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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를 마시며 잠들다.

커플 노숙자 그리고 진통제

이날은 특별히 단단히 마음을 먹고 나왔다. '또 많은 사람을 만나리라.' 생각했다. 일을 마치고 기운을 차리기 위해서 낮잠을 자야 했지만, 나는 조금은 위로를 얻고 싶었고, 내가 아직 느끼는 우울감과 상실감을 잊고자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래서 나왔다. 나도 가끔은 멋진 옷을 입고 폼 잡고 커피 마시고 싶지만, 오늘은 아니다. 등산복 차림에 오래 되어서 녹이 물든 모자를 쓰고 오늘도 혼자 비 오는 거리를 걸었다. 


 한 노숙인 커플을 찾았고, 슬쩍 둘러보았다. 무서웠다. 주변 벽에는 오줌 자국이 있었고, 유모차에는 커다란 비닐봉지가 있었으며, 아저씨 얼굴에는 엄청 무시무시한 상처가 있었다. 칼에 베이거나 한 것이 아니라, 조금은 덜 날카로운 것에 뜯긴 그런 흉터였다. 섣불리 말을 걸기 힘들었지만, 그럴수록 더 말을 붙여보어야지 않겠는가 싶었다. 뭐 이제는 노숙자들이 친구에 가깝다. 이런 게 또 한국이 아니기에 느끼는 그런 감정과 경험들이 아닐까? 생각하며 옆에 앉았다.



취한듯한 아저씨는 나를  적대시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따듯하게 맞았다. 역시 아저씨는 착했고, 내 이야기를 들어 주었으며, 다시 담배 한 모금에 친구가 되었다. 내가 친구인 거처럼 대해서 나는 이미 친구라고 확신했다.  그러다가 아저씨의 과거에 대해서 묻게 되었다. 아저씨는 영국과 아일랜드를 오가면서, 굴뚝 부품을 만들고 굴뚝 청소를 하는 일을 하다가 다시 가드닝(정원관리) 일을 했단다. 어릴 적에 다리를 다쳐서 아마 그렇게 안정적인 직장은 아니리라 생각했지만 아저씨가 본인의 직업을  이야기할 때 자신감은 프로에 가까웠다. 굴뚝 관련된 것과 정원 관련된 일은 모두 가능하다고 호언 장담하는데 내가 더 무슨 말을 하랴. 그리고 언제부터 노숙을 하게 되었는지 물었다.


'16살 때부터 간간이 길에서 잠을 잤어 노숙자는 아니었어. 그러다가 가끔 어머니를 따라 더블린 외각에서 아픈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도왔어. 일을 도우러 갔던 날,  나보다 훨씬 더 어린 십대 아이들에게 집단구타를 당했는데, 발목부터 다리 전체가 부러졌었어.  내 얼굴에 있는 상처도 그때 생긴 거야. 보이지?'  '그다음에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간단히 주사 정도만 맞고 밤에 도망쳐 다 와버렸어. 치료비를 낼 돈이 우린 없었 거든' 


 유럽의 의료비는 상당하다. 자세한 내막은 물어보지 않았지만 안타까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십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 다리는 정상이 아니고, 후유증이 남았고, 진통제가 필요한데, 진통제가 없어서 아저씨는 2유로짜리 라이터 가스를 가서 진통제를 대신해서 마시고 있었다. 분명 내가 인터뷰를 하는 중에도 수 없이 마셨고 아마도 제정신은 아니었을 테다. 환각? 은 아니었을 테고 아마도 마취된 상태가 아닐까 추측할 뿐이었다.


 가스를 마시고 본드를 마시는 건 예전 드라마 재연 장면에서다 보던 그런 것들이 었는데, 내 눈 앞에서 직접 보다니... 마약 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과는 또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이 사람이 나쁘다 말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가스를 하지 말고 대신에 내가 돈을 줄 테니 진통제를  사 먹고 치료를 받아라 할 수 없는 입장이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이야 어느 정도 마음에 평화 혹은 안정을 찾았지만, 조금 이전에는 누구를 신경 쓰고 걱정하고 그럴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고작 이제 남과 대화를 할 때 이해를 시도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 아저씨는 길에서 만난 6년 된 여자 친구가 있었는데, 이 아줌마는 무엇에 취했는지 담배필 때만 일어나고 다시 하염없이 자더라. 마치 뻐꾸기 시계가 정각에만 둥지에서 나오는 그런 느낌이랄까? 아무튼 그랬다. 그리고 한 무리의 고등학생들이 와서 커피와 빵을 줄 때 다시 일어나서 먹고는 다시 자더라. 아마도 또 다른 무언가에 취해서 그랬지 않나 싶다. 그래도 아저씨는 무처기나 어여뻐하고 샌드위치 한 조각도 먼저 챙기는 모습에서 어쩌면 이게 또 진짜 사랑은 아닐까 생각했다.  이런 비유가 맞지 않지만, 진흙 속에서 피는 연꽃의 느낌이 나는 사랑이랄까? 아무튼 그랬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아저씨는 가젔으니 말이다. 


 조금 더 아저씨의 깊은 생각을 알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아저씨에게 꿈을 물었다. 아저씨는 꿈이 있었다. '아이 하나를 낳아서 정착하는 거야' 참 소박했다. 어쩌면 내 입장에서야 소박하고 그저 그런 평범한 꿈이라고도 할 것 없는 그런 계획에 불과할지 몰라도, 아저씨에게는 지금 이 가스를 마시며 순간을 버텨가는 이곳을 벚어나는 희망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평범한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면 나는 아마 마음속으로 열망이 없거나 사실 계획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저씨는 달랐다. 야간 경비 일을 찾아보는 중이라고 했고, 돈을 모아서 길거리 생활을 청산할 거라 했다. 


 실제로 자선활동을 하는 고등학생들이 와서 먹을 것을 주려 할 때 먹을 거 대신에 일구 하는 것 좀 알아봐 달라고 물어보는 모습에서 진심임을 느꼈다. 그는 다른 노숙자들과 달랐다. 짐가방 전체를 매일 들고 다닌 진짜 전형적인 완벽 노숙자 마이클 아저씨. 다른 노숙자들처럼 짐 가방을 숨겨놓을 공간도 없고, 가끔 가는 호스텔도 없어 보였다. 내가 자리를 뜨고 아저씨는 구걸을 하다가 경찰에게 끌려갔다. 자세한 자초지종은 모르겠지만, 다른 노숙자가 가스를 마신다고 찌른 거 같았다. 나는 끌려가는 건 못 봤고, 여러 무리의 사람들이, 그 커플에 대해서 말하면서 가스 어쩌고 더럽고 어쩌고 하더라..... 누구를 비난하겠는가.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그 건물 주인이 치안 유지상 경찰을 불렀다는 것을 듣게 되었다.


 고등학생 무리들이 수프와 식빵 커피를 나눠주면서 말했다.' 너는 어떤 걸 먹을래?' 응? 잘 못 들었다 말했다. 배안 고프냐고 그런다. 나는 노숙자가 아니라고 말했다. 웃더라 녀석들. 아저씨가 그냥 친구고 이야기하는 중이라고 설명을 대신해줬다. 나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등상복을 버려야 하나 보다.... 그리고 나는 수염을 밀었다. 나중에서야 알았다. 나는 사실 아저씨 옆에 잘못 앉았다. 위치 설정이  실수였다. 그때 옆에 있던 축축하던 게  오줌이 아니고 하루 종일 내리던 비겠거니 하고  앉았었는데.... 트램을 탔는데 어디서 찌릉내가 나더라니, 그게 나았더라. 


 아직은 감만  올뿐 노숙인들이 삶이 어떤지  어떠해야 하는지 정의를 못 내리겠다. 어떻게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 답을 모르겠다. 사실 바닥 인생은 고난이지만, 그들은 답을 찾아가고 있는 듯하다. 아마도 작은 행복을 찾거나 다른 것에 의지하거나 하면서 말이다. 모두가 그들의 삶을 비난하지만, 그들은 다른 누군가를 욕하진 않는다. 과연  우리는?이라는 질문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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