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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도전의 다른 이름, 도망

선배 도전가에게 묻다. 

 '막내아들' 박재병.


 힘들었다. 그래서 기대고 싶었다. 대학 친구와 선배들에게 내 사정과 고민을 이야기를 했지만, 다른 사람(구 여자 친구와 친구)들과의 '관계'라는 문제 때문에 마음껏 말할 수 없었다. 가족에게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미안함' 마음 때문에 기댈 수  없었다. 우리 부대 최상관에게 눈물로 상담을 해보았지만, '사고칠 것 같으니 부대 외출 자제시켜라'는 어이없는 피드백을 받고는 알 수 없는 배신감을 느꼈다.


취업준비를 도와주고, 진로를 고민해주는 선배들은 많아도, 나의 '인생 상담' 들어줄 만한 사람이 내 곁에 없었다. 그래서 책과 강연자료를 찾게 되었고, 그들에게 고민을 이야기했다. 당시 유명한 여행 및 도전 분야 작가 몇 명에게 묻고, 연락처를 남기고 도와 달라 호소를 했다. '당신들의 행적을 따라가면, 나도 깨달음을 얻을까요?' 물었다. 답이 오기를 기다렸다. 내 고민을 해결하는데 많이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대답이 온 곳은 단 몇 분뿐이었고, 그들에게서도 '정성스러운' 답변이 아닌, '나니까 할 수 있었고, 저작권 문제가 있으니 따라 하지 말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어이가 없었다.' 청년들에게 희망이 되고, 동기부여'를 가르친다는 사람이 할말은 아니라 확신했다. 


조언도 얻지 못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고, 취업이 답은 아닌 것 같고, 단 한 번만 이라도 인생에 대해서 고민해보고 싶었는데 '청춘멘토'라는 사람은 도와주지 않았다. 내게 담긴 선택지는 '도망'이었다. 당시에 내가 군대에서 알아본 곳 중에서 가장 멀리, 가장 오래,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곳이  영국 옆의 작은 섬나라 '아일랜드'였다. 그렇게 나는 면접을 포기하고, 전역을 한 달 남겨둔 시점에 비행기 티켓을 구매했다.   


취업 대신 멋진 도전!이라고 외치며 외국행을 하고 싶었지만, 나는 왜 그토록 취업만을 위해서 살았는지,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각각의 상황들이 나를 숨 막히게 했고, 숨을 참는 그 임계치를 넘으니 모든 압박이 사라지고, 아무런 의욕이 없어졌다. 나, 박재병이 존재했던 모든 곳에서 도망쳐야만 했다. 부모님의 '자랑'이고 싶었는데, 나는 아프신 아버지와 배신감에 가득 찬 누나들을 두고 나는 '도망자'가 되었다.  


그렇게라도 나는 살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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