을 맡았다. 같은 학년 선생님들께 업무를 요청하는 일이 많았고, 대부분은 거절 없이 수락해주었다. 그 덕분에 '내가 친절하게 부탁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동료들이 도와줄 것이다'라는 확신이 생겼다.
그러다 새로운 학교로 전근을 와서 있었던 일이다. 학기 초라 학생들에게 나눠줄 교과서를 학년별로 정리하는 중이었다. 다른 학년에서는 학기 초에 교과서를 다 정리했는데, 우리 학년만 교과서를 아직 정리하지 않은 상태였다. 교장 선생님께서 지나가다가 그 상황을 보시고, 옆에 있던 나에게 넌지시 말씀을 하셨다.
“학년 교과서를 빨리 정리했으면 좋겠습니다.”
학년 부장에게 그 사실을 바로 이야기했지만, 알겠다는 대답과 달리 그는 바로 그것들을 정리하지 않았다. 몇 시간 후에 교장 선생님과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교장 선생님이 별다른 말씀을 하지 않았지만, 마음이 내심 불편하였다.
우리 학년의 남은 교과서를 정리하는 일은 혼자 정리하기에는 버거운 양이었다. 마침 같은 학년의 A 선생님이 생각났다. 딱히 친분은 없었지만, 나보다 한참 후배였기에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A 선생님의 교실에 방문을 해서 공손하게 부탁을 했다.
"선생님, 교장 선생님께서 저희 학년 교과서를 정리했으면 좋겠다고 하셔서요. 선생님과 제가 하면 금방 끝날 것 같은데, 같이 정리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호의적인 대답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대답은 예상외였다.
“꼭, 저희 둘만 해야 하는 건가요?”
나는 몹시 당황스러웠다.
'교과서 정리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혼자 하라는 것도 아니고 나랑 같이 하자는 얘기였는데. 내가 엄연히 선배이고 공손하게 부탁까지 했는데 부탁을 단칼에 거절을 하다니. 젊은 사람이 참 무례하군.'
마음이 상해버린 나는 학년 부장에게 다시 전달하곤 우리 교실로 돌아왔다. 그 후로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퇴근 후에 다른 학교에서 근무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구의 공감을 내심 기대했다. 그런데 친구의 말이 예상외였다.
“물론 A가 기분 나쁜 표정으로 네 부탁을 단칼에 거절했으니, 감정이 상할 순 있을 것 같아. 하지만 A가 너와 개인적인 친분도 없었다며. 나 같아도 거절할 수 있을 것 같아. 부장도 아니고, 선배가 공손하게 부탁을 한다고 꼭 들어줘야 하는 건 아니잖아?”
내 편을 들어주지 않는 친구가 얄밉긴 했지만, 듣고 보니 친구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A가 무례하다고만 여겼는데, 내 마음가짐도 돌아볼 필요가 있어 보였다.
‘내가 교장, 교감도 아니었고, 단지 부장 교사를 2년간 했을 뿐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부탁하는 것에만 익숙해져 있었구나. 이런 태도가 '꼰대 마인드'는 아닐까?’
이전까지는 같은 학년 선생님들이 내 말에 잘 따라주었다. 그건 내가 잘나고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학년 부장 교사’라는 타이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사실을 늦게나마 깨달았다. 하지만 부장 교사의 마음을 완전하게 내려놓는 데는 이후로도 시간이 필요했다.
사실 그 사건 이후로 두려워졌다. 시간이 흘러서 내가 나이가 많은 선배 교사라고, 다른 선생님들을 가르치려 하거나 그들에게 간섭하려고 하는 모습이 그려졌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간섭하고, 또 대우받는 것만 좋아한다면 누가 좋아할까? 나이가 들어서도 원만하게 소통하려면 상하 관계를 벗어나 수평적인 시각이 필요할 것 같다. 그래야 훗날에도 동료들, 학생들과 마음을 나눌 수 있을 테니까.
직급이 높다고, 또 나이가 더 많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대우받으려고만 할 때가 있다. 그런 마음가짐이 주변 사람들과 우리의 의사소통을 가로막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직장에서 그토록 싫어하던 '꼰대'의 모습을, 우리가 똑같이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대우받고자 하는 마음을 조금만 내려놓고, 주변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가려고 노력한다면 주변 사람들과 더욱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매 순간 마음을 돌아보려 한다. 몸이 나이가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이치이지만, 마음만은 굳어가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10년 후, 20년 후에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동료들과, 또 학생들과 마음을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