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교사>라는 월간지에 내 글을 정기적으로 연재하게 되었다. 기쁜 마음으로 이 소식을 블로그에 올렸다. 그때 블로그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
“선생님께서 우리나라 선생님들의 선생님이 되길 소망합니다.”
내 글을 통해 교사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길 바란다는 응원의 메시지였다. 이후, 이 과분한 칭찬이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어린 날에는 조그만 일에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떻게 살아야 옳은지, 잘 사는 건 무엇인지 도무지 모르겠기에 모든 순간마다 흔들렸다. 내 삶을 지켜보며 그때그때 점수를 매겨주는 선생님이 한 분 계셨으면 싶었다. “잘했네.” “이건 틀렸다.” 하며 동그라미나 별표를 그려주는 분이 있다면 나날이 얼마나 쉬워졌을까? 그런데 누가 그렇게 해주던가. 사회생활은 이렇게 하는 거라며 가르쳐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양희은, <그러라 그래>, 김영사
가수 양희은 씨의 이러한 고백이 비단 가수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일까? 학교 현장에 처음 발령을 받은 교사도 비슷한 마음일 것이다. 신규 교사에게 학급 운영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교사는 예비 교사 시절 교생 실습도 하고, 또 현장에 나와서는 다양한 연수도 받는다. 하지만 실습이나 연수를 받는다고 어떤 상황에서든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매뉴얼’을 배우는 것은 아니다. 교사와 학생의 성향이 다르고 지역이나 학교마다 여건이 다른 탓에, 보편적인 ‘교사 매뉴얼’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저 경력 교사는 현장에 나와서 시행착오를 거치며 자신만의 지도 방법을 직접 익히게 된다.
나는 교사 임용 후에 1년밖에 근무하지 못하고, 2년간 질병 휴직을 했다. 그리고 몸이 회복되었을 때 인근에 있는 큰 학교로 복직을 하게 되었다. 복직을 앞두고는, 걱정으로 잠을 쉽게 이루지 못했다.
‘학생들과의 관계 설정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친구 같은 선생님이 좋을까? 아니면 무서운 선생님이 되어야 할까? 1년간 학급 운영은 어떻게 하지?’
복직 이후에도 학생을 지도하며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어려움들이 생겼다. 누군가에게 이런 고민들을 털어놓고 도움을 받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나에게 먼저 다가와서 그런 도움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학교 현장에서 하루하루 버티면서 내 나름의 방식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내가 학생을 지도하는 방법이 괜찮은 방식인지 편하게 물어볼만한 선생님이 주변에 있지 않을까?’
그날 이후, 학교 안에서 개인적으로 멘토 선생님을 찾아 나섰다. 그때 가장 먼저 동 학년의 A 선생님이 떠올랐다. 평소 A 선생님이 학생들을 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점심시간마다 A 선생님은 학급의 학생들을 친절하게 자리로 안내했다. 학생들이 모두 자리에 앉으면 조용히 다가가서 인사를 건넸다.
“00야, 밥 맛있게 먹어. 오늘 기분이 안 좋아 보이네, 무슨 일 있었니?”
A 선생님은 매일같이 학급의 모든 학생들을 찾아다니며 개별적으로 인사를 했다. 어느 날, A 선생님에게 왜 그렇게 하시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학생들과 매일 교실에서 만나지만, 수업 시간에 모든 학생들과 개별적으로 소통을 하지는 못해요. 생각해 보니 개인적으로 저와 말 한마디 못 나눠보고 하교하는 아이들도 많더라고요. 언제부턴가 그게 항상 마음에 걸렸어요. 그래서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모든 학생들과 개인적으로 인사를 하고 있어요. 짧은 시간이라도 눈을 마주치며 인사를 하면 유대감도 생기고 좋아요.”
A 선생님이 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져서 마음이 뭉클했다. 어린이날을 앞두고, A 선생님이 유독 분주해 보였다. 이유가 궁금해서 A 선생님께 물었다.
“선생님 무슨 일 있으세요?”
“아이들을 위한 선물을 준비하고 있어요.”
“그 선물이 뭔데요?”
호기심이 생겨서 물었다. A 선생님이라면, 무엇인가 특별한 선물을 준비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선물은 바로 ‘약’이에요.”
선생님 앞에는 여러 약 봉투가 놓여 있었다. 그런데 그 약 봉투에 적혀있는 문구가 보통의 약과는 달랐다.
‘행복해지는 약, 건강해지는 약, 키가 크는 약, 머리가 좋아지는 약’
약 봉투마다 제각각 다른 글자들이 쓰여 있었다. 열어보니 비타민, 견과류, 젤리 등이 잔뜩 담긴 가짜 ‘약’이었다.
어린이날, A 선생님의 약을 받은 학생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약을 먹을 때마다 A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도 함께 느끼지 않았을까?
A 선생님이 전근 가시기 전까지, 동 학년을 함께하며 교사의 마음가짐과 학생을 대하는 방법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 시간이 많이 흐른 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과거의 나처럼 교실 안에서 혼자 고민하는 교사에게 내가 다가갈 차례가 아닐까?'
블로그 댓글에 달렸던 말처럼, 나도 교사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교사가 되기를 소망한다. 그러나 당장 내가 그런 사람이 되겠다고 선언한다고, 바로 다른 교사의 멘토가 될 수는 없어 보인다.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바로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행동으로 꾸준하게 실천하는 사람이 아닐까? 학생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 마음을 행동으로 묵묵하게 보여주었던 A 선생님처럼 말이다. 진심을 갖고 맡은 일에 꾸준하게 임한다면, 과거의 나와 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들에게 언젠가는 미약하게라도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