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히 모시겠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일을 시작하면서 처음 배운 기본 멘트였다. 고객들에게 한다고 생각했던 이 말이, 일을 하면 할수록 내 자신에게 최면을 거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덥고 힘들고 지쳐도, 너는 무조건 친절히 고객을 모셔야 한다,라는 최면.
팔월은 칠월보다 더욱 힘들었다. 반복되는 익숙해진 일은 괜찮았다. 힐을 신고 서서 일하느라 아픈 발도 이제는 참을만했다. 긴 멘트도 여러 개 외워 적절한 상황에 멘트를 말할 만큼 되었고 고객들의 반복되는 길을 찾는 질문에도 적절히 응대할 수 있을 만큼이 되었다. 하지만 익숙해진 일보다 뜨거운 햇살과 바람이 나를 힘들게 했다.
간만에 만나는 사람들마다 내게 물었다. 너 왜 이렇게 탔어? 원래 검던 내 얼굴이 더 검게 타고, 유니폼을 따라 경계선이 생겼다. 다른 옷들보다 좁은 넥라인을 따라 선명히 탄 자국이 생겼고, 하이힐을 따라 발에 경계선이 생겼다. 하이힐 경계선이 생겼을 때 아이들이 말했다. 언니도 여기 사람 다 됐네! 여기서 일한 아이들은 모두들 같은 자국이 생겨났다. 햇볕이 강해질수록 우리는 점점 더 새까매졌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하얀 피부를 좋아하고, 서양인들은 검은(조금 탄?) 피부를 좋아한다. 그것이 우리나라는 햇볕이 강해 밖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검게 타고, 안에서 공부하던 선비들은 피부가 하애서 하얀 피부를 선호하고, 서양인들은 산업혁명 때부터 공장일을 했으니 공장에서 오랜 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햇볕을 못 봐 피부가 하얘지고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햇볕을 즐길 수 있어 피부가 타서 그런 피부를 선호한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근거 없는 생각이지만 왠지 혼자서 일리가 있는 생각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런 생각대로라면 나의 검은 피부는 고된 노동을 나타내는 피부였다.
이 일을 하면서 평일에는 날짜 감각이 사라졌고, 주말은 금 토 일 삼일이 되었으며, 주말이 싫어졌다. 백화점에는 주말에 사람이 미어터진다. 거기다 한 시간 연장 영업을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우리들도 한 시간 연장을 해야 했다. 끝없이 밀려들어오는 차 때문에 팔이 아프고 목이 아팠고, 들어가지 못하고 대기 중인 차 안의 사람들의 짜증을 받아줘야 하는 일이 빈번했다. 유니폼을 입고 있을 때 사람들은 우리를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것 같다.
유난히 바빴다고 생각된 일요일이 지나고, 월요일 휴식시간에 휴게실에 누워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블로그 이웃 중에 부산에 사는 부유해 보이는 사람이 있는데, 그분의 글에 일요일에 내가 일하는 백화점에 왔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주차장에서 한참을 기다렸다는 글이 쓰여있었다. 어쩌면 나를 스쳐지나 간 많은 차 중에 그 사람이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 분과 나는 개인적인 친분이 없지만 왠지 무서워졌다. 어쩌면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이 나도 그 사람도 모르게 나를 스쳐지나 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지하주차장 2층 정문에 서 있으면 차 안의 사람들과 자주 눈이 마주친다. 얼굴이 익혀진 고객들도 몇몇 있었다. 항상 부인이 운전을 하고 남편이 조수석에 타있는 MVG차량의 노부부, 주로 아침시간에 오는 머리는 하얗고 눈썹은 검은 중년의 남자 고객, 무서워 보이는 눈썹을 그린 여자 고객 등등. 그리고 인상 깊은 고객도 몇 있었다. 스포츠카를 타고 손짓으로 방향을 지시하던 고객, 내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에 정중히 감사를 표하던 고객들, 차가 막히는 것 때문에 내 어깨를 때리고 화를 내던 고객 등등. 비싼 차를 탄다고 그만큼 인격이 따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는 나날이었다. 고객들 때문에 기분 나쁠 때도 있었지만 나는 웃으며 응대하려 노력했다. 그것이 나의 일이었다. 가끔은 두려울 때도 있었다. 내가 이런 초라한 모습으로는 절대 마주치고 싶지 않은 얼굴이 있었다. 비슷한 둥그런 얼굴의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나는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절대 이 곳에 오는 일은 없으리라고 생각했지만 나도 모르게 놀라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일요일의 마지막 시간, 8시부터 9시까지의 시간은 참으로 공허했고 허무했다. 삼일 내내 지속적으로 들어오던 차들이 거의 들어오지 않고 거의다 출차만 있는 시간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다시 월요일을 맞으러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잠깐의 유희를 끝내고 집으로, 집으로. 가끔 나를 보고 왜 집에 가지 않고 아직도 일을 하느냐고 묻는 고객들도 있었다. 나도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어두운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가고 싶었다. 일요일의 밤에는 내 뒤의 에어컨이 윙윙 거리는 소리와, 타이어가 주차장 바닥을 긁는 소리가 간간이 들리고, 마이크로 흘러나오는 내 목소리만이 내 공간을 채웠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차장의 자리가 하나둘씩 비워져 간다. 입차가 오지 않아 말을 내뱉은지 한참이 되었을 때 나는 내 뒤의 주차장을 바라보았다. 조용하고 고요한 그 곳이, 자동차들의 무덤처럼 느껴졌다.