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내역서
어쩌면 작은 말에도 눈물은 핑 하고 도는지
감정은 쓸데없이 아무 때나 주책없이 나대는지 뭐든 적당하고 싶고 절제되고 싶건만, 글을 쓰려고 마음만 모아도 어느새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씩씩하고, 바른 사람으로 살라며 '바를 정 자'로 이름 지은 이유를 아버지로부터 설명 들고 훈육받았다. 직업군인이셨던 아버지는 그것을 강조하며 맏딸은 유사시 부모와 같은 위치이기 때문에 모범되게 살아야 된다고 가르치셨다. 훗날 그 말은 꼬리표처럼 책임감으로 희생으로 무언의 압박도 있었다.
늦었다고 생각하면서도 근거라도 있으려나 하며 은행에 찾아갔다. "언제부터 거래 내역을 출력할 수 있나요? 근거가 없으면 돈을 줬는데도 또 주든지 그래야 될 것 같아요. 남이라면 법적 기한이 있지만, 남도 아닌데 안 받았다고 하니 제가 못 견디겠어요."라고 은행 창구 여직원에게 어려움을 호소하였다.
같은 은행이라 해도 처음 찾아가는 지점에 가서 40년 정도의 거래내역서를 부탁한다는 건 쉽지 않았다. 원래 안 해주는 건데 사정이 딱해서 해준다고 하는 여직원에게 진정 감사했다.
자신이 과거 오래전 사례금을 주었는데 돈을 준 근거는 없고 동생이라 영수증 써달라는 이야기는 안 했고 자신의 형편이 어려우니 오백만 원을 요구하였다. 눈물을 닦으며 고맙다고 하였다.
은행이 감사했다. 그렇게 긴 세월의 거래내역을 설마 보관하고 있을지는 몰랐다. 그런데 거래내역서를 받았으니 이제 걱정 없다. 마음의 억울한 체증이 다 내려갔다.
20대 그녀는 고교 졸업 후 친구와 단칸방을 얻어 자취를 하며 직장생활을 하였다. 그 시대 장남은 그 집안의 대표이고 자랑이고 자존심이었다. 뒷바라지도 너무 당연한 거였다. 무슨 보수나 미안하다는 말조차 할 필요도 없는 시대였다. 그렇게 한방에서
2년을 밥을 해 주며 대학을 졸업하였다. 서로가 참 든든하고 우애 좋다 생각했다.
또 세월이 흘러 그녀가 마흔 무렵 죽을 만큼 힘들었던 고비가 있었다. 그때 그녀 곁에서 진실로 지켜 주었던 그 사람,
그녀는 보답하고 싶어 대가를 물어봤고, 그도 어렵다고 하며 금액을 요구하여 당연히 깔끔하게 지불했다. 고맙다며 눈물까지 보였었다. 둘 만의 사무실 공간에서였다.
기억은 조작된다. 똑같은 사건이라도 세월이 지나면 제각기 기억은 변형되어 표출된다.
우애 좋은 가족은 기억도 부드럽다.
사람들 중에는 겉과 속이 다를 뿐, 분명 우애가 좋은 듯해도 어느 부분은 '절대!!'를 외치며 같이 여행을 가기 싫다거나, 만나는 건 싫다거나, 하는 추억은 다 갖고 산다.
바위가 그 모진 풍화를 겪었다고 말하는 걸 들은 적 있든가? 당연한 이치이다. 궁중 사가의 드라마는 언제나 가족 간 피비린내가 진동을 한다. 권력과 돈과 명예에 물들어 간다.
그녀는 두 눈을 감고 잠시 생각의 홍수에 젖어보며 풍랑을 지나 고요의 바다에 왔다.
그 늠름하고 멋졌던 이소룡 닮은 그 사람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