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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노숙자가 되었다는 핸리

나도 노숙은 처음이야. 이제 돈이 없거든

 날씨가 점점 추워져 가는 유럽의 작은 나라 아일랜드, 그 곳의 수도 더블린에 제법 말끔한 차림의 남자가 거리에 앉아 있었다. 그렇다고 노숙자 행세를 하는 거지가 아니었다. 나이키 운동화 신고 나 보다도 좋은 옷을 입고 구걸하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 말이다. 중년의 아저씨가 익숙한 노란 종이 박스에  '홈리스'라고 적고, 돈을 달라고 하는 것을 보니 노숙자가 분명한데, 행색이 너무 좋았다. 그렇다고 거짓말인 것 같지는 않고 해서 옆에 앉았다. 또 그렇게 대화는 시작됐다.



'나는 원래 제단사로 폴란드에서 일했었어, 그런데 회사가 파산되면서, 유럽에서 그나마 경기가 좋다고 하는 아일랜드로 일자리를 찾아 온 거야.'


  아일랜드에 온지 3주 째라는 핸릭 아저씨. 가족도 없고, 혈혈단신으로 희망의 땅으로 왔다는데 지금 신세는 노숙자다. 공장의 지게차 드라이버로 일자리를 구했다고 하는데, 그것도 바로 잘렸단다. 뭔가 이유가 따로 있겠지만, 아마도 웅얼거리는 말투와 소극적인 자세도 한목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봤지만, 지금이 노숙자라서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나는 아직은 누구를 판단할 수 없다. 


 3주 동안 아일랜드에서 살면서 돈을 다 써버렸다는 아저씨. 그래서 오늘부터 노숙자란다. 그래서 그들의 삶과 아일랜드에서의 삶에 대해서 아는 게 전혀 없었다. 다른 노숙자들은 10유로짜리 저렴한 방에서  자는데 이 아저씨는 아직까지 30유로짜리 여행자들이 머무는 호스텔에서 잔다고 했다. 그리고 또 거기로 갈 거란다. 아직은 노숙자인 듯 노숙자 같지 않은 아저씨다. 한방에 20명이 자야 하는 그런 곳에서 자야 한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차라리 거리가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침낭도 깔고잘 박스도 없는 이 아저씨가 오늘 밤을 어떻게 날지 궁금했다. 딱히 아저씨에게 꿈이나 미래의 계획에 대해서 물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무의 마 하다는 것 그 정도는 이제 이미 알고 있다.


 나도 가끔 노숙자에게 돈을 주곤 한다. 큰 돈은 못 주지만  몇십 센트씩 주곤 했다. 분명 내 점퍼 주머니에는 동전이 있고, 동전 소리가 났지만 아저씨에게는 없다고 했다. 주기가 싫었다. 돈 받고 안면 몰수하는 그런 부류의 노숙자가 아닌걸 알지만, 30유로 호스텔에 머물고 싶다는 아저씨의 말에 현실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아직은 받아들이지 못했구나, 약간은 노숙자가 된걸 들뜬 기분으로 말하는 아저씨가 싫었다. 물론 내 느낌 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자랑 아닌 자랑같이 말하는 아저씨가 좀 다가가기 어려웠다. 그렇게 나는 다시 길에서 길이 아닌 곳으로 갔다. 


- 바닥일 수도 있는 인생의 시점에서 내가 바닥임을 인식해야 한다. 그래야 바닥을 딛고 올라 갈 수 있다. 아직까지 내가 저기 위에 머문다고 생각한다면 한없이 밑으로만 갈 뿐이다. 심적으로든 물적으로든. 그렇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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