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곳에서는 사람들의 유입과 유출이 무척 유동적이었다. 다른 아르바이트보다 훨씬 더. 일이 힘들다는 것과 더불어, 그런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어서 더 그런 게 아닐까. 이 곳에서는 자주 사람들이 들어왔고, 자주 사람들이 나갔다. 다른 파트와는 친해질 기회가 적은데, 조금 얼굴을 익힐만하면 그 사람이 보이지 않는 일도 허다했다. 아침 조회시간에 누군가 아파서 나오질 않거나 무단으로 결근하는 일이 잦았다.
친하게 지내던 F가 예정보다 일찍 퇴사했다. 퇴사하기 3일 전 휴무였던 F는 휴무이던 날 내게 연락이 와 빨리 퇴사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왜냐는 물음에 위독하셨던 남자친구의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나는 당황했다. 어떻게 위로의 말을 전해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나는 위로부적격자였다. 남들보다 위로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달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나도 몰랐다. 보통의 여자들은 참 위로를 잘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위로받는 것도, 위로해야 하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어느 날 내가 하는 위로의 말이 형식적으로 느껴지고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후로 나는 상대방에게 해결책이 되는 말들을 해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말들이 듣는 이에게는 들리지 않는 나 혼자 하는 말이 됨을 깨달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점점 짜증이 밀려왔다. 왜 내가 해주는 해결책을 하지 않는 거지? 그러면서도 나는 그 사람에게는 해결책보다는 위안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제 나는 형식적인 위로의 말을 하는 내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지금은 어떻게 위로를 해주어야 할지 모르겠다.
어쨌든 그렇게 F는 그렇게 그만 두었다. 그리고 B도 며칠 결근을 하다 일을 그만 두었다.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었지만 그렇게 홀연히 가버리자 왠지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나와 같은 날 들어왔던 G도 내게 아마도 8월 중순에 그만두어야 될 것 같다고 말하더니 예정보다 일찍 그만두었다.
그렇게 모두들 흔한 이별의 말없이 그렇게 떠나고 말았다. 이 곳에서 친하게 지내던 이들이 일을 그만두면 매일매일 보던 사이에서 어쩌면 평생 보지 못할 사이가 되어버리고 만다. 그런 일련의 과정을 살면서 많이 겪어왔지만, 왠지 더욱 아쉽게 느껴졌다. 우리들은 이 곳을 떠나면 더 이상의 대화거리가 존재하지 않는 사이였다. 밖에서 만나기는 어색한 그런 사이였다.
그렇게 그들은 내게서 실종되었다. 분명 존재하지만 사라져버린 이들.
A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내게서 실종되었다.
A와 나는 SNS 친구도 아니었으며, A는 많은 사람들이 하는 SNS도 하지 않았고, 카톡 프로필 사진도 없었다. 나와 A가 함께 있는 단체방에서 A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A가 이 세상에 살아있다는 증거를 나는 찾기가 힘들었다. 얼마 전까지 매일매일 연락하던 사이이던 A가, 단번에 실종되어버린 느낌이었다.
A가 참석했기 때문에 모임을 나가지 않은 날 기분이 이상했다. 내가 왜 피해야 하는 걸까? 하지만 A를 보면 나는 표정관리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 며칠 후, 평소에 잘 들어가지 않는 SNS에 우연히 들어갔다가 같은 모임의 사람이 사진을 올려놓은 것을 보았다. 얼굴을 가려놓았지만 정황상 그 사진 속 인물은 A였다. 기분이 이상했다. 나는 사진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였다. 옷 입는 스타일도, 신발도, 팔찌도, 다리의 상처도 A였다. 내가 A와 사귀며 단 한 번도 사진으로 남기지 못했던 A의 모습이었다. A는 그렇게 쉽게 타인의 렌즈 속을 통해 포착되어있었다. 우리는 짧게 사귀지 않을 것이라고, 시간은 충분히 있으리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그래서 모든 것에 불안해하거나 안달나 하지 않았다. A의 무심함도 차차 나아질 거라고, A와 함께하지 못하는 시간들도 점점 함께 채워나갈 것이라고, 더 많이 A를 알게 되고 나를 알게 될 것이라고, 사진도 많이 남기고 추억도 많이 남기리라고, 나는 생각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짧지 않기에 천천히 해나가면 될 것이라고 나는 오만하게 생각했다. 결국 나는 단 한 장의 사진도 찍지 않았었다. 그랬기에 지울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A가 그 사진 속에 조용히 앉아있었다.
차라리 얼굴을 가리지 말지, 차라리 선명하게 올려버리지. 그럼 마음 놓고 보았을 텐데.라는 한심한 생각이 내 머릿속을 부유했다. 나는 그 어플을 지웠다.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이들이 내게서 실종되었다. 이런 실종을 나는 다시는 겪고 싶지 않다. 하지만 앞으로 살면서 더 많은 실종을 겪게 될 것이다. 얼마나 더 많이 이런 실종을 겪어야 나는 무덤덤해질 수 있을까? 무덤덤해지는 것이 좋은 것일까? 여전히,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