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가 있을 때는 거의 모든 시간을 남자친구에 대한 생각을 하거나 그에 대한 고민을 했다. 쉬는 시간에는 친구들과 남자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A와 헤어지고 처음 출근을 한 날, 근무에 투입해서 처음으로 떠오른 고민은 이것이었다.
'나는 무엇을 먹고살아야 하지?'
자주 내 곁을 맴돌던 고민이었지만 어느 순간 잊고 있었던 고민이었다. 다시 떠오른 현실적인 고민에 나는 괴로워졌다. 당장 남자친구 때문에 생긴 고민에 빠져 현실적인 고민을 잊거나 도외시했었는데 다시금 현실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머리가 지끈 지끈 아파왔다.
신기하게도 A와 헤어지자 A와 정반대였던 B에게 아무런 흥미도 매력도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B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7월 말에 들어서자 점점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했다. 일을 하며 몇몇 사람들의 비성숙된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고, 진절머리 나는 일도 겪곤 했다. 그러다 내가 일하는 파트에 열아홉 살짜리 여자아이 C가 들어왔다.
열아홉, 95년생, 4살 차이. 학교와 연계되어 취업계로 온 것이라고 했다. 앳된 얼굴에 키까지 작아 열아홉 살보다 더 어려 보이는 C가 무언가 무척 안타까워 보였다. 나의 열아홉 살은, 다른 것은 모두 필요 없고 한 가지 목표만 바라보던 시기였다. 거기다 열아홉 살의 칠월은 더욱 그랬었다. 나는 유치원생 때부터 당연하게 대학을 가는 나를 상상했었다. 그래서인지 내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그런 길을 가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많이 낯설고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 길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속해있는 곳의 사람들이 정석적이라고 말하는 길은 아니었으니 내게 낯선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늘 내가 개방적이고 수용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럴 때마다 나의 편협함을 느끼곤 했다.
그 다음날에 또 같은 반 D가, 그 다음날에도 또 같은 반 E가. 총 세명의 열아홉 살 아이들이 안내 도우미로 들어왔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보수적인 고등학교였기에 화장을 하는 아이들이 거의 없었다. 술 담배를 하더라도 쉬쉬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아이들은 나보다도 더 진한 화장을 하고, 술 담배를 몇 년째 하고 있었다. 나는 또 낯설고도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이 곳의 아이들에게 물었다. 몇 살 때부터 담배를 피웠어? 아이들은 거의 중학생 때부터 호기심에 담배를 피웠다고 했다.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던 내 주변에 감사해졌다. 아이들은 교대를 하고 나선 흡연실로 가곤 했다. 아이들의 몸에는 담배냄새가 늘 짙게 배어 있었다.
밥을 먹으면서 아이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E가 이런 말을 했다.
"언니, 전 꿈이 없어요."
그 말에 D는 너 지금 다큐멘터리 찍느냐며 까르르 웃었지만 나는 그 말에 놀라고 말았다. 그리고 겁이 났다. 만약 E가 내게 언니는 꿈이 뭐예요?라고 물으면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고민이 들었다. 하지만 다행히 E는 그런 질문은 하지 않았다.
E의 그 말은 그 후에도 자주 내 곁을 떠돌아다녔다. 내게는 너무나도 창창해 보이는 열아홉 살 아이가 내뱉은 그 말이, 나도 자주 내뱉었던 말임을 깨달았다. 내 꿈? 나는 돈을 많이 벌고 싶어. 나중에 내 아이가 원하는 것을 돈이 없어서 해주지 못하지 않을 정도로 충분한 돈을 가지고 살고 싶어.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무엇으로 성취감 있는 삶을 살아갈 것인지 나는 항상 고민하다 의도적으로 잊어버렸다. 스물세 살, 대학교 4학년의 내게 꿈이라는 것은 너무나 멀어 보였고 끔찍하게만 느껴졌다.
사실 나는 대학원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내 학부인 경영 공부가 아닌, 소설 공부를 하고 싶었다. 복수전공을 하면서 소설 이론에 많은 흥미와 호기심이 생겼고, 글을 쓰며 살고 싶어 졌다. 하지만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에 내가 미술을 포기했듯, 같은 이유로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나는 돈이 없었고, 나는 노력이 부족했고, 나는 재능이 부족했다. 하지만 나는 글을 쓴 후에 내 글을 읽어볼 때 그 무엇을 했을 때보다 가장 성취감이 들곤 했다. 이 일이 나를 가장 보람 있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은 취미일 때 더 행복하다고들 했다. 직업이 되는 순간 자신을 옭아맨다고. 내가 겪어보지 못한 일에 나는 그런 생각으로 위안 삼는다.
여전히 나는 고민을 한다. 무엇을 먹고살아야 할지. 스물세 살의 칠월에도, 팔월에도.
그렇게 스물세 살의 칠월이 지나가고, 팔월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