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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월드 챔피언, 지금은 노숙자

그의 눈물에 나도 울었다.

인연이라는 게 참 신기하다. 복싱 챔피언 브라이언 아저씨, 길에서  여기저기를 배회하는데 다자 고자 담배를 주길래 알게 되었다. 중국인 인 줄 알았단다. 그리고 나는 아저씨가 노숙자란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그날은 노숙자를 만날 생각도 없었는데,  아무튼 그렇게 즉석에서 친구가 되었고, 노숙자라는 말에 나는 아저씨에 대해서 더 궁금해졌다. 그래서 담배 한대를 같이 피고는 같이 그리고 나란히 옆에 앉았다.


 8개월째 노숙을 한다 했다. 그런데 행색은 말끔했다. '아저씨 무슨 인생 이야기가 있냐?' 물으니 긴 이야기라고, 술 한잔 하러 가잔다. 그래야 이야가 나온다고 했다. 사실 나는 조금 무서웠다. 이게 바로 신종 인신매매인가? 싶어 아저씨와 걸으면서도 동시에 내 옆으로 다가오는 모든 사람에게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알고 보니 브라이언 아저씨는 외로운 거였다. 그래서 말을 걸었고, 신기한 듯 삶을 묻는 내가 반가웠던 거였다.


 아저씨는 진짜로 내게 와인을 샀다. 내가 산다고 하니까, 절대 못 사게 했다. 노숙자에게 술을 얻어 먹다니? 인터뷰는 내가 하는데 술도 내가 얻어 먹는다. 아저씨는 알코올 중독자다. 본인 입으로  직접 말했고, 같이 술 먹을 때 지나다 합류한 노숙자 친구들도 그렇다 한다. 아저씨 사연은 이렇다.


'10살 때부터 삼촌에게 복싱을 배워서 22살에 유럽 챔피언 타이틀을 가지고, 할리우드로 가서 월드 챔피언이 되었단다. 3차례 방어전도 치렀고, 인생을 즐겼단다. 술, 마약, 섹스가 그렇게 망가트렸다고 했다. 중간에 마피아도 개입돼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렸고, 인생이 달라졌다 했다. 당시에 한 게임 이기면 8천 만원 가까이 번다고 했다. 그 이후로 운동을 그만두고, 고향인 아일랜드로 와서 군에  입대했단다.'


 '복싱 챔피언'이란 타이틀 때문에 SAS로 들어갔고, 병사들 훈련 담당을 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20년을 영국 군인들을 훈련시키다가 예맨에서 사고로 사람을 죽였단다. 그래서 그 책임 때문에 2년간 감옥에 있다가 노숙을 시작했다고 했다. 아저씨는 가족도 있다고 내게 말했다. 3명의 아들도 있고 와이프도 있단다. 그들이 그리워서 매일 잘 때마다 꿈을 꾼다고, 하지만 돌아갈 수 없단다. 이유는 말하지 않았다. 단지 자기 혼자서 생존하는 자신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그래도 내가 '그럽지 않냐?' 물으니,  말없이 아저씨는 조용히 십여분을 울었다. 울기보단 눈에서 무언가가 계속 흘리더라. 그런 아저씨 옆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어떤 기분인지 어떻게 알 것이며, 상상이나 하겠는가. 내가 느끼는 외로움이 감히 비할까 싶었다. 3시에 시작한 인터뷰는 저녁 8시에 끝났다.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를 듣기에 4시간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한 중년 남성의 눈물을 보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었다.


 아저씨는 돈은 있어 보이는 눈치였다. 주머니에 돈이 제법 있었는데, 돈으로는 수 백유로는 넘어 보였다. 그런 돈을 가지고도 호스텔로 가지도 않고, 침낭도 없이 노숙을 한다는 걸 보니, 아마도 스스로를 벌하는 그런 게 아닌가 짐작했다. 아저씨와 나는 10번도 넘게 악수를 했다. 서로 조심하라고.... 그렇게 아저씨는 노숙자들, 알코올 중독자들 무리로 들어갔고 나는 조용히 아저씨를 보내드렸다.


 아저씨가 없다는 꿈, 어릴 적 꿈인 세계챔피언이 되었지만 지금은 조금 다른 인생을 사는 아저씨, 다시 한번 느낀 거지만 참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다. 어떠한 침묵보다 조용히 흘렸던 아저씨의 눈물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울컥은 했지만 같이 눈물도 흘릴 수 없었던 내가 조금은 부끄러웠다. 나는 아직 그들을 이해하지 못  하는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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