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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래서 노숙자가 되었다.

진짜 노숙자 체험 아닌 체험

지난 8~9개월간 아일랜드에서 거리의 노숙자들 100명 정도 가까이 만나 보고 인터뷰하고, 같이 지내도 보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삶과 그들의 인생, 그 느낌을 이해하지 못해서 직접 그들이 되어보기로 하고 거리로 나갔다. 직접 해봐야 한다. 생각했다. 결론은 여행하다 돈 없으면 구걸이라도 해야 하니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막무가내의 자신감과 내가 그들을 다 알지도 못하면서 그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 같아 이상한 죄책감 같은 것도 들었다. 잠을 설치는 몇 날을 보내고서 결정했다. '나도 노숙자'가 되어 보기로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약 25시간 동안 노숙을 하고, 구걸을 했다. 우선 있었던 일들을 나열해 보고자 한다. 그 짧았던 25 시간 동안 나는 비참했고, 동시에 많은 것을 느꼈다.


6월의 어느 날, 아침 10시 하고도 30분이 지나 집을 나섰다. 아침은 먹지 않았다. 원래 이렇게 편하게 입고 다니지만,  그중에 제일 편한 옷들, 길에서 주운 옷과, 내 친구가 준 옷을 입었다. 혹시나 모르는 일에 대비해서 지갑은 두고, 10유로 지폐 하나, 친구가 3년 동안 쓴 거라고 여행할 때 쓰라고 준 침낭 하나 챙겨서 노숙을 그리고 구걸을 하러 나갔다.



 우선, 구걸을 한다면 돈을 받을 컵이 필요했기에, 가끔 가는 커피숍에서  할인받아 2유로에 커피를 마시고, 더블린에서 제일 바쁜 쇼핑거리인 헨리 스트릿에 자리를 잡았다. 아마도 내가 노숙자들을 가장 많이 만났던 거리였고, 구걸을 한다면 사람을 가장 많이 만날 수 있는 거리로 가야 돈을 더 벌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노숙자들이 버려진 종이 박스에 글귀를 적어 놓는데, 나 역시도  준비했다. 아니 종이박스를 구해서, 준비해간 펜으로 그 자리에서 적었다. 그 문구는 'i don't know what is the love, dream' 내가 찾고자 하는 답이 었기도 하고, 구걸하는데 지나는 행인들에게 조금의 자극이 될 것도 같아서 그렇게 적었다. 마침  어제저녁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고, 아침도 굶었더니 전해저 오는 배고픔이 진짜 노숙인이 된 거 같았다. 





 점심쯤 되었을까? 뭔가를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직 크게 구걸로 번 돈이 없었기에, 그렇게 주리 배를 정말로 한 손으로 쥐어가며 앉아 있는데, 약에 취한 듯한 다른 노숙자가 와서 내게 40센트를 달라는 것이다. '지금 술 먹어야 하는데 40센트가 모자란다고' 말이다. 그래서 강하게 'fuck off, 네가 구걸해'라고 했더니, 같은 노숙자끼리 이러면  안 된다면서, 다음에 네가 헤로인이나 마리화나 필요할 때 공짜로 준다고 40센트를 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30센트를 주고 보냈다. 다른 노숙자한테 삥 뜻 긴 느낌이다. 내가 호구로 보였나 싶었다. 그냥 줄 수도 있는 돈이었지만, 왠지 동전 하나라도 더 아껴야 할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강하게 거부감을 보였던 것 같다.


1분 사이에도 10초 사이에도 수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다. 그들에게 조금 더 가까이, 도로 쪽으로 한 발짝 옮기 기는 게 참 힘들더라. 적극적으로 구걸을 해야 혹은 사람들이 잘 보이는 곳으로 가야 돈이 잘 벌린다는 것을 안다. 이 정도는 이제 노숙자들 만나면서 눈칫밥으로 알 수 있다. 하지만 아직 부끄럽더라. 갑과 을이 아니라 갑과 을, 병, 정 정도 되는 관계에서, 병 정도에 위치한 나의 입지로서는, 나는 비굴해지더라. 불쌍한 듯 자연스레 눈을 뜨게 되었다. 그리고 수 많은 사람들의 시선에 작아지더라. 아 이래서 내가 오래 하면 진짜 노숙자인 것 같은 느낌이 들 것 같았다. 오래해서는 안될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 '28 욕이 나오는 게, 그런데 그것도 익숙해지더라' 구걸도 오래하면 자존감이 절대적으로 작아지겠다는 것을 짐작 아닌 확신을 했다.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는 느낌이었다. 이런 이유가 아마도 노숙자들이 재계를 할 수 없는 이유 중에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때 나는 아마도 일주일 정도 하려고 생각했던, 노숙자 체험을 하루만 하기로 결정했다. 나를 위해서 더 큰 용기를 잃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더 웃긴 건, 구걸을 하는 와중에서도  '돈 욕심'이 생기더라. 욕심이 없으려 했는데, 사람들이 돈을 주려하니까 끔쩍 놀라게 되고 은근 기대하면서, 갑자기 더 불쌍한 표정을 짓게 되더라.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말이다. 이게 내 자존감을 더 낮춘다는 생각을  그때는 하지 못 했다. 결국 나는 저녁까지 15유로 남짓을 벌었다. 불쌍한 더 불쌍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이다.


 저녁 7시쯤에 한국의 테헤란로 급인 오코넬 스트릿에서 토미 아저씨를 만났다. 마침 경찰한테 쫓겨나서 할 것도 없는데 옆에 앉아서 담배 한대를 얻어 폈다. 의도치 않게 노숙자와 함께 하게 되었다. 아저씨는 노숙한지 20년이 넘는단다. 토미 아저씨는 57살인데 온몸이 부어서, 특히나 다리가 퉁퉁 부어서 양말을 못 신고 도와 달라길래 선 듯 나는 조금 누런, 원래는 아마도 하얬을 양말을  그 부은 발에 신겨드렸다. 더럽더라. 발에서 광이 나는데, 이게 깨끗해서 광이 나는 게 아니라, 발 기름이 날만큼 안씼어서 광이 나더라 그래도 도와줬다 더러운 건 좀  익숙하니까 말이다. 남의 시선 따위야 아무렇지 않게, 대로변 동상 아래에서, 그렇게 앉아서 30분간 종교와 심리학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아저씨가 말했다. '그러지 말고 맥주 한잔 살 테니 다른 데로 가자'고 말이다.


그래서 따라가서 얻어먹었다. 2.79유로 맥주 한 병과 콜라 1병을 사서 섞어먹었다. 이게 아저씨가 영국에서 배워온 샤키? 라나 뭐라나 그런 거란다. 아일랜드에서는 거리에서 술 먹는 게 불법이어서, 콜라병에 먹기 위해서 만들어진 방법이란다. 술인데 술처럼 안 보이게 보이기 위한 일종의 잔머리 같은 방법이다.


 '오늘 얼마나 벌었냐?' 물어보길래 15유로 벌었다니 더블린에서 최소 하루를 나는데 20유로가 필요하다고, 나에게 갑자기 10유로를 주는 것이다. '아니 무슨 자기 지갑에 15유로 있으면서 나한테 10유로를 주다니' 내 통장에 100배는 넘게 있는데, 그래서 거절했더니, 5유로를 주더라. 이것도 거절했더니, 호주머니에서 3유로 주더라. 이것도 거절하면 예의가 아니라고 해서 받았다.


그리고 배고프다고 저녁 먹으러 가잔다. 아저씨가 치킨이랑 칩스를 사줬다. 안 먹는다고 내 돈으로  사 먹겠다니 그냥 사서 나눠먹잔다. 그거 나눠먹고 모자랐다.  1인분인데 2명이서 나눠 먹으니 당연히 부족했다. 결국 한 세트 더 시켜서 나눠먹었다. 결국 아저씨는 있는 돈을 내게 다 썼다. 치킨을 먹다가, 갑자기 울컥 무언가 올라왔다. 주체할 수 없는 커다란 무언가 였다. 그래서 손짓으로 화장실 간다고 하고 급하게 위층으로 올랐다. 맥주 조금을 마셔서 눈가는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혼자 울기 싫었다. 더 외로울 것 같아 참아보려 했다. 그래서 찬물로 영화에서 본  것처럼 세수도 해보았다. 그리고 내 얼굴을 슬쩍 한번 보고는 화장실을 나갔다. 나가는 문을 열고 슬쩍 아래를 보니 아저씨가 치킨을 안 먹고 있는 것이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내려가던 발걸음을 멈춰서 다시 올라왔다. 누가 보건 누가 머라건 신경 쓰지 않고, 나는 뜨거운 것을 흘렸다. 많은 것들이 내 머리를 스쳐갔고, 많은 기억들이 나를 다시 과거로 불렀다. '왜 이렇게  잘해주지?'라는 생각도 들었고, 그저 고맙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참이나 눈물을 흘리고, 조용히 다시 세수를 하고 웃는 얼굴로 내려갔다. 티를 안 내려했는데 안 났을 리가 없을 만큼 눈시울이 새 빨겠다. 그래도 모른 채 하고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그리곤 토미 아저씨께 물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나를 도와주냐고, 그리고 아저씨가 대답했다. '나도 젊었을 때 도움을 많이 받았어, 그래서 도와주는 거야, 그리고 아까 양말 신는 거 도와줬잖아?'  나는 충분히 친절한 사람이야 그래서 도와준 거야' 말하며 너털웃음을 지어주었다. 나는 나에게 돈을 다 주고, 다 쓴 아저씨가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어디서 자냐니까 그런 거 생각하면 스트레스 받는다고 묻지 마란다.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고, 아저씨는 마지막 말로, 나보고 안전하게 지내라 했다. 나는 아저씨를 꼭 다시 볼 것이라 생각하고, 그게 진짜 다시 못 볼 작별인 줄 모르고, 어디서 자야 할지 고민하면서 내 걱정에 앞서, 제대로 감사 인사도 못하고 대충 그렇게 악수와 인사만 하고 서둘러 헤어졌다. 이것이 내 한으로 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 한 채 말이다.


 그렇게 밤 거리를 배회하다가, 12시 반에 다른 쇼핑가(그라프 튼)에 가서 노숙을 했다. 백화점 옆에 딸린 루이뷔통 정문에 자리를 잡고 잤다. 구걸하다가 하루 종일 걷고, 또 구걸하고 해서 그런지 바로 곯아떨어졌다. 잠... 잘 못 잘 줄 알았는데... 씁쓸했다... 이것도 잘 맞았다. 너무 잘 잤다. 아무튼 자는데 새벽에 양아치 한 명이 한 명이 나를 깨우더니, 헤로인을 샘플을 건네고, 헤로인을 해보라고 하더라. 안 한다고 가라고 하고 다시 잤다. 얼마쯤 지나서  또다시 누가 깨우더니 다른 놈이 나보고 '헤로인 살래?'라고 묻는다. 다른 것도 있단다. 안 한다 그랬다. '노숙자들은 참 쉽게  노출되는구나' 싶었다. 새벽에 그냥 혼자 있으면 그런 것을 구할 수 있나 보다.


 노숙자들이 마약을 구매하기 때문에 그들이 팔기도 하겠지만, 그들이 팔기 때문에 노숙자들이 마약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저런 생각을 하려다 잠이 들었고, 아침 6시에 일어났다. 솔직한 마음으로 더 자고 싶었는데 백화점 다른 매장에서, 아침 일찍도 청소기 돌리는 바람에 잠이 다 깨버렸다. 그래서 어기적 일어나서 거리를 걸었다. 침낭을 들고 아니 몸에 두르고 다니니 아침에 사람들이 모두 피했다. 참 내 몰골이 웃겼다. 이게 인생의 바닥인가 싶은 생각이 드는 찰나, 배가 고프더라, 그래서 웃겨서 셀카를 남겼다. 핸드폰을 생각하니 없어진 거 없나 찾아보니 없어질 것도 없었다. 동전이랑 핸드폰이 내가 가진 전부였다.



셀카 찍다가 기념으로 남기고 싶어서 사진을 찍고 싶었다. 그래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안 하고 'may  i'라고 만 했는데, 그냥 피하더라. 아니? 왜? 사진 찍어달라고 했는데, 다 피한다. 아니 거지가 돈 말고 다른 도움을 청할 수도 있지 않나? 그리고 거지 좀 도와주면  안 되나? 돈 안 줘도 되는데 말 좀 드러 보면  안 되나? 한마디도 끝내지 못하게 하고 손사래를 치니... 9번 물었고 9번  무시당했다. 이건 그냥 소외가 아니라 일부러 피한다는 게 더 외롭게 했다. 토미 아저씨가 나를 도와준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결국 한 명을 붙잡아서 사진을 남겼다. 억지로 말이다.



 어제 밤 자면서 느낀 것은 종이 박스는 참 따뜻하다는 것이고, 구걸을 하면서 느낀 것은 정기적으로 햇빛에 나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만히 앉아 있기 보다는 정기적으로 운동도 해줘야 한다. 2시간 이상 앉아있으니 무릎이 나갈 거 같았다. 구걸도 쉽지 않았고, 구걸도 체력이 좋아야 한다. 그날 아침에 새로이 알게 된 사실인데, 좋은 목 자리가 있는데 2명이서 번걸아 가면서 구걸을 하는걸 알게 됐다. 사실 어제 내가 쫓겨난 자리다. 다른 노숙자한테 '여기 원래 내 자리야' 한마디에 비켜줘야 했다. 그래도 나는 좋은 글귀 덕분인지 혹은 자리가 좋았던 탓인지 어제 아침 10시 30부터, 오후 4시까지 번 돈이 15유로다. 이 정도 금액은 다른 노숙자들에 비해서도, 꽤 나쁘지 않은 수입이었다. 



구걸조차 편히 못하는 노숙자의 삶

1박 2일 동안 경찰에게 총 5번 kicked out 당했다. 두 번째 다섯 번째는  체포될 뻔했다. 순순히 말 듣고 종이랑 컵 들고 다른 곳으로 가면 되는데 대꾸하다가 잡힌 것이었다. '와 심장이 벌렁거려서 사실 죽을뻔했다' 겨우 풀려난 게 '사실은 나 노숙자 아니고, 작은  프로젝트한다'고 설명해서 겨우 풀려났다. 쉽게 말해서 쫄  수밖에 없었다. 차에 다른 노숙자들도 잡혀서 있어서 조금 비겁하게 행동한 것 같지만, 체포되는 것보다는 낫다 보았다. 어쩌면 체포되는 것도 나쁘지 않나? 다시 해보지 못하는 그런 경험  아닌가?라는 생각도 어렴풋이 들었지만 나는 추방당할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게 어쩌면 시간이 참 안 가는 지루한 구걸의 시간이었지만, 경찰이 오나 안 오나 양쪽을 번갈아 가면서 봐야 하기 때문에 쉽지 만도 않았었다. 참 진짜 구걸도 못하게 하는 삶이란 이런 건가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고달프구나 하고 말이다. 구제 제도 정도는 마련해 놓고 잡아 가던지 하루 이틀 잡아놓고 다시 풀어주고를 반복하는데  무의미했다. 다른 노숙자들은 그저 대수롭지 않게 잡혀갔고, 다시 풀려나기를 반복했다.


 나는 당시 사람들의 시선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나를 피하는 것도 이해를 하지만, '아이고 저 새끼 봐라' '잉여인간'을 눈으로 말하는 것 같더라. 나는 이해했다. 이제껏 노숙자들이 말한 nobody know about there's  future'의 의미를 말이다. 진짜 어떤 일이 미래에 생길지 모른다는 의미가 아니라, 어쩌면 이들에게 거는 저주가 아닐까 생각했다. 왜냐하면 나도 그랬기 때문에 말이다. 차라리 안처다 보면 좋겠더라. 왜 그렇게 나를 내려다 보는가? 내가 낮은 위치에 앉아 있어서가 아니라 왜 지위적으로 심적으로 정신적으로 나를 내려다 보고 깔보는가?


 그래서 나 나름의 실험을 해보았다. 동전 컵과 종이박스 글귀를 치우고, 그냥 앉아있어 보았다. 구걸을 하지 않고 그냥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더니, '사람들이 무슨 일 있냐 물어본다'. 뭐지? 일반인에게는 관심을 가지고 노숙자에게는 경멸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불만을 더 말해보자면,  한국 사람에게 조금 실망했다. 더블린에 수 많은 한국인들이 있다. 장담하는데 더블린에 구걸하거나, 노숙하는 아시아인은 나 밖에 없었다. 한국인은 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아는 척은 물론이고, 대놓고 무시하더라. 내가 나를 못 봤겠지 하고 쳐다보아도 나를 보고도 못 보채 하더라. 한국인임은 알고 있었다.  한국인이야?라고 했으니 틀림이 없었다.  그놈의 핸드폰 연락 온 척은 왜 하는지? 나는 좀 불만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오만가지 생각을 했다.


 이만리 타국에서 구걸을 하고 있으면 동포라면 무슨 일 있나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닌가? 돈을 빌려주지는 못할 망정 이야기라도 들어보려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불만이 입에서 나왔다. 아마도 반대 입장이었으면 나는 200프로 그렇게 했을 거 같은데 말이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처음에 인지하지 못 했다. 이 부분은 내가 알게 된 부분이 아니었고, 아일랜드 친구와 다른 지나가는 사람이 알려준 부분이다.  '너 한국인인데 여기 한국인 많은데 왜 안 도와줘?'라고 해서 말이다. 사실 부끄러웠다 그 상황이 말이다. 지나가던 내 친구가 말했다. '한국인들 친절하지 않아? , 내가 한국에서 구걸하고 있었다면 아이리쉬는 무조건 와서 무슨 일이냐 물었을 거야. 설령 돈을 안 주더라도!'라고 하는데 부끄러웠다. 무슨 말인지 자세히 적지 않아도 이해하리라 생각한다.  


 나는 한국인을 사랑하고, 한국이라는 나라를 위해서 죽을 수도 있다. 나는 장교였고, 계속 장교로 살고 싶다. 그래서 더 큰 실망감으로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한국인 모두를 비난하지는 않는다. 대부분 유학생이라는 사정과 그 일부로 전체를  판단할 수는 없기 때문이고, 어떠한 신뢰의 문제와 안전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에 뭐라 단정 지을 수 없음을 잘 안다. 하지만, 그 날을 통해서 나는 그러지 않고 싶고, 그러지 않을 것이다. 


 점심즘이 다가 올 때까지, 나는 의도치 않게 많은 것을 깨달았다. 3유로 샌드위치 한번, 5유로 빅맥으로 끼니를 때우고 토미 아저씨가 준동과 내가 번 돈을 모두 합해서 남은 돈 전부를, 전화 부스 옆에서 구걸하는 아줌마 노숙인에게 주었다. 'bless you'를 연신 외치던 아주머니... 이 시간에도 더블린에는 노숙인들이 넘쳐난다.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 한 채로 말이다.


  호기심, 그들의 삶에 대한 호기심과 그들이 내게 말해주었던 것들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작한 짧은 시간 동안의 체험. 그것으로 나의 25시간을  정의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토미 아저씨라는 큰 재산을 얻었고,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눈을 가지게 되었다. 아래로 바라보는 시선 말고도, 아래서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는 것을 나는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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