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난 두 딸 내외와 손녀와 남편,
단출하지만 세상 소중한 가족,
유명셰프의 중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두 사위들끼리도 서로 몇 년 만이냐며 인사를 나누고 즐거운 식사를 하고 둘 다 차를 갖고 오지 않아 서로 사이좋게 술을 권하고 나도 두 잔을 받아 마셨다. 챙김을 받으니 너무 고맙고 잊지 못할 귀한 마음을 따스히 간직하며 또 십 년은 충분히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잘 아는 친구는 두 아들을 두었고 나는 두 딸을 두었는데 확연히 다르다. 그 친구는 매 해 연말에 두 아들이 대전으로 내려와서 연말 새해 예배를 함께 보내고, 생일도 해마다 가족행사를 치른다.
하지만 나는 어떤 규칙으로 자녀에게 불편을 주는 게 싫어 요구하지 않다 보니 두 사위와 만남은 오랜만이었다. 젊다고 해도 바쁘고 두 부모 다 챙겨 주기란 사실 너무 번거로울 수 있어 혹여 불편한 행사가 되지 않을까 하여, 어떤 방식이 옳은지 약간 혼란스럽긴 하다.
그 친구와 항상 비교되고 때론 가족의 결합이나 존경심, 가족 규칙 등이 소원해지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뭔지 모르게 상대방의 형편에 맞게 스스로 하도록 배려해 주는 게 맞다고 생각하여 옭아매는 것을 싫어하다 보니 자주 못 본 게 맞다.
오랜만에 만나니 더 소중하다. 이럴 때는 서양처럼 자연스러운 허깅도 하고 싶었다.
정성껏 한글 한글 써 내려간 손편지와 화장품 그리고 향초 세트와 박완서의 에세이 집까지 주었다.
어떤 생일보다 행복한 순간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딸을,
있는 그대로의 엄마를 인정해 주는
그런 모녀 관계가 된다면 어떨까?
잠시 한 생각하였다. 나는 요즘 마음이 편해졌다. 어린 시절 10세 때 생사의 기로에서 죽음을 뚫고 살아준 그 작은 딸에 대해 '살려만 주신다면 아무것도 원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절실히 기도했던 내가 잊은 채로 그 또래 애들이 엄마에게 하는 평범한 기대를 했구나.,.
망각이 나를 욕심나게 했구나. 그때는 그저 살아만 준다면 모든 것에 감사하게 생각하겠다고 신과의 약속을 잠시 잊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기 때문이다.
고마운 가족들,
든든한 가족들,
신이 허락하신 고마운 울타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