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새삼 시간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었다. 나의 호기심은 나를 종일 바쁘게 한다. 이것도 배우고 싶고, 잘하고 싶고 또
궁금하다.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예전보다 지금은 더욱 그렇다. 어찌 보면 한 달에 평일 2일 휴무 빼고는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 재가요양보호사이다. 그러다 보니 밖에 나가는 것에 제약이 있다.
혼자 나가는 것이 허락되어 있는 것은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는 일과 물품을 구입하러 나가는 일이며, 어르신과 함께 나가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백세 가까운 어르신이 나간다 한들 어디를 그리 나가려 하실까 상상해 보면 된다. 호칭은 어머니이다.
이렇게 거의 1년이 다되어 간다. 처음엔 감정이 소용돌이쳐서 혼났다. 현실과 감정을 구분해야 하는데 주체하지 못하는 감정이란 것이 어찌나 빈번히 들락날락
하는지 계속 자각하게 되며 쓸데없이 세상 속의 온갖 희로애락에 젖어 살던 과거의 나를 상기시키며 슬프게 만들어 혼 줄 났다.
그 옛날 내 나이 40대쯤 어머니께서 내게 "절에 가니 스님이 나에게'이 뭐꼬'를 찾으라고 했다"라고 하시던 말씀이 어제 일 같다. 어머니도 충분히 그 시절 삶의 배경이 충분히 그러셨으리라 상상이 된다. 나와 다른 건 결혼 전 어머니는 늘 작은 소반에 정화수를 떠놓고 기도를 하셨고, 나이를 드신 후는 새벽 5시경 불경책을 놓고 늘 읽으시던 모습을 보았다.
나는 참으로 즐겁고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46세부터 시작된 뒤늦은 직장생활과 학업은
사이버대학에 사회복지학과를 입학하여 3가지 일을 동시에 했다. 평일은 사무원, 주말은 간병사로 일하며 자립하였다.
그 후 2006년에 가정폭력상담소에 취업하였는데 1년 정도 근무하면서 운영이 어려웠던 소장은 폐업을 하게 되었고, 그 일을 그만둘 수 없어 센터 개업을 하게 되었다. 그 무렵1388 청소년센터, 가정법원, 군상담 등, 약 10여 년 간 봉사 활동도 하면서 바쁜 50대를 보냈다.
대전에서 평택을 휴학과 복학을 하며 상담학 박사과정부터는 아동복지학 석사를 마친 큰딸과 함께 박사를 수료하였다. 그러면서 상담센터를 운영하며 살았으니 참으로 바삐 살았던 건 맞다.
그러던 내가 재가요양보호사를 하고 있으니 당연히 감정은 고도로 발전되어 제 멋대로
살다가 지금은 작은 아파트 내부에서 그것도 내방이 따로 주어진 것도 아니고 어르신께서 '늘 너무 의지가 돼요.'라고 하시니 문간 방이 있긴 하지만 그곳에서 자는 건 무리이다.
때론 조용한 전화를 받기 위해 말씀을 드리고 가는데도, 가 있는 동안 뭔가를 들고 오셔서 문을 살며시 노크하신다. 결국, 온전한 아주 홀로 누릴 수 있고 방해받지 않는 조용하고 소중한 것을 찾았다. 흐흠 하고 미소를 짓게 된다. 그게 바로 새벽 5시이다.
예전에 둘째 딸 내외와 같이 제주 여행 가서 새벽에 떠오르는 해돋이를 본다고 하며 제주오름에 올라가서. 보던 그 아침에 떠오르던 그 숭고하고 경이로운 태양은 아니지만 나는 지금 태양을 보지 않아도 새벽 5시가 되면 몸이 나를 깨운다.
마음 피어오르는 찬란하고 아름다운 선물은 신이 주신 선물이다. 세상 누구에게나 신은 다 주신다. 다만 어떻게 몇 시에 찬란한 태양을 맞이하는지는 모두가 각자 형편에 맞게, 의식에 맞게, 건강에 맞게, 맞이할 뿐이다.
이일을 하면서 좋아진 것은 정화되는 기분이 든다. 외식을 안 하게 되고 외부인과 만남도 제한되고 시간과 공간적 제한을 받다 보니 처음엔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교도소? 같이 느껴졌다. 하지만 분별하기 시작했다.
교도소라 하기에는 전직 대통령이 있는 그곳보다 훨씬 다 갖춘 곳이었고 그곳보다 넓은 17평이다. 또한 간섭받긴 해도 어찌 그
곳에 비하랴! 자유!! 자유는 투쟁을 해서 라도 쟁취하는 것인데 나에겐 적당한 공간적 통제가 있는 것 빼곤 이 안에서는 자유이다. 커다란 냉장고와 김치냉장고가 있고 무엇보다 집에서 가져온 그동안 못 읽었던 책이 있으니 교도소와 같다고 느꼈던 것도 잠깐의 거짓 감정이고 오버라는 것을 느낀다. 또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고 돌보는 것도 좋아한다.
'감사하자' 하고 생각해 보면 너무 많다. 어르신의 품격 있는 성품이 최고이다. 또한 어르신의 신앙심과 몸에 밴 순종성과 사람에 대한 조심성과 배려심과 온순성 등을 꼽을 수가 있다. 또한 식성도 깔끔하시다.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으시고 특정 음식을 선호하며 소식을 하신다. 그것을 만들어서 제공해 드리면 되는 것이다.
또한 체중이 40킬로 미만이신 것도 감사이다. 대소변도 다 스스로 하시며 아무리 집에만 계셔도 잠옷과 일상복을 구분해서 입으신다. 한 집 한 방에서 같이 있다 보니 TV 채널권이 있는데 그건
딱히 취향이 반대가 아니어서 그 정도는 내겐 스마트폰과 태블릿이 있어 크게 불편하진 않다.
또한 수면의 질도 중요한데 어르신과 전혀 충돌하지 않는다. 1미터도 안 떨어지게 T자로 바라보고 있어 불빛이 방해가 되긴 해도 저녁 10시 반과 아침 5시는 묵과하신다.
마음에 떠오르는 새벽 5시는 축복이다. 아침 7시 반, 점심 12시 반, 저녁 5시 반~6시는 늘 정해져 있는 식사시간이다. 식탁에서 겸상을 하며 생선 가시를 발라 드리고 깻잎을 떼어 드리고 콩나물은 더 잘라드리며 접시에 드실 만큼 덜어드리면 조용히 다 드시고 꼭 '잘 먹었어요' 하신다.
착하신 분이며 아파트 입구 8~90대 할머니들이 늘 출석부에 도장 찍듯 나와 있는 것을 아신다. 하지만 그분들.처럼 나가려 하지 않으신다. 어느 날 물었더니 어르신께서는 '나는 남에게 할 말도 없으며 하고 싶지 않고 별로 남들과 남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다'라고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