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프롤로그 - 응원받지 않는 길이란?

아웃사이더


 아웃사이더라니, 사실 태어나서 내가 이런 제목의 책을 쓰게 되리라고는 한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왠지모르게 드는 거부감과 나도 모르게 드는 어떤 자괴감 때문에 외톨이 혹은 어떤 소수의 집단으로서 글을 쓰는 것을 일생 동안 원치 않았었다. 그럼에도 왜인지 모르게 생겨난 그 '반골'의 기질 때문에 나는 타인들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아니, 다른 것을 표현하고 싶었고, 억지로라도 '나는 아닌데?'라고 말하고 싶었다. 어쩌면 나는 '참을성'이 남들보다 적어서 다수에 속하는 것을 참지 못하는 병 같은 것일 수도 있었다. 


 그렇게 나는 경남 진주의 정원 미달로 곧 폐교가 예정인 초등학교에서 아웃사이더로 자랐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의 기억 속에 그 반골의 기질로 인해서 타인과의 트러블이 생기기 시작한 때가 말이다. 그 시골에서 흙장난 하기가 실증이나 태권도장에 다니겠다며, 단식투쟁을 했고 그 덕에 태권도장에 가장 먼저 다니기 시작했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짱이 되었고 친구들과 어울렸다. 괴롭히고 게임 아이템 따위를 빼았아도 누군가 나를 말리는 사람이 없었기에 아웃사이더가 아닌 '인사이더' 혹은 나는 스스로 대세라 생각하며 지냈었다. 그러나 시내쪽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그 반골의 기질로 인해서 시작한 첫 싸움?에서 대대적으로 깨졌고, 그러다가 아마도 중학교 3학년 즈음에, 잘나가는? 후배에게 급식실 앞에서 또 다시 나의 반골기질로 인해서 쳐맞는 사건이 전교에 알려지면서 나는 대내외 적으로 아웃사이더의 길로 들어섰다.  그제서야 나의 분수?를 조금은 알게 되었다. 뼈에 사무치는 학습이었다. 


 그 이후로 대외적인 활동은 자제하게 되었고, 반골의 기질, 아웃사이더의 기질을 내뿜는 대신 자연스레 나는 게임에 빠지게 되었다. 게임 속에 나는 노력에 의해서 점점 강해지기만 했고, 게임 속에 가난한 농부의 아들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옷은 교복만 입으면 되니까, 제발 신발 좀 사달라고 며칠을 졸랐더니, 고속도로 트럭에서 아버지가 사오신 '짝퉁' 메이커 신발을 학창시절 내내 신고 다니며, 용돈을 모아 게임방을 다니며 조용히 지냈다. 언젠가 왜 게임만 했냐? 어떤 기자가 물었을 때 나는 '게임 속에는 가난이 없었다' 라고 말하기도 했었다. 농사를 지었던 덕에, 수억의 빚이 있었지만 삼시세끼 밥은 굶지 않았으나, 사춘기 청소년의 마음이 상처받기에는 충분한 가난이었다.  


 그렇게 나는 후배에게 쳐 맞은 이후로는 '승질' 혹은 아웃사이더의 기질을 보이기 보다는 다수가 하는 대로 따르는 평범한 학생으로 변해있었다. 그렇게 고3이 찾아왔고, 내게 기회가 찾아왔다.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에 간다면 '가난'을 벗어날 것이라는 희망을 당시 선생님과 누나들이 심어주었고, '가난의 대'는 니가 끊어야 한다는 사명감을 막내 동생인 나에게 누나들이 심어줌으로써 나는 공부에 올인했다. 그때가 고3으로서 막 개강한 시점이었다.  그렇게 다들 공부에 올인할 때 나 역시도 공부에 달려들었고, 뭔가 공부로 더 다르고 싶었던 나는 중하위권에서 점차 전교급 성적으로 올랐다. 결국엔 눈부신 성적으로 수능을 마무리했지만, 서울의 학비와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다는 부모님의 말을 듣고는 입학원서를 쓰는 날 눈물로 새벽녘 논길을 달렸다.


 하향지원으로 부산대학교에 경영학과에 합격을 했고, 나는 첫 신입생 모임 때부터 아웃사이더의 기질을 내보이며 그 간 참아왔던 것들을 내 힘차게 내 뿜었고, 나는 하고 싶은 말들을 거침없이 해댔다. 호응이 나쁘지 않았는지 나는 학년대표와 나중에는 학생회장까지하며, 이런저런 대외활동을 하며 각종 리더의 자리를 도맡아했다. 그렇게 ROTC로 임관을 했고, 군대에서도 대대장님께 '개김' 혹은 반골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각종 불이익을 받기도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일종의 고문관 이기도 했지만, 술을 강제로 먹이거나, 원치않는 운동을 같이 하게 하는 것들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때부터 대대장님의 잦은 호출과 내게 주어진 부대의 과업량이 몇곱절로 많아진 것도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대기업에 취업을 하는 것이 가족을 위한 일이라, 그것이 나의 미래를 바꾸는 유일한 일이라 생각했고 제법 많은 기업의 서류에 합격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그렇게 대대장님의 눈치를 보아가며 몇개의 기업에 면접을 보러갔으나, 나의 아웃사이더 기질은 역시나 가만히 있지 못 했다. 협동성을 요구하는 전공관련 토론면접 시간이었으나, 성의없이 면접을 보러온 면접동기들이 꼴 보기 싫어 대놓고 무시를 하며 면접관에게 되려 역정을 내는 일도 있었다. 결과는 보기 좋게 탈락이었지만 몇몇의 대기업에 최종합격하기도 했었다. 


 











무엇으로 첫줄과 첫 장을 시작해야할까? 명확히 답이 서지 않는다. 왜냐 묻는다면, 나는 그 길의 끝에 선 것이 아니라 아직도 그 길을 가는 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글 하나 명쾌히 적어 내리지 못하고, 명확히 이것이다 라고 답하지 못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길을 걷게 된지 몇년이나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고민하고 있으며, 그 끝을 향해가는 지금에도 여전히 '답'을 찾는 중이다.


  응원받는 느낌. 산을 오를 때 누군가가 뒤에서 밀어주고 앞에서 당겨주며 산을 오른다면 참으로 편할 수 밖에 없다. 아니 굳이 몸이 편하지 않더라도 마음만은 어딘가 배부름으로 가득찬 느낌이 생기게 마련이다. 비록 고되고 힘들고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 왜 올라야하는지도 모르는 가파른 산이라는 것을 오르고 있음에도 힘이 생기게 마련이다. 응원이 그런 것이고, 내 기억에는 응원은 그런 것이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내가 무엇을 하고 어디에 있던 '쫄리지 않는' 느낌을 들게 하는 것이 응원이었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의 존재의 가치였다.


 하지만, 지금에서야 돌이켜볼 때 나라는 인간은 그 응원이라는 것이 그리도 못 마땅하고, 불신스럽던지 온전히 믿을 수가 없었다. 정확한 그 사유에 대해서는 좀 더 고민해 보아야겠지만은, 비오는 날 집 앞 어귀에서 발견한 굶주린 버려진 고양이 새끼에게, 내가 먹으러 샀던 핫바 하나를 건내는 그때.그런 도움의 손 길조차 의심스러워 내 손을 할퀴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아마도 그 고양이 새끼의 심정이었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로 인해 항상 굶주렸고, 가진 것이 없다는 그 불안에 가진 것이 없음에도 응원인냥 시기하려는 주변의 시기가 두려웠었다. 그리고 정작 내게는 그 두려움을 이거내본 내적 경험이 없었다. 


 외로웠다. 아니 나 스스로 더 외롭게 살려고 했었다.  인생을 포기하기에는 아쉬웠고, 그럴 용기도 없었으며, 이성적으로 판단했을 때 인생을 포기하는 것이 그다지 생산적이지 않았다.  아무렇게나 살기에 나는 제법 근성이 있었으며 제법 튼튼했고 또 제법 영리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결심하게 된 것 같다. 그래서 남들이 응원하지 않는 길을 가려고 했던 것 같았다. 딱! 이러한 이유였다 라고 설명한다면 더 멋지고 간단하게 정리될지 모르겠지만, 어찌 사람이 사는데 한가지 이유만으로 모든 것이 정리와 정의가 되던가? 다만, 가장 크고 우선적인 것이 대게의 이유와 원인이 될 뿐이었다. 


 그렇다. 내게는 미련과 후회가 있었기에 누군가가 나를 응원하지 않더라도 내 갈 길을 가려고 했을 뿐이었다. 응원만 받는 길의 끝에 선 것보다도 응원하지 않고 시기받고 욕먹는 '가시덤불'을 헤집고 피를 흘리며 종국에는 그  끝에 섯을 때 삶이 더 숭고하거나 멋지지 않을까 생각 했을 뿐이다.  결국엔 이런 이야기들을 해볼까 한다. 그 누구도 동조해주지 않아 취업에 대해 조용히 남 몰래 고민하고, 씩씩거리며 광안리 방파제에 앉아 빈 소주병을 내 던지며 바다를 향해 욕짓거리를 내 던지던, 미국을 오토바이로 겨울에 횡단할 거라며 호언장담하고는 얼음판에 무릎을 갈고 쓰러져서 신음하며 내 뱉었던 그런 절규들,  그런 이야기들을 덤덤히 새벽에 헤어진 여자친구에게 장문의 메세지를 눈을 질끈 감으며 보내듯 그리 적어보려고 한다.  


여전히 누군가는 나를 불편한 존재로 여기고 있으며, 여전히 누군가는 뒤에서 나를 욕하고 있을지도 모르며, 또 여전히 누군가는 의심하고 증명하려 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나는 글을 적을 것이고, 그럼에도 나는 내게 주어진 길을 무던히 걸을 것이다. 결국 모두를 설득하는 과정은 불필요하며, 불가능 하고, 거기에 낭비되는 에너지를 한 발이라도 더 내 딛는데 써야하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시작되는 이 모든 글들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응원받지 못한 길'을 걷는 가는 자에게 전하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파독 광부 할아버지를 찾아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