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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댓가를 치루다.

잔액이 없습니다.

돈이 없다. 하나도 없다. 망연자실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다시 한번 친구들에게 돈을 빌리는 것이었고, 두번째로 든 생각은 부모님께 손을 벌리는 것이었다. 내가 돈을 벌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또,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전혀 없었다. 어떻게든 남의 도움을 받아 계속 방탕하고 즐거운 유럽에서의 생활을 계속하고 싶었다. 


그렇게 돈을 빌리려고 친구들 SNS와 주소록을 보는데, 나와 함께 취업을 준비했던 친구들 동기들은 이제 막 '신입사원 연수'를 마치고, 멋지게 정장을 입고 큼지막하게 회사의 로고 조형물 앞에서 찍은 사진을 올린 사진들이 보였다. 알 수 없는 자괴감이 들었고, 나는 취업도 안하고 외국에서 놀고 있는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부모님에게 연락을 드리려는 순간 몇가지 생각들이 머리를 스쳤다. 

'아일랜드 도착하고 전화한통 안드렸구나, 또, 아버지 사기 당해서 돈이 없는데 내가 무슨 염치로 돈을 빌려?'


나는 이미 친척들에게 아프신 부모님을 버리고, 형편도 모르고 유학간다고 도망쳐온 '호로자식'일텐데, 외국에서 돈을 벌어서 집으로 돈을 붙이지는 못할 망정, 아들로서 두달만에 돈을 다 썼으니 도와달라 손을 벌릴 수 없었다. 적어도 제정신이라면 그럴 수 없었다. 


친구에게는 부러움 때문에, 아직까지는 제정신이었기에 가족에게도 돈을 빌리지 않았다. 

한참이나 친구와 부모님 사이에서 갈등을 하다, 몇시간이나 지나서야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돈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누가 당장 일을 시켜줄리 만무했다.  밥은 먹어야 했기에 옷장에 있는 옷들을 뒤져서 나온 현금들로 최후의 만찬을 위한 마트 장을 보았다. '파스타 면과 소스' 약 일주일 동안 파스타만 먹는다면 일주일은 버틸 수 있을 정도의 돈을 호주머니들에서 찾았다. 그제서야 지구 반대편에서의 생존은 오롯히 나의 몫으로 그렇게 다가왔다. 유흥과 술과 클럽과 데이트는 더이상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실천계획에 없었던 해외 취업을 당장해야만 했다. 급하게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같은 글로벌 대기업에 CV(자기소개서)를 조악하게 작성해서 보냈다. 답장은 물론이고, 면접 일정도 당장 잡힐 것이라는 기대는 당연히 했다. 왜냐하면 나는 한국에서도 대기업 취업이 가능한 상태였고, 얼마든지 다시 돌아간다면 취업은 식은 죽 먹기라는 오만함을 계속해서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글로벌 매출액 순위가 높은 기업들에게만 자기소개서를 보내고, 나의 높은 취업확률을 확인도 하고'안전빵'이라는 생각으로 더블린 시내의 인크루팅 센터에 들러 CV를 낼 겸, 구글 같은 기업에 제의가 들어온다면 희망연봉으로 얼마나 받아야할 지 물어도 볼겸 방문을 했다. 반갑게 맞아주는 직원의 안내를 받고는 의자 앞에 앉마 마자 물었다.


- "나 한국에서 대기업에 취업도 했었어, 지금은 유학생인데 연봉을 얼마정도 받아야 할까?"

" 오 그래? 비자는 뭐야?"

- "1년짜리 학생 비자!"


"음...아일랜드나 유럽 학위는 있어?"

- "아니, 한국에서 경영학 학사 졸업했어. 아 그리고 나 군대 장교 출신이야! ROTC"


"음...Jay. 창고나 식당은 어때?"

- "알디나 월마트 같은 회사의 본사에서 근무하는 거지?"


"아니아니, 청소하고 물건 나르고 그런거! 몰라?"

- "뭐? 나 대학도 졸업했다고, 경영학과야!"

" 음...미안한데 그런 일도 비자도, 여기 학위도 없으면 못 구해. 니 주변을 봐."


그랬다.  나는 그저 많고 많은 일용직이 필요한 일자리 외국인 중에 한명에 불과했다. 유학생들이 현실적으로 취업이 가능한 일자리는 한식당이나 물류창고의 허드렛일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마저도 경쟁률이 심할정도로 치열해서 두세달 넘게 대기를 해야했다. 


나는 그제서야 현실을 알게 되었다. 내 앞에 놓인 길이, 꽃길이 아니라 절벽이라는 것을 말이다.

나는 부모와 가족과 친구와 한국을 떠나온 댓가를 치뤄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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